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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않는 행운과 달콤한 불행(完) by 에어피트

행복한 사람에게는 행운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행운이 있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은 시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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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에어피트[btydntjddls]
조회 1141    추천 0   덧글 0    / 2012.01.12 01:29:45


 

 

그녀는 초조함에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자신의 학교 학생들이 의식불명 사건의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사전에 들어보지 못했다. 벌써 이곳에까지 일의 진척이 진행되었을 거라고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한 조건들 중, 프로젝트 대상에서 최대한 이 지역을 배제하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패닉상태에 빠질 것만 같던 그녀는,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지만, 상대는 별로 소란 피울만한 일도 아니라는 듯 침착하기만 했다.

 

"왜 갑자기 우리 학교 학생들이……."
"놀랄 만한 일도 아니잖아?"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자는 폐쇄된 공장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의자에 풀썩 드러누우며 중얼거렸다.

 

"애초에 대상은 무작위, 무차별적으로 선정되는 거니까 예측하지 못할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어."

 

그 자는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론만을 늘어놓으며 딱딱하게 대꾸한다.
그래서 더욱이, 깐죽대는 느낌마저 들었다.

 

"설마, 이제 와서 못하겠다는 건 아니지? 지금껏 그렇게 일을 벌여온 주제에."
"……."

 


대답을 하는 대신, 그녀는 그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학교에서의 인상과는 정반대이다. 이중인격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녀는 그 자에 대해 결코 악감정을 가질 수 없었다. 그 자도 또한, 그녀가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까.
그녀는 여전히 이 일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이 일은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이미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길이다.
그녀는 가슴팍을 괴롭다는 듯이 움켜쥐었다. 이번 주에만 해도 벌써 열여섯 명이다. 계획은 착착 진행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괴로운 걸까. 지금까지 문제는 없는데. 지금의 자신은 옳은 일을 하고 있을 텐데. 모두가 면전에 대고 욕을 하고 얼굴에 침을 뱉을지라도 물러서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누구의 강압에도 굴복하지 않을 각오를 했을 텐데.
그녀 자신의 일말의 망설임과 양심이 스스로를 안에서부터 파먹어 들어간다.
그녀는 웃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항상 마음만은 불행했던 그녀는, 억지로 웃으면서 행운을 추구한다.
모두와 함께하는 행운을 추구한다.
드디어 학교에까지 일이 진행되어버렸다. 프로젝트도 거의 마무리에 치닫고 있다. 그들도 순조로운 계획에 만족하고 있겠지. 누구에게도 아무런 동의도 얻지 않고 멋대로 일을 저질러놓고, 멋대로 대의를 위해서라고 합리화 하면서.
그녀 또한 자신이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
항상 성공만 해온 인생이었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러왔다.
이번에만큼은 그런 실패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녀는 다짐한다.
또다시 억지로 웃는다.
소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설사 소년이 자신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일지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존재일지라도.
가야할 길을 막는다면 걷어 차버릴 테다.
이제 조금만 더.

 

 


 

 

다음날.
어쩐지 몸이 무척 피곤했다. 마치 예전의 몽유병이 재발해서 밤중에 거리를 나돌아 다니기라도 한 것처럼. 지각하기 직전에서야 교실 문 앞에 도착하곤, 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교실 문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교실은 아이들이 무리지어 이야기하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사건의 피해자인 옆 반의 남학생에 대한 이야기로.

 

[안녕.]

 

오늘은 어째서인지 집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정차미가 뒤이어 교실로 들어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짤막하게 인사를 던졌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야 겨우 나타나다니 이상한 일이다. 그녀는 소란스러운 교실을 쭉 둘러보고는,

 

[왠지 다들 소란스럽네. 이렇게 아침부터 소란스러워서는, 다들 불투명한 미래를 지니며 살고 싶은 걸까?]
[너, 평소에 눈치 없다는 소리 자주 듣지.]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그녀에게 핀잔을 주었다.
교실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들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다들 이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한 거겠지.
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적이 있다면, 잡아서 쓰러뜨리면 된다. 하지만 지금 이 사건은, 누군가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 자연발생적인 사건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누군가가 억지로 브레이크를 걸어놓은 것 같다.

 

[뭔가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이네.]
[납득이 갈 리가 없잖아.]

