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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않는 행운과 달콤한 불행(完) by 에어피트

행복한 사람에게는 행운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행운이 있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은 시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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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에어피트[btydntjddls]
조회 1522    추천 0   덧글 0    / 2012.01.12 01:38:48


 

 

일단 병원에 연락하여, 서아연은 구급차로 이송되어 결국 입원하게 되었다. 선생님께도 일단 연락은 해놓았다. 선생님과 연락을 해보니,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말고 기다려라'고 하셨기에, 나와 정차미는 병원 로비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기 위해 죽치고 앉아있어야 했다. 

 

[응……앗.]
[그니까, 이상한 소리 내지 말라고 했지.]

 

묘한 소리를 내기에 머리를 꽁 하고 내리쳤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고.

 

[하지만 참으려고 해도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오는 걸.]

 

민감하다니까, 하고 정차미는 중얼거렸다. 언제나처럼 표정은 바뀌지 않았지만, 어딘가 뾰로통해 보였다.

 

[말을 말아야지, 내가.]

 

나는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손가락에 연고를 바르고 새하얀 목을 따라 골고루 문질문질. 그때마다 정차미가 움찔거린다. 민망해서 연고를 바르던 것을 대충 마치고는 반창고를 하나 뜯어 정차미의 목의 상처가 있었던 곳에 착 붙였다. 이걸로 끝.

 

[아흣…….]
[그니까 반창고 붙이느라 살짝 건드린 거 가지고 일일이 그런 소리 좀 내지 말라고!]

 

사람 민망하게!
나까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버릴 지경이다. 게다가 주변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말만 하지 않을 뿐이지, 속으로는 온갖 흉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녀석이 상처가 났는데도 어떤 처치도 취하려 하지 않은 걸 억지로 내가 약을 발라주겠다고 한 게 애초에 잘못이었을지도.

 

[미리 말해두겠는데, 난 널 아직 완전히 믿은 게 아니야.]

 

나는 오해가 없도록 확실하게 선언했다. 물론 조금은 의심이 풀리긴 했지만, 사람은 감정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이성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섣불리 방심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는 건 이제는 사양하고 싶으니까. 결정적으로 그녀는 아직 나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알고 있어.]

 

하지만 내 차가운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지만, 나는 너에게 상처를 입힐 만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그것만큼은 알아 줬으면 해.]

 

전혀 흔들림 없이, 정차미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고마워. 약 발라준 거.]

 

그리고는 내게 고개만 살짝 숙이면서 감사인사를 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기보다, 앞으로는 내가 그렇게 반창고 붙여줄 일을 벌이지 마.]
[응.]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반창고는 상처가 나은 후에도 소중히 보관할게.]

 

그녀는 자기 목에 붙어있는 반창고를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대대로 가보로 물려줘야지.]
[농담 작작해라.]

 

반창고를 가보로 물려받을 자손의 입장도 생각해.
조상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다.

 

[그런데, 류서영 너는 이런 소독약이나 밴드같은 걸 상비하고 다녀?]
[나야 다칠 일 거의 없지만, 툭하면 여기저기 찢어지고 베이고 하는 녀석이 있어서 가지고 다니는 것 뿐이야. 오늘도 가지고 온 건 운이 좋았던 거겠지만.]

 

나는 혀를 차며 툴툴거리다, 헛기침을 한번 하고 정차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설명 좀 해 주지 그래?]
[뭐가 듣고 싶은데?]
[일단, 네가 의식불명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 장소에 있었던 이유부터.]
[정보 수집.]

 

정차미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무슨 정보수집?]
[나도 너처럼 그 사건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으니까, 그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 사건 현장을 돌아다닌 것뿐이야.]

 

나름 그럴 듯한 말이다. 나는 지금껏 그녀를 의심해왔기에 당연히 범인일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녀를 완전히 신임한다고 전제한다면 못 믿을 만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잠깐. 그런데 네가 의식불명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사건 현장에 나타난 건 어떻게 된 거야?]

 

사건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정상적으로 생각한다면 역시 그녀가 범인이라고밖에…….

 

[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나는 이 사건의 발생을 예측할 수 있어.]
[뭐?]
[상식적으로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야.]

 

정차미는 마치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차근차근 말했다.

 

[류서영, 너는 '행운'의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정보가 네 가지가 있어. 보통 알고 있는 이 단서들 중 몇 가지를 서로 연결시켜가면서 나머지 자료들을 추론하지.]

