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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 메이드와 개 by B-Luv

개판 야설

[개판]
총 편수 25 / 총 관심작 수 23 / 총 추천수 38 / 총 용량 350.586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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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드와 개 : 두번째의 첫번째 이야기
0명 참여 별점
 
  21 B-Luv[minhee413]
조회 1819    추천 1   덧글 3    / 2011.02.12 21:34:47

 고양이는 아홉 번의 삶을 산다. 한 고양이의 이야기다. 그 고양이는 8번의 비참한 삶을 살았다. 매번의 삶에서 깨닫고 배웠다면 다음 삶에서는 뭔가 더 나아지고 행복한 삶이 찾아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의 문제 보다 외적인 문제가 더 컸다. 세상은 고양이에게 별로 녹록치 않았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서 죽어버린 삶이 8번의 삶 중에서 4번이나 되었고 다른 삶에서는 불구가 되거나 병에 걸려 일찍 죽어버렸다.
 그리고 8번의 삶에서 어떤 희망도 찾지 못했던 고양이는 마지막 삶도 포기하려 했지만, 구원 되었고 마지막의 삶에선 진짜 삶을 찾게 되었다.
 미아는 방에 꽂힌 이야기 책 중에서 고양이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다. 매일 읽고 또 읽어서 닳아 없어질 것 같이 읽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읽고 저녁에 자기 전에 읽었다. 미아가 이 저택에 온지 벌써 한달 하고 반이나 흘렀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
 미아는 오전의 일과를 끝내고 책을 들고 나와 읽었다. 괜히 본관 입구의 계단에 걸터 앉아 문학소녀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양산을 쓴 채 홀로 정원을 산책하고 돌아오던 비나는 미아 앞에 섰다.
 “또 그 책 읽는거야? 안 질려?”
 “별로.”
 비나는 그 책이 어디 있었던 책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유리 저택엔 셀수도 없이 많은 책들이 있지만, 미아의 방은 비나의 방과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에 몇 번 들어 가 본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런 책을 못봤던 것 같다. 시덥잖은 일이다. 관심이 없기 때문에 못봤던 것이다.
 비나는 장난기가 돋았다.
 “아, 그 책 사실 뒷이야기 있는거 알아?”
 “음? 아니 그런 이야기는 처음이구나? 말해주지 않겠느냐?”
 “그 고양이. 죽어.”
 “그야 당연하지 않느냐, 살아 있는 건 모두 죽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나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쨌건 비나가 바란 반응이 아니다. 뭔가 안타까움과 무대 뒤편을 알아버린 듯한 허무감 짙은 표정을 보고 싶었다. 미아는 어쩐지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비나의 내면에 있던 어떤 것을 자극했다.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비참하게 죽는다는 그런 말이야.”
 “뭐? 아니 행복하게 끝났는데 어째서 비참하게 죽는단 말이냐!”
 미아가 벌컥 화를 냈다.
 “워, 워 침착하고 잘 들어봐. 그 이야기에서는 죽어가는 고양이에게 한 여자아이가 먹을 것을 나눠주어서 고양이를 구하지. 그리고 고양이는 마지막 진짜 삶을 여자아이를 위해 살기로 결정하잖아?”
 “음, 그래 그렇지. 아름다운 이야기 아니겠느냐?”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고양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거 아니겠어? 달님도 아니고 만능일 수는 없단 말이지.”
 “흠…… 뭐 그렇다 치자.”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 그래도 고양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어, 가끔 애교도 떨고 지나가던 바퀴벌레도 잡아먹고 쥐도 물어 잡았지.”
 “……깔끔한 이야기는 아니구나.”
 “그래, 하지만 그게 고양이인걸 어쩌겠어?”
 미아가 계속 해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건 여자아이가 이해 할 수 없었지. 바퀴벌레를 먹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충격에 빠진거야.”
 “그래서?”
 “때려죽여버렸어. 아이들은 원체 힘조절이란걸 모르거든.”
 물론 방금 지어낸 이야기다. 그러나 적중했는지 미아는 고개를 갑자기 떨구더니 부들부들떨었다.
 “응? 왜 그래? 왜 그래?”