 

정차미가 내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을 딱딱하게 대꾸한다.
피해자인 학생과는, 친한 사이인 것도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다. 얼굴이나 가끔 스치듯 본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저 평범한, 학교 동창일 뿐.
하지만 그 아이가 어떤 나쁜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부조리함을 느낀다.
반드시 누구 한명이 이런 일을 겪어야 했던 것도 아닐 테고, 그게 꼭 그 아이였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운이 나빴기 때문인 걸까.
그런 식으로 누군가가 이런 일을 당해도 될 리가 없다. 절대로.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눈을 응시하며 심문하듯 질문을 던졌다.

 

[너, 어제 그 후에 어디 갔어?]
[집.]
[정말로?]
[응.]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이제야 왔구나.]

 

익숙한 목소리. 아이들 사이에서 이야기하던 인하가 내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잠깐 할 말 있는데 괜찮아?]
[무슨 말?]
[있잖아, 그…….]

 

인하는 내 등 뒤를 향해 슬쩍 눈빛을 주었다. 나는 뭘 말하려는지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잠깐 볼일.]

 

그런데, 정차미가 갑자기 기척을 지우고는 내 등 뒤에서부터 조용히 자리를 떴다. 나는 잠시 넋을 놓고 그녀를 쳐다보는데, 어떻게 된 게 발자국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인하가 나타날 때마다 계속 피하는 것 같은데, 역시 다른 사람이 있으면 신경 쓰이는 걸까. 선생님이 말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려 하는 걸지도.

 

[여전히 널 계속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괜찮아? 무슨 일은 없었고?]
[무슨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다 큰 어린애 데리고 쇼핑 다녀온 일은 있었다. 정말 별 일은 없었던 게 다행이다.
[그렇게 큰일은 없었어. 보다시피 멀쩡히 학교에 왔잖아.]
[그렇다면 다행인데…….]

 

인하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교실 구석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나저나,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다니?]

 

나는 인하가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을 다시 질문으로 되돌렸다.

 

[내가 어제 정차미에 대해 알아본다고 했잖아.]
[어.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그게…… 알아냈다고 할까.]

 

평소에는 어떤 말도 얼버무림 없이 말하더니, 왜인지 우물쭈물했다.

 

[뭐가 어쨌기에 그렇게 뜸을 들여?]
[결론을 말하자면, 아무것도 안 나왔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한 기분이 되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정차미에 대한 신상정보는 어떤 것 하나 남아있지 않아. 이름도 본명일지 의심스럽고.]

 

인하도 말하면서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출생연도부터 시작해서, 본적, 학력, 가족관계, 심지어 국적에다 이름에 대한 것까지 아무런 정보가 없어. 확신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성별정도?]
평소에 들었더라면 웃어넘길 이야기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럼 우리 학교에 입학은 어떻게 한 거지?]
[당연히 서류랑 신분증명서를 위조한 거겠지. 그 정도 일이야 전문가에게 맡기면 금방이야.]
[참나…….]

 

인하가 가볍게 말하는 뒤쪽세계의 이야기에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아마 자신의 정보가 유출될 것을 염려해서 사전에 본인이 직접 손을 써둔 게 아닐까 싶은데.]
자신의 흔적을 모두 삭제한다. 신상정보의 말소. 어지간히 뒤가 구리지 않는 이상,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이는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행위니까.
[나는 이 사건하고, 정차미하고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억측 아니야?]
[글쎄,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인하는 자신의 믿음에 흔들림은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내 조사에 따르면 정차미가 이 지역에 온 건 약 한달 하고도 보름 전이야. 게다가, 이 사건이 서서히 시작된 것도 한 달 하고도 보름 전 무렵이었고.]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생각해 봐. 한 인물이 자신의 인적사항을 말소하고 학교에 위장입학을 해온 후부터, 이 사건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어. 이 두 항목들의 시기가 유사하다는 게 단순한 우연일 수 있을까?]
[그건…….]

 

나는 부정하려다가,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껌 딱지처럼 내게 달라붙어있으려던 녀석이, 갑작스럽게 기척을 지우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대략 5분여 경 후, 우리 학교 학생이 의식불명에 빠졌다고 했다.
정말 이 두 사실이 그저 아무 관련성도 없는 우연일 뿐일까?
그것만이 아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 그녀가 찾아왔던 시간대를 생각해 보더라도…….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은 일단 인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했다.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괜한 이야기를 해서 좋을 것은 없다.

