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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 by 계수

=전 세계의 명예로운 인류 여러분. 대통령….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감히 고하겠습니다. 도망치십쇼. 살아남아 주십시오. 결코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을 잊게 하지 말아 주십 시오… 그리고… 어… 그리고….= 대통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tv가 꺼지고 평범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싸늘한 교실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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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계수[rla916]
조회 903    추천 0   덧글 0    / 2010.08.22 20:51:33

기분 나쁜 알약을 단숨에 입에 넣고 삼켰다.

 

맛은 나지 않는다. 먹었다는 촉감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입 안에 넣자마자 무로 돌아가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다.

“아….”

하지만 확실한 차이는 느껴졌다.

“뭐야 이건….”

수많은 지식. 많은 광경들. 이게 뭐지? 이것은… 우주다. 우주가 보이고 있었다. 수천, 수 만년의 시간. 오랫동안 떠돌며 ‘나’는 여행했다. 그리고 의식을 흡수했다. 모든 원소, 분자,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것. H2O, CO2. 공기, 흙, 박테리아, 풀. 풀… 생명체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들은 적도 없는 형태의 굉장한 생명체, 아름다운 것이 있는가 하면 지구에도 있는 흔한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사각형의 잎을 가진 파리 채 같은 식물. 아아, 동물도 있다. 다만 쥐랑 비슷한 종류만 잔뜩 있다. 파충류, 양서류, 곤충. 많은 생물들이 머릿속에 퍼져갔다.

하지만…. 넓은 우주. 수 만년이나 돌아다닌 우주 속에 인간과 비슷한 종은 단 한 종도 보이지 않았다.

“…이해했어.”

재원은 멍하니 돌아버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시화는 보이지 않는 눈을 조용히 아래로 내리고 묵념하듯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이 곳이 방공호가 아니란 것도 이해했나?=

“응. 그래서 기분 나쁘네.”

재원은 자신에게 보란 듯이 보여 줘놓고 이해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과, 이 장소 자체에 대한 두 의미를 담아 기분 나빴다.

“어쨌든, 이해했다. 돌아갈 순 없어.”

그 확고한 대답만은 정해졌다. 더 이상의 우문을 붙일 수 없는 기정사실이었다. 이 우주적인 존재에게 무엇을 부탁해도 의식은 계속해서 떠돌 것이고 흡수할 것이다. 그게 이 우주인이 살아있는 목적이고 이유였다.

재원은 답답함을 느꼈다. 무능력하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던 우리들의 종말은 막을 수 없었고 여기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기정사실은 두 선택지를 의미했다. 여기에서 종말이 올 때까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던가 32명의 어린 학생밖에 없는 위태위태한 사회에서 끝을 기다리는가.

거부감은 없었다. 우주인이 보여준 기억, 지식들은 훌륭했다, 그 일부에 인류가 추가된다는 것. 어쩌면 명예스러울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죽는다 라는 의미 자체가 애매해진 순간이었다.

“왜 나한테 이런 것을 보여준 거지?”

=선택을 위해서다.=

“선택?”

그러고 보니 의식 공유체가 되거나, 표본이 되거나 하는 말을 했었지.

=움직일 것인가. 가만히 있을 것인가=

“…뭐?”

재원은 잠시 머리로 되새긴 뒤 최대한 상대가 듣기 기분 나쁘게 말했다.

마치, 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에게 말하듯이.

=구체적으로 나와 의식을 공유하고 방공호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표본’이 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표본이라는 말에 재원은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어렸을 적 곤충 박물관에서 본 나비 표본이 떠올랐던 것이다. 엄마도 여동생도 예쁘다며 소란을 떨었지만 핀에 꽂혀 액자에 박힌 모습이 끔찍하기만 했다.

“표본은 싫은데….”

=그렇다면 나와 의식을 공유해라.=

“….”

재원은 잠시 입을 다물고 옆에 서 있는 시화를 쳐다본다. 신중해야한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의식의 공유’란 것이 무엇인지, 재원으로써는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즉, 방금 알약을 먹었던 것과 같이 지식들을, 수많은 정보들을 공유한다는 것.

허나 ‘공유’란 의미는 일방향이 아닐 것이다. 즉, 이 우주인의 말을 따르면 내 생각까지도 우주인에게 흘러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원은 고민했다. 어차피 선택지는 하나뿐이란 것도 모르고 괜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주인이란 사실을 인정하게 된 순간부터 끈임 없이 흥분된 상태였다. 어느 인류가 우주와 조우하고도 냉정한 채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재원은 그

 

묘한 기시감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

시화는 아주 미세하게 손가락을 떤다. 재원은 그 사실을 알고 손목에서 손을 때곤 시화의 손을 꼬옥 붙잡아 주었다.

“그 전에 하나만 확인하자. 네 목적은 뭐지?”

=그들을 흡수함으로써 인류의 지식과 의식을 기록하는 것이다.=

“알았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재원은 각오를 다지고 입을 연다.

“너는 ‘평화적인’ 32명의 학생들을 흡수함으로써 인류의 지식과 의식을 기록하는 거다.”

재원은 우주인과의 공통의 목적을 확립했다.

어차피 멈춰버릴 32명이라면 적어도 마지막엔 최대한 인간답게 살게 하고 싶었다.

자신도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재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좋다.=

우주인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승낙했다.

“그럼. 해.”

스읍. 숨을 들이마신 재원은 굳게 각오를 다진 뒤 시화의 손을 놓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군복의 여자가 거대한 기둥에게 다가가 또다시 알약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아까보다 조금 더 크고 무거웠다.

재원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입에 넣었고.

 

우주인과 의식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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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직시하지마 피하고 싶은 현실이라면 받아들이지 말고 부숴버리면 되는거야.

방공호 38편
인형이 되고싶은 인간 31편
클래스 전쟁 과 아이돌 29편
(가제) 계수나무 -월계- 29편
레루레루! 1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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