 비나는 킥킥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애써 참아본다. 명중! 월척! 이라고 외쳐버리고 싶다. 몸 안에서 월광증이 도지려고 하는 것을 억눌렀다. 킥풉큭. 비나는 양산을 접고 허리를 내려 비스듬하게 숙였다. 미아의 얼굴을 보려고 애썼다.
 비나는 중학생 정도의 체구고 미아는 완전히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체구다. 중학생 언니가 동생을 거짓말로 울려먹고 달래는 척 하는 모습과 똑같았다. 미아가 떨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거짓말! 거짓말하지마! 나의 여자아이는 그렇지 않아! 나, 나의 여자아이는 착하고도… 예쁠거란 말이다!”
 미아가 소리쳤다.
 “이게 너의 여자아이야!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해!”
 “으아아앙 다 싫다! 그런거 거짓말 일 거잖느냐!”
 미아는 그대로 울어버리며 달려나갔다. 책도 내팽겨쳤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삶을 반복해도 아이는 아이다. 예상외로 너무 격한 반응에 비나는 흥이 되려 식어버렸다.
 “나 참, 그렇게 울어버리면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나쁜 사람 맞습니다. 주인님.”
 메이드가 어느새 뒤에 서있다. 메이드는 자연스럽게 주인님에게서 양산을 건네받고 비나가 정원을 거닐며 묻은 나뭇조각과 먼지들을 탈탈 털어냈다.
 “아, 언제왔어?”
 “방금입니다. 미아에게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가버렸군요.”
 비나는 미아가 두고 간 책을 들어 한나에게 건네줬다.
 “이거 미아 방에 꽂아 두고 와줘.”
 “예, 알겠습니다.”
 미아는 낙엽의 집 옆에 앉아 훌쩍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이 세상이 그렇게 나쁠 리가 없어.”
 미아가 이 저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길 잃은 미아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울고 있자니 초겨울의 찬 사람이 시리다. 훌쩍이는 소리에 개가 나왔다. 개가 그 푹신푹신하고 포근포근한 털을 흩날리며 미아에게 다가왔다. 미아는 마치 개가 등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등에서 울어.’
 미아는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고 두 팔을 쫙 벌려 개를 껴안았다. 넓은 등을 가진 든든한 개! 낙엽은 언제나 미아의 편이다. 미아의 방에서 읽었던 동화 속 이야기처럼 크고 온화한 개는 마치 인형처럼 혹은 엄마의 품처럼 따뜻하게 어린 아이를 위로해 줄 것이다.
 “비켜.”
 “응?”
 미아는 순간 바다 건너 어느 여자의 이름을 들었다. 비키? 비쿄?
 “아니, 걸리적거린다. 그러니까 물러나라.”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서 훌쩍이면 내가 잠을 잘 수 없잖은가.”
 개의 차가운 발언에 미아가 얼어붙었다. 개가 이럴리 없다. 개라는 것은 자고로 애교가 많고 활동적이며 인간과 더 없이 친밀한 파트너 쉽을 구축하고 있는 생물이다. 개에 관련된 수많은 따뜻한 이야기에 따르면 울고 있는 불쌍한 소녀를 향해 비키라는 말을 할 수 없다. 파트라슈는 개의 몸으로 노예처럼 우유를 끌었지만 소년을 사랑하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개였고 오수의 개는 세상모르고 자는 주인을 위해 몸을 바쳐 불을 끈 아름다운 미담을 남긴 개였다. 그리고 플루토는 음침한 이름과는 달리 미키의 충견이다.
 “틀렸어!”
 미아가 눈물을 닦고 소리쳤다.
 “뭐가 틀렸다는 말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틀렸어! 이 내가 요즘 동화책을 읽어서 아는데 개라는 것은 그런 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미아가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의 연설에 도취되었다. 신이란 존재가 어찌 이리도 감정적인가.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은 거지?”
 개가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나서 반문 했다. 아직 머리가 아프다.
 “좋아. 일단 내가 시나리오는 쓰겠다. 낙엽은 내 시나리오대로 따라 하면 되는 것이다. 알겠느냐?”
 미아가 자신 만만하게 소리치고 낙엽의 방 겸 창고에 들어가 종이와 펜을 꺼내왔다. 낙엽과 한나가 담소를 나누는 테이블에 가서 펜을 잡았다.