 

[정말 네 추측이 옳다 친다면, 정차미가 나한테 접근해 온 건 대체 왜 그런 건데? 정말 무슨 일을 벌이고 있다고 치면, 누구와도 연관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잖아.]
[이건 단순한 추측인데 말이야.]

 

인하는 목소리를 더더욱 낮추면서 속삭였다.

 

[너를, 이용하려고 하는 걸지도 몰라.]

 

인하의 설명은 간단했지만 듣기에 상당히 불쾌한 내용이었다.
그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가지게 된 나라는 조그마한 접점을 이용해서, 지금의 고등학생이라는 위치에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너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인데?]

 

나는 조심스럽게 인하에게 물었다.

 

[일단은 가만히 보고 있을 거야. 아직까지는 정차미가 아무런 일도 벌이지 않고 얌전히 있으니까.]

 

즉, 무슨 일이든 벌이기라도 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말이겠지. 지금은 그녀가 무언가를 했다는 확증이 없으니까.
인하의 말에는 무게가 담겨있어서, 나도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무언가 꺼림칙함을 느끼긴 했지만…….

 

 

[서영아, 잠깐만 복도로 좀 나와 줄래?]

 

인하와의 이야기가 끝나고 아침 조회가 끝났다. 선생님은 교실을 나서기 전에, 갑자기 나를 불러내셨다. 나는 교실에서 나와 앞문 쪽에 계신 선생님에게 향했다.

 

[어? 차미는 왜 같이 따라왔어?]

 

복도에 나오자 기다리고 계시던 선생님이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내 뒤에는 정차미가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교실에 없다 했더니, 기척도 없이 언제 다가온 걸까. 짜증을 한껏 억누르고 손짓으로 쫓아냈다. 평소대로의 무표정으로 교실로 되돌아갔지만, 어쩐지 시무룩하게 보였다. 기분 탓이겠지.

 

[어떻게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것 같네.]
[뭐 그냥 그냥요…….]

 

사이가 좋다기보다는, 단순히 스토커와 피해자의 관계이지만.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아니, 수업이 시작할 때가 다 되어 가는데 아연이가 아직까지 안 와서 말이야. 서영이 너, 혹시 아연이 지금 어디서 뭐하는지 알아?]

 

우리 반 반장 서 아연. 그러고 보니 이제 1교시가 시작되기 직전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평범하게 생각하자면, 학교에 오는 길에 교통체증이 심해서 버스 안에 갇혀 있을지도. 하지만, 어제 바로 그런 일이 있었으니만큼 안심할 수는 없다.

 

[아무리 모범생이라 하더라도 하루쯤은 지각할 수 있겠죠. 아니면 학교 오는 길에 도중에 교통사고 때

 

 

문에 길이 막혔다든지요. 걔네 집이 좀 멀다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일단 선생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얼렁뚱땅 둘러대듯 대답한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인데.]
[혹시 그 의식불명 사건 때문에 그러세요?]
[서영이 네 말대로 별 일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역시 내가 너무 걱정이 지나친 걸까…….]

 

선생님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걱정하시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안수이 선생님은, 지금껏 내가 만나봤던 어떤 분보다도 학생을 사랑하는 바보 같은 선생님이니까.

 

[뭐, 별 일 아니겠죠. 걔는 신종 플루에 걸려도 부득부득 우겨서 학교에 올 만큼 고지식한 녀석이니까, 그런 영문도 모를 병 같은 걸 걸릴 리도 없다니까요.]
[나도 그건 잘 아는데……. 이 일은 병이라든지 그런 거랑은 관계가 없는 것 같아. 그래서인지 괜히 더 불안하네.]
[괜찮을 거예요. 틀림없이.]

 

나는 강한 말투로 말했다. 선생님이 이 이상 불안해하지 않으시도록 하기 위해서.

 

[알았어. 서영아, 만약 아연이가 학교에 오면 교무실로 불러줘.]
[네.]

 

선생님은 그 말을 끝으로, 1교시 수업 준비를 하러 가신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수심에 차 보이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보니, 괜스레 나까지 불안이 피어올랐다.

 

[아, 서영아.]
[네?]
[내가 괜히 불안해 한 것 때문에 너까지 괜히 걱정할 필요 없어. 굳이 책임 느껴서 무리한 행동하지 않아도 되니까.]

