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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 by 계수

=전 세계의 명예로운 인류 여러분. 대통령….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감히 고하겠습니다. 도망치십쇼. 살아남아 주십시오. 결코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을 잊게 하지 말아 주십 시오… 그리고… 어… 그리고….= 대통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tv가 꺼지고 평범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싸늘한 교실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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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64    추천 0   덧글 0    / 2010.08.18 17:00:54

 

“뭐야?”

재원은 당황했다. 위로 향해야 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 elevate란 말 자체가 상승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말장난이 아니더라도 이 방공호에 옆으로 가는 기계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

재원은 입을 다물고 시화를 응시했다. 패닉에 빠져선 안 된다. 옆에 있는 내가 당황하면, 보이지도 않는 시화는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진정을 되찾은 재원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침묵 속에 승강기가 멈췄다.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애석하게도 열려버리는 문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재원은 이를 악 물고 시화의 손목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

“…?”

열린 문 밖의 구조는 방공호와 그다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방. 새하얀 방이었다. 반 아이들이 머물고 있을 방의 구조와 똑같은, 하지만 침대나 테이블이 없는 텅 빈 방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 안에 군복의 여자는 열중쉬어 자세로 둘을 맞이했다.

“저기, 저희는 여기서 나가고 싶은데…”

재원은 승강기 안에서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대답은 똑같았다. 승강기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재원은 꿀꺽 침을 삼킨 뒤 시화의 손목을 잡은 채로 걸었다. 군복의 여자는 뒤로 돌아 문으로 향했고 문을 통과하자 눈에 익는 복도였다, 그 길을 따라 나온 문을 들어가니 그곳엔 ‘무언가’가 있었다.

재원은 숨을 삼켰다. 한 번이라도 리빙룸에 가 보았다면 구조가 익숙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곧장 나가기로 결정한 그에게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거대한 원기둥 같은 것. 그 안엔 기분 나쁜 검은색 구가 떠 있었다. 주위에 그와 비슷한 기둥들이 여럿 있었으나 그 안은 텅 비어있다. 공간은 넓고 높았다. 그런 가운데의 그 ‘구’는 강한 존재감을 뿌리며 환한 조명 아래에서도 완벽한 검은색을 띄고 있었다.

재원이 살짝 대각선으로 움직여본다. 구에는 전혀 명암이 보이지 않고 그저 검게 칠해져 있을 뿐임으로 재원은 평면에 그려진 구가 아닐까 추측했던 것이다. 하지만 구는 어느 각도로 보나 한 치의 밝음이 없는 같은 어둠을 띄었다.

“뭐야 이건.”

“우주….”

시화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재원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의식. 우주의 모든 지식을 ‘수확’하는 유기체이다.=

우…주?

무거운 공기만이 아니라면, 혹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이 어디인지 구분만 할 수 있다면, 즉 이 상황에 일말의 여유라도 있었다면 재원은 필시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그게 무슨….”

=추상적으로, 우주인이다.=

재원은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을 수 없었으나 눈앞에 있는 구를 쳐다보며 말 했고 대답은 돌아왔다. 거기에 있는 구는 존재만으로도 이질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우주인?”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의미다.=

딱딱한 기계와도 같은 어투다. 혼란스러운 사고 속에 재원은 그런 생각을 했다.

“잠깐만, 여긴 방공호 아니었어? 왜 우주인이 이런 데에 있는 거야? 너희도 대피해 왔냐?”

=오해를 하고 있다.=

“오해?”

=우리는 대피하지 않았다.=

답답함을 느끼는 재원. 도무지 어떻게 되어가는 상황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분명, 세계 종말까지의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방공호로 내려왔고, 시화를 지키기 위해 방공호 밖으로 나가려고 한 건데… 어째서 ‘우주인’이 나오는 거지?

“이해가 안 가.”

기계 같은 어투에게 대답하자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A2. 그에게 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그에 군복의 여자, A2는 기둥을 향해 다가갔고 알약만한 검은 구체를 가지고 재원에게 다가왔다.

“뭐, 뭐야 이게?”

“삼키시죠.”

“싫어.”

단호하게 대답하며 재원은 뒷걸음질 쳤다. 알약은 기둥 안에 있는 구체와 같이 기분 나쁠 정도로 까맣다. 누가 봐도 입에 넣기는 싫을 물건이었다.

“….”

재원이 거부하자 의외로 A2는 가만히 멈춰 섰다.

=이곳에 온 이상, 너에게 선택권은 없다. 리셋이 불가능한 지금. 너는 의식 공유체가 되거나 표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니까!”

혼란은 두려움을 억누른다.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난 재원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것이 이해를 도울 것이다. 삼켜라.=

A2가 한 걸음 더 재원에게 다가왔지만 재원은 뒷걸음질 치며 거부했다. 물론, 시화의 손목을 꼭 붙든 채였다.

“싫어. 됐으니까, 우릴 지상으로 데려다 놔.”

다시 내려오는 침묵에 재원의 말은 넓은 공간 안에 무한대로 울리는 것만 같다.

=A2. 효율적인 방법으로 시행할 것을 권장한다.=

“철컥.”

기계음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울린 맑은 쇳소리에 재원은 구체에서 눈을 때고 A2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손에 권총을 들고 재원의 머리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뭐야, 저거. 총? 권총이야?

사람 생명의 값을 방아쇠를 당기는 힘 하나로 결정짓는 무기. 군복에 아주 어울리는 무기지만 있어야 할 장소를 잘못 찾은 것 같다. 그런 무기는 우주인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어야 하잖아.

“삼키시죠.”

“웃기지마, 웃기지 말라고! 먹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죽는 게 났지! 젠장!”

덜덜덜덜. 다리가 후들거린다. 서 있는 것이 이렇게 붕 떠있는 느낌이던가. 무섭다. 두렵고 누가 도와주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서하람. 아, 그 녀석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 했을까?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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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직시하지마 피하고 싶은 현실이라면 받아들이지 말고 부숴버리면 되는거야.

방공호 3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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