 “가만, 글자는 어떻게 쓰더라?”
 “한심하구나.”
 “떽! 신에게 어찌 이리도 무례한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아득한 시간 동안 감금되어 있으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니라. 아무튼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정말 개로써 바람직한 자세를 그대에게 가르쳐주겠노라. 감사히 여기도록, 알겠느냐?”
 “멍.”
 낙엽이 귀찮아서 대충 한번 짖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미아는 개를 물리고 다시 개의 집 벽에 기대어 훌쩍 훌쩍 우는 흉내를 내었다. 신 보다 연출이나 연기파 배우를 하는 쪽이 적성에 맞을 것이다. 애당초 이런 마조꼬맹이가 신이라니,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한 훌륭한 사례다.
 미아가 고개를 무릎 사이에 박고 훌쩍훌쩍 우는 흉내를 내다가 낙엽에게 이리오라고 손짓했다. 낙엽이 호랑이 사냥하듯 어슬렁 어슬렁 기어들어온다. 미아는 여기까지가 첫 장면이라고 말했다. 아주 만족스럽게 낙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한번 물렸다.
 “아하, 기분 좋아. 아니, 아니다. 이게 아니다. 동화책에서는 이다음 장면이 중요하지. 개가 울고 있는 소녀 옆에 가서 끼잉 끼잉 하고 소리를 내면서 소녀를 살살 밀어야 한다. 자, 시작하자. 준비되었느냐?”
 “워루 워르 월월.”
 꽈당. 낙엽은 너무 세차게 소녀를 밀어버렸다. 미아는 얼굴을 그대로 땅에 처박은 꼴이 되고 말았다. 신이 개에게 밀려서 개 앞에 엉덩이를 쳐들고 있는 꼴이라니, 자존심이 상해도 이렇게 까지 상할 수 있을까? 미아는 번쩍 일어나려고 몸을 들었다. 하지만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이 제일 중심 잡기가 취약한 법. 개는 장난스럽게도 한번 더 밀었다. 이번엔 개구리 마냥 폴짝 밀리면서 바닥에 찰싹 붙어버렸다.
 “하지말도록. 무슨 말인지 알텐데?”
 미아가 얼굴에 묻은 흙을 떼면서 근엄히 주의를 주었다.
 “알았다.”
 다시 연기를 재개하려는데 미아가 손바닥을 펴며 멈추었다.
 “잠깐, 잠깐만 있어보거라. 이걸로는……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느냐?”
 미아가 검지손가락을 이마에 짚어가며 고민했다. 개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개는 빨리 들어가서 그냥 졸고 싶다. 좁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고 재잘거리는 새소리를 음악 삼아. 현실은 재잘거리는 신의 탈을 쓴 마조꼬맹이지만.
 “그렇다! 핥으면 어떨까? 개라면 핥는게 본업 아니겠느냐?”
 “원한다면.”
 다시 연기 재개. 미아가 앉아있자. 개가 온다. 미아 옆에 개가 섰다. 그냥 쿵 하고 밀어버리려다가 참는다. 코끝을 살짝 들어 미아를 쿵쿵 쳤다. 그리고 핥았다. 핥.
 핑! 하고 느낌이 온다.
 “아, 앗!”
 미아가 짧게 소리를 내었다. 개는 괘념치 않고 계속 핥았다. 핥.
 “아, 흐. 흥. 하. 하흥.”
 미아의 얼굴에 따뜻하고 끈적한 개의 혀가 닿았다. 마치 스캔하듯 개의 혀는 미아의 얼굴 반쪽을 천천히 핥는다. 맹인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핥는다. 개의 혀는 다시 천천히 내려와서 턱 밑 선과 목으로 내려온다. 미아는 어느새 얼굴이 붉게 상기 되었고 몸을 살짝 부르르 떤다. 무심하게 핥짝핥짝.
 “왜 그러나?”
 개가 묻는다.
 “아흥, 아~ 아~무것도 아니니라.”