 

선생님은 이번에야말로 교무실로 향하셨다. 교실로 돌아오면서, 정말 반장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피어올랐다. 선생님이 하신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이 안 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마음에 같은 반에서 반장과 친한 아이들에게 연락을 부탁해 문자나 전화를 해보았지만, 역시 응답이 없었다. 휴대전화를 집에 자주 두고 다니거나 해서 이런 일이 가끔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불안감은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났다. 수업 종이 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교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지만, 마음은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

 

[저기.]
[또 뭐?]
[혹시 우리 반 반장 때문에 그러는 거야?]

 

뒷자리에서 무뚝뚝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에 짜증으로 대꾸하자, 그녀는 정곡을 찌르며 맞받아쳤다.

 

[쓸데없이 신경 쓰지 말고 수업 준비나 해둬.]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특별히 할 말은 없는데.]

 

일일이 상대하고 있을 기운도 없어,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몸을 다시 정면 쪽으로 돌렸다.

 

[이번엔, 반장이 운이 없었던 모양이네.]

 

나는 뒤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온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황급히 뒤로 몸을 돌려보았지만, 정차미는 아무런 말도 한 적 없다는 투로 묵묵히 교과서를 펴고 있었다.

 

 

나는 무단조퇴를 하고 반장의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선생님에게도, 인하에게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이 걸리긴 했지만 한시라도 반장의 안부를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감에 속에서부터 짓눌릴 것 같았기에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반장의 집 주소는 모종의 루트를 통해서 이미 알아냈다. 학교에서 걸어서 삼십 분 거리. 버스를 타서 가면 더욱 빠르겠지만, 누군가가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로 뛰기로 했다.

 

 

[그 얘기 들었어? 요즘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이상한 전염병 같은 게 발생한다는 거…….]
[무슨 전염병? 들어본 적 없는데.]
[그 있잖아, 갑자기 멀쩡하던 사람이 픽픽 쓰러진다거나 하는…….]

 

중학생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들끼리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만 다들 농담거리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자기들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라서 그렇겠지.
하지만, 이미 누구와도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내일 누가 쓰러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게 인하가 될지, 시아가 될지, 아니면 내가 될지 조차도.

 

 

서아연의 집은 지역의 중앙 도서관 근처에 있는 빌라였다. 주변의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고, 장을 보러가는 아주머니나, 귀가하는 학생들이 지나가는 등 평범하게 평화로운 동네.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다. 그냥 아파서 쉬고 있는 것이길 빌었다. 그러면 내가 쓸데없이 걱정이 많고, 반에서 놀림거리가 되는 걸로 끝나면 될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그저 희망사항일 뿐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반장네 빌라의 계단을 오른다. 4층에 도착하고, 그녀의 집 현관문 앞에 선다. 초인종을 조심스럽게 눌러보았다. 몇 번이나 눌러보았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 외동인데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신다고 했었으니 이 시간에는 아무도 없을 터이다.
혹시나 해서 문고리를 돌려보니, 막히는 것 없이 문이 열렸다. 문을 잠그는 것을 잊었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문이 열리면서 나는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깜짝 놀랄 틈도 없었다. 주저앉은 채로 몸을 현관문에 기대고 있었던 걸까.

 

서아연은 현관에서 마치 잠든 듯이 누워있었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맥박도 정상적으로 느껴졌다. 표정도 마치 잠에 빠져든 듯이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몇 번을 몸을 흔들어 봐도, 일어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교복차림에 책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등교하기 직전 집에서 나올 때 갑자기 의식을 잃은 모양이다.

 

늦어버렸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축 처진 채 누워있는 서아연을 보고 있자니 이것저것 머릿속에 떠오른다. 슬픔? 아니, 그런 감정은 아니다. 안타까움? 그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의 무력함만 느낀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또한. 절실하게, 뼈저리게 느낀다.
또 나는 이렇게 누군가를 하나 둘씩 주위에서 잃어간다. 아무도 구해내지 못하고.
나는 숨을 스읍 들이마시고는, 무겁게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정차미, 혹시 거기 있냐?]
[……용케 알았네.]

 

바로 등 뒤에서 정차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찍은 거야. 진짜 거기 있을 줄은 몰랐다고.]
[감이 좋구나. 그나저나 왜 불렀어?]
[먼저 네가 나를 따라온 이유부터 묻고 싶은데.]
[나도 우리 반 반장이 걱정돼서 따라왔어.]
[헛소리 집어 쳐.]