 미아의 하얀 몸이 부르르르 떨린다. 개의 현란한 혀 놀림. 이것이 짐승의 핥기다. 개의 핥기는 햐트햐트 미아의 가슴은 하트하트. 짐승이 짐승처럼 핥는데 누가 넘어가지 않으리오. 잘 길러진 집개 속 숨은 야성, 본능의 핥기가 미아를 침몰시켰다. 미아는 잘 앉아있다가 혀로 핥았을 뿐인데도 옆으로 옆으로 기울어진다. 부드러움은 딱딱함 보다 강하다. 개가 밀어 넘어뜨렸을 때 미아가 화를 냈지만, 부드럽게 핥으니 미아가 스스로 넘어간다. 넘어간다. 미아가 넘어간다.
 쿠당
 미아가 완전히 바닥에 옆으로 누워버렸다. 개는 집요하게 미아의 목덜미를 핥는다. 목에 남아 있는 풀리지 않는 쇠사슬이 있었지만, 그것을 잘 피해 핥았다. 개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태도를 가르쳐주겠다던 미아의 패기 넘치는 계획은 어디로 가버리고 마치 개의 애완동물 마냥 개 밑에 누워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아. 시간의 화신님. 체통을 지키소서.
 핑크빛, 몸이 바르르 떨리는 눈앞이 노랗고 붉고 파랗고 초록빛의 번져가는 물감 같이 커다란 원이 구름이 두근대는 심장이 누군가의 접촉에 약한 하트가 손끝이 달걀 쥐듯 모아지고 발끝이 모이는 분홍빛의 달달한 바닥이 없이 하늘에 떠있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이 일자로 모은 발의 꼬임 화사한 햇살마저 야한 끈적끈적하고 농염하게 눈앞이 흐린 보석 같이 빛나는 물기는 주체할 수 없이 소름이 돋지만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 느껴보고 싶은 붉은 숨이 나오는 주먹을 줬다 폈다 참을 수 없어 스스로의 몸을 쓸어내리고 피어오르는 아드레날린 자꾸만 벌어지는 입술에 맺히는 침 흘러 나올 것 같이 타내리는 복숭아 같고 젤리 같고 따뜻한 죽같이 죽같은 기분이 미아를 감싼다.
 귀찮다. 저 옛날 볼 수 있었다던 지구 어딘가의 색이 변하는 거대한 바위 에어즈록처럼 굳은 바위 같다. 사막. 더 없이 황량한 바위 사막 그 자체. 뜨거운 사막을 걷는다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빨리 끝났으면 할 뿐. 개의 기분이다.
 “어디 아픈가? 그만 할까?”
 그 말에 미아는 정신이 돌아온다. 그만 하는게 아무래도 옳겠는데 조금 더 하고 싶다. 하지만 조금 더 해달라고 하면 낙엽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어찌해야 하나.
 “그만 한다?”
 어찌해야 하나.
 “하, 아! 잠깐! 그만! 아니아니 그 그만이 아니라 혀, 혀혀… 혀를 거두지 말거라.”
 개가 혀를 빼는 것은 멈추었다. 다만 혀가 움직이는게 멈추었다. 미아는 아쉽지만 신의 체면에 계속 핥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핥기의 깊이를 알고 싶기도 하다.
 미아의 지금 심정은 예를 들어 맛이 희미한 아이스크림을 계속 핥아도 그 진짜 맛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때 반복해서 핥는 기분과 같다.
 “저, 저, 뭣이냐.”
 “그만하라고?”
 개의 말은 어째서 이렇게 야속하기만 한지,
 “아니, 그게 아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왜 개는 미아의 마음을 잘 몰라주는 걸까? 미아는 도저히 핥아 달라고 자기 입으로는 말 할 수 없다. 누운채로 눈만 힐끔 힐끔 개를 올려다 본다.
 “왜, 뭐. 할말있나?”
 “아니, 아니 그니까, 그니까.”
 “빨리 말하도록. 귀찮다.”
 “흑, 핥아줘.”
 미아는 스스로 말해놓고 자괴감이 든다.
 “이게 기분이 좋은건가?”
 낙엽이 다시 핥는다. 미아에게 이제 진짜 개란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려던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글썽글썽한 눈으로 한참을 재미보는데 뚝 그친다. 이제 고지가 얼마 안남았는데, 뚝 그친다니. 이게 무슨 소리요.
 “뭐, 뭐냐.”