 

나는 더 이상 어울려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차갑게 말했다. 이성이 점차 흔들린다. 냉정한 사고가 불가능하다.

 

[뭐가 헛소리라는 거야?]
[몰라서 물어?]
[모르니까 묻지.]
[사람 잘못 봤어. 나는 그렇게까지 멍청한 인간이 아니야.]

 

끝까지 모른 척 하려는 것 같아 내 입으로 모든 정황을 직접 까발리기로 했다. 일단 침착하게 대응해야한다. 숨을 가볍게 내쉬고는, 입을 연다.

 

[너, 오늘 아침에 어디 있었어?]
[곧장 집에서 학교로 왔어. 다른 곳은 들리지 않았는데.]
[거짓말 하지 마.]

 

나는 확신을 담아 소리쳤다.

 

[어제와 오늘의 경우는 둘째 치더라도, 계속 신경이 쓰였던 점이 있어.]
[뭔데?]
[내가 입원하고 있던 일주일 간, 당시에만 해도 의식불명 환자는 적어도 다섯 명은 나왔어. 지금까지의 의식불명 사건의 발생 추정 시간은 다 제각각이지만, 적어도 그 기간만큼은 장소랑 시간대가 특정적이었어. 대략 다섯 시 전후에, 병원 근처의 도심가에서 사건이 일어났었다고.]

 

이 사실이 뭘 의미하는지는,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게 뭔가 중요한 거라도 돼?]
[바로 네가, 나한테 병문안을 빙자하고 찾아왔다가, 돌아갔을 때의 시간이 대략 그 시간대였다는 거야.]

 

병원에 입원했던 기간 동안, 나라고 그저 손 놓고 방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건이 일어난 당일에 대한 조사를 꼼꼼히 하면서, 의심쩍게 생각했던 것들이다. 오차를 재어보아도, 오 분 안팎이었다. 내가 이런 점들을 인하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은, 정차미에게 직접 이 사실을 말하고 그 반응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말 해. 대체 너는 이 일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나를 쫓아다니는지도.]
[……45점.]

 

정차미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결과까지 도달하는 건 좋았지만, 증거가 불충분해. 추리에 도달하는 과정도 단지 시간 틀에 끼워 맞추는 식이고, 신선도가 부족하다고 할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최대의 감점 요인은 바로, 결과를 도출해냈는데 그 방향이 완전히 반대라는 것.]
정차미는 계속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댔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걸 알았는지,
[그니까, 내가 그 사건들에 차례차례 접근을 한 건 사실이지만 내가 그 사건들을 일으킨 건 아니라는 거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네 그렇습니까, 하고 믿을 것 같아?]
[믿을지 말지는 네 자유야.]

 

가능하면 믿어줬으면 좋겠지만, 하고 담담하게 말한다.

 

[……참나.]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감정이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어물쩍하게 얼버무리는 건 이제 그냥 안 넘어가. 간결하게 목적을 말해.]

[그냥 넘어가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는 도발인가 했지만 변함없는 표정을 보니 비아냥대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내가 과격한 행동으로 나서지 않을 거라는 굳은 믿음이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기라도 할 것 같아서 그래?]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 말 대로였다.
내 주변에 불확실 요소가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만큼은 절대로 막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눈에 들어오는 곳만이라도 아무 일도 없도록 지키고 싶었으니까.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직 조금의 힘밖에 없는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내게 행운이 있다면, 그것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향할 수 있도록.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였다.

 

[나는 네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아. 맹세할 수 있어.]

 

또 다시 생각을 읽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착각인지, 여전히 무뚝뚝한 말투였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부드럽게 들렸다.
갑작스런 정차미의 태도 변화 때문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정 차미라는 소녀에 대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어졌다. 맹세라는 그런 과장된 표현까지 쓸 줄은 몰랐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지만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의식불명 사건의 용의자로서의 의심이 벗겨지든 말든,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그녀가 내게 총을 겨누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나를 그렇게 믿지 못하겠어?]
[…….]

 

정차미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목소리에는 어딘가 절실함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네가 한 짓을 생각한다면 나는 너를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정차미는 갑자기, 품에서 조그마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무언가 하니, 날이 육 센티미터 정도 되는 주머니칼.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야, 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나는 황급히 그녀의 손에 쥐인 칼을 빼앗았다. 하지만, 이미 날에 베인 목의 상처에서는 강렬한 붉은 빛의 액체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피부가 새하얀 탓인지, 핏방울의 붉은 빛이 더욱 부각되었다.
[나는, 너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방금 전에 했던 말을 다시 되풀이 했다.
흉기가 자신의 손에 있더라도, 내게 상처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이제, 믿어 줄 거야?]
[그렇다고 자해를 하냐! 미쳤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믿지 않을 테니까.]

 

말문이 막혔다. 처음 봤을 때도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녀석이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 것은 도를 지나쳤다.

 

[방금 내가 안 뺏었으면 어쩔 작정이었어?]
[그대로, 찔렀겠지.]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말한다. 교복 와이셔츠는 이미 붉게 물들어 엉망진창이었다.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면 반항하지 않을 테니까.]

 

그녀는 주머니칼이 들린 내 손을 붙잡았다. 나보고 찌르라고?
눈을 봤을 때 각오를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이런 때만큼은 성가시기 짝이 없다. 진심이다. 내가 그 칼로 찌르더라도, 정말 반항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이 들었다.

 

[헛소리 작작 지껄여. 자기 몸 가지고 장난치지 마!]

 

나는 내 손을 붙잡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이제, 믿어줄 거야?]
[그딴 건 이제 됐으니까 일단 그 상처부터 어떻게 해.]
[괜찮아.]
[자기 몸이라고 막 다루냐? 안 아파?]
[아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철벽같은 포커페이스는 여전했다. 하지만 비스듬히 베인 상처는 보는 사람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럼 왜 가만히 있는 건데?]
[이정도 상처는, 별것 아니야.]

 

지금까지는 조금 짜증이 난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순전히 화가 났다.

 

[별 것 아니긴. 피가 그렇게 철철 나는데 !]
[곧 멎을 테니까, 괜찮아.]

 

무슨 헛소리냐고 하려다가,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흐르던 피는 금방 멎었다. 잘 살펴보니, 상처가 있던 부분에서는 피가 새어나왔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 피딱지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 소녀가, 내 머리를 총으로 쏘았던 그 소녀가 맞나 하는 의심이 일순 들었다.
자기 몸에 상처를 입혀가면서까지 할 일이란 건 대체 뭘까. 정말 내게 악의가 있어서 접근한 것은 맞을까 하는 의심이.
내가 망연자실 하고 있을 무렵, 정차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 뿐이야.]

 

정차미는 드물게도 말하기를 망설이는 듯 했다.

 

[네 옆에 있을 수 있게 해 줘.]

 

[…….]
[그거 하나면 돼.]

 

순간 얼굴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말을 들어본 게 처음이라 그런 건지도 몰랐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과연 그렇게 철저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짧은 순간동안 옛날의 어떤 기억을 떠올린다.
어릴 적부터, 나는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어 했다. 한때는 그게 간절한 소원이기도 했다. 왕따를 당했던 어린 시절, 나는 나를 미워하는 모두를 두려워하면서도.
누군가의 온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잠깐이나마 기대어보고 싶어서.
나는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어 했다.
인하가 정차미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림자처럼, 다른 이들 사이에서 외롭게 서 있다고.
안수이 선생님이 정차미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다른 이와 같이 있는 것이,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렵다고.
그런 그녀가 지금 내 곁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녀를 떨쳐내 버리는 것이 옳을까.
누군가에게 뻗은 손이 거절당했을 때의 슬픔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텐데ㅡ

 

[일단, 이걸로 대충 피라도 닦아내.]

 

나는 가지고 다니던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어?]
[피가 멎었다고는 해도 그렇게 피범벅이 된 채로 다니면 꺼림칙할 거 아니야.]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차미는 아무런 말없이 손수건을 받아들고는 새하얀 목에 묻은 피를 얌전히 닦아냈다.
그녀를 완전히 신뢰한 것은 아니다. 아직 긴장을 풀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가 내 곁에 있고 싶다고 했을 때 그 표정이 너무 신경이 쓰여서…….

 


[아…….]

 

나는 손에 쥐고 있었던 주머니칼의 존재를 그때야 깨닫고는 시선을 주었다. 새빨간 피가 묻어있는 것이 뭔가 섬뜩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다보니,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주머니칼의 칼날은, 단순히 그녀를 살짝 베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녹이 슬어있는 것뿐만 아니라, 어느 한 곳 빠짐없이 가느다랗게 금이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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