 미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역시 귀찮군. 이제 취기도 가신다.”
 “아? 그래도, 조… 조금만….”
 미아가 손을 뻗어 뒤도는 개를 붙잡는다. 나쁜 남자, 아니 나쁜 수컷 낙엽은 몸을 흔들어 뿌리친다. 돌아와 그대, 내게 돌아와. 나 항상 그대 생각뿐이야. 미아는 팔을 뻗어 메이드복 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아냈다. 절그렁 하고 쇠사슬이 소리를 낸다. 아직 몸이 아찔아찔 한게 아쉽고 아련하고 안타깝다. 괜히 자기 피부를 쓱쓱 쓸어 내리며 한숨을 쉰다.
 “난 네 애완동물이 아냐. 누군가의 애완동물이 될 생각도 없고. 그러니까 많은 걸 바라지마.”
 낙엽이 한마디 했다.
 “너, 너무 하지 않느냐?”
 나쁜 수컷의 말에 미아가 충격 받는다. 여태껏 시간의 화신님 생각에 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생각했다. 애완동물 같다고 생각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낙엽에게 볼을 비비고 쓰다듬을 때마다 애완동물처럼 고분고분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밤마다 자기 방에 불러서 같이 자고 싶기도 했다. 인형 보다야 훨씬 나을거라 생각했다. 미아의 그런 생각을 어찌 알았는지 정면으로 맞부딪혀 쐐기를 박는 낙엽의 말에 미아가 상처 받지 않을 리가 없었다.
 “좋다. 맘대로 하거라. 나, 시간의 화신님께선……그런 애완동물 따위 필요 없으니까 말이다. 흥.”
 미아도 툭툭 털고 일어나 팔짱을 끼며 말했다.
 “글세, 난 니 애완동물이 아니라니까…… 맘대로 해라.”
 울컥
 “낙엽은 바보! 멍청이! 저리가!”
 주먹쥐고 발을 쿵쿵 구르면서 낙엽의 낡은 오두막을 빠져나왔다. 쿵탕쿵탕 하고 일부러 바닥의 나뭇가지들을 세차게 밟는다. 낙엽들을 낙엽이라 생각하며 힘내서 밟으니 그나마 기분이 좀 풀어지는 것 같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사람은 청승맞아 지나보다. 달만 보고 사는 것 같은 비나이다도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노곤해져 있었다. 이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는  더위에 녹아 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리를 흔들었다. 흔들 흔들 여자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하얀 드레스가 바람결에 다리의 흔들거림에 살랑인다. 들고 있는 찻잔의 차도 가벼이 살랑살랑 거린다. 물기에 젖어 빛나는 입술로 차를 마신다. 불치의 병 월광증에 걸린 유리 저택의 주인님 비나이다의 오후 유흥이다. 이 시간대의 저택은 더 할 나위 없이 나른하다. 아침의 일도 끝나고 각자의 자유시간이지만 이 저택에 딱히 놀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각자 햇볕을 쬐곤 하기 때문이다. 얼마전의 소동도 월광증 덕에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야 하는 비나에게는 벌써 머나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헌데, 요즘 비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
 이 저택에 누군가 들어올리도 없는데 물건이 사라진다던가 부서진다던가 하는 묘한 일이 있는 것이다. 워낙 잡동사니가 많은 저택이다보니 쓰는 물건 아니면 사라진지도 모르지만 찻잎이 사라진 뒤로 알게 되었다. 어느날처럼 온갖 폼을 잡아가며 차를 음미하려고 한나를 불렀는데 없다는 것이다. 찻잎에 다리가 달려서 혼자 어딜 갔을리도 없다.
 “아니, 그건 조금 귀여울거 같은데?”
 마른 허브잎이 건초 더미처럼 쌓여있다. 아무도 없을때면 나타나는 보거스처럼 식재료실에서 전부 나간 걸 확인하자마자 건초 더미가 벌떡 일어난다. 아래는 다리가 달려있다. 털이 조금 난 점이 남자 찻잎이다. 옆에서 팔이 불쑥 솟아난다. 건초에서 눈도 솟아난다.
 “징그러…… 이건 아닌거 같아.”
 찻잎에 발이 달렸다는 생각은 제외.
 누군가 들어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 저택은 쉽게 들어와 지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마루 밑의.
 “작은 요정님.”
 “네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주인님?”
 한나가 뒤에 섰다. 검정색 구두와 진한색의 메이드 복과 레이스가 달린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어깨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과 그 위에 뾰족뾰족한 머리띠를 꽂았으며 이목구비는 뚜렷하고 나사가 풀린 것 같지만 위압감 넘치는 눈동자를 가진 유리 저택의 메이드다. 얼마 전까지는 유일한 메이드였으나 마조 꼬맹이 시간의 화신 미아가 이 저택에 살면서 메이드일을 하는 덕분에 그냥 메이드가 아니라 메이드장이 되었다. 얼마나 일을 오래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잘하는 편은 결코 아니다. 언제나 과묵하며 변화 없는 표정으로 묵묵히 일하는 것을 본다면 누구라도 ‘아! 저 하녀는 정말 일을 잘할 것 같구나!’ 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잦다. 다만 이 저택의 주인님에게 바치는 충성과 의욕만은 넘쳤다. 안타깝게도 가장 위험한 타입이다 의욕은 넘치는데 일은 잘 못하는 사람.
 또 그 말없는 위압감이 풍기는 만큼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강하다. 지금 이 순간만 해도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주잉님 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서있는 것이다. 소리없이 강한 한나 마치 어둠의 사제. 원래 소리가 나지 않는 것들은 강한 법이다. 예를 들자면 저 험한 시베리아의 숲을 누비는 고독한 호랑이. 어둠 속에서 적을 노리는 부리부리한 소음기 달린 총구. 야자 시간에 딴짓하는 학생의 뒤통수를 노리는 무시무시한 감독 선생님. 신형 청소기 신형 컴퓨터 신형 자동차. 그 모두가 소리 없이 강한 것이다.
 “힉…….”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주잉님인 비나가 움츠러들고 말았다. 한나는 그 무덤덤한 표정으로 망했다. 메이드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쉰다.
 “주인님, 달도 안떴는데 월광화라니, 제가 본 최악의 사태군요.”
 월광화란 달을 끔찍이도 사모하게 되는 월광증에 걸린 환자들이 일순간 망상 같은 것이 폭주하는 발작과도 같은 상태를 말한다.
 한나가 정중히 비아냥댄다. 당신은 나의 주인님이고 난 당신을 존경하지만 가끔 한심해 보이긴 하는 군요의 의미다. 비나가 괜히 팔을 휘저어 가며 큰 동작으로 말했다.
 “흥. 잠시 귀여운 상상을 했을 뿐야 월광화라니 그런걸일 리가 없잖아. 아이 참 한나도.”
 하하 하고 비나가 웃는다.
 “재미있습니다. 하. 하. 그래요 얼마나 오래 살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정신연령은 성장하지 않으신거 같습니다. 제가 안아드릴까요? 우.쭈.쭈”
 하고 한나도 웃는다. 비나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이, 이! 바보야! ……당장 나가!”
 공수 전환. 메이드 한나의 표정이 파래진다.
 “네?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주인님?”
 “나가! 나가라구!”
 “잘못했습니다. 이러지 마세요. 네?”
 “흥이다. 주인님의 귀여운 상상을 그렇게 이야기 하다니. 흥! 흥!”
 비나가 탁 하고 탁자를 치자 한나가 슬픈 얼굴로 뒷걸음질 친다. 한걸음 한걸음 하다가 크흐힉! 하고 달려나갔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강한 우주 괴수에게도 약점은 있는 법. 한나의 유일무이한 아킬레스 건은 바로 주인님이었다. 이것이 완벽한 비유는 아니다. 한나가 강한 이유는 바로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개와 만나던 그날도 청소하다가 비나가 좋아하는 액자를 깨버렸다는 이유로 쫓겨났었었다. 흔히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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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3/06/02:38
바람지카구나 낙엽과 미아 넘좋아 수간커플♡
21 B-Luv 03/06/01:38
풉 ㅋㅋㅋ 저도 조심한 단어가 덧글에 당당히 씌여 있어서 놀랐네요 ㅋㅋㅋㅋㅋㅋ
6 SB.K 03/16/03:14
아... 치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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