 

그녀가 말한 정보는 네 가지.
범인, 목적, 수단, 결과.

 

[여기서 네가 알고 있는 건, 결과뿐. 이래서야 아무것도 추론할 수 없어.]
[그건 그렇지.]

 

결과라고 한다면, 광명 지역의 청소년들이 차례차례 의식불명에 빠진다는 것.
하지만 수단, 목적, 범인은 알 수 없다. 애초에 범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수단과 목적은 존재할 수 없으니 사건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추론을 하려고 하더라도 단서가 적어도 너무 적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수단이나 목적을 알아낼 수 있다면, 범인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해.]
[그런데 그걸 알아내지 못한다는 게 문제라는 거잖아.]
[말했잖아, 방금 전에.]
[그러니까 뭐?]
[이 사건은, '행운'이라는 수단을 악용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가 갑자기 판타지로 빠지는 느낌이다. 일단 고개를 갸웃하고, 정차미를 유심히 쳐다본다.

 

[너, 평소에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역시 4차원?]
[이번에는 목의 어느 부위에 칼자국을 내야 믿어줄래?]

 

다시 주섬주섬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시늉을 한다. 방금 전의 주머니칼 말고도 다른 게 더 있는 모양이다. 자기 몸을 인질로 삼다니, 무서운 녀석이다. 설마 자학을 즐기거나 하는 경향이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양손을 들고 항복의 의사를 표현했다.

 

[농담은 이쯤 해 두고. 그나저나 네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예상 밖인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왜냐면, 너만큼 '행운'이라는 존재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존재도 드물잖아.]
[…….]

 

확실히, 부정은 할 수 없다. 다만 행운이라는 건 그저 사람들 사이에서 말하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다. 그런 걸 어떻게 무언가의 수단으로써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일까.

 

[불가능한 일이지. 네 말마따나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잠깐 뜸을 들이더니,

 

[그런데 '물질적'으로 실재하니까, 가능하다는 거야.]

 

정차미는 세상에 존재하던 상식을 손바닥 뒤집듯이 간단하게 뒤엎으며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약간 다르지만 말이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식의 물질이 아니라 반-물질, 이라는 편이 어울릴지도.]

 

반(反)물질이 아니라 반(半)물질, 하고 덧붙인다.

 

[멋대로 납득하지 말고 듣는 사람이 이해하도록 말해.]
[귀찮게. 한 번에 이해하란 말이야.]
[네가 애초에 똑바로 설명을 하던가!]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냈다. 이제는 막가자는 건지.

 

[억지로 끼워 맞추듯 설명하자면, 고체와 기체정도의 차이.]
[실존하는 건 확실한데 직접적인 간섭은 할 수 없는 존재?]
[그런 셈이야. 다른 정신적, 추상적 개념들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지만.]
[뭔데?]
[계량화 가능의 여부.]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랑이나, 동경, 동정심, 질투와 같은 등의 정신적이고 추상적 개념들은 정확한 수치의 양을 표시할 수는 없어. 하지만 행운은 가능해.]

 

그녀는 내 눈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래서 행운의 수량에 따라서 직접적으로 삶의 질의 격차가 발생하기도 하는 거고.]

 

격차.
나와 안인하의 차이.
이해하기 싫어도 알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좀 더 나중에 이야기해두도록 하고. 또 뭐 궁금한 점은?]

 

갑자기 이야기를 바꾸는 데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 이상 입을 열 것 같지도 않았기에 나는 다른 내용을 묻기로 했다.

 

[일단 물어보겠는데… 대체 신상정보를 모두 삭제까지 하면서,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 대체 뭐야?]
[내 목적이 뭐냐고?]
[그래.]
[지금의 일그러짐을 원래대로 고쳐놓는 것. 그것뿐이야.]

 

대답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감출 필요도 없다는 반응.

 

[그럼 또 물어보겠는데…….]
[아.]

 

갑자기 정차미가 부자연스러운 소리를 냈다. 나는 또 뭔가 싶어서 그녀가 바라보고 있던 방향을 바라보니, 익숙한 얼굴의 인물의 모습이 보였다. 안수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시더니, 로비 의자에 앉아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성큼성큼 이쪽을 향해 걸어오셨다.

 

[서, 서영아.]
[오셨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오셨다. 내가 전화한 때는 대략 오후 네 시. 당장 수업이 껴 있으셔서 틈을 내기 어려우셨을 텐데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도착하시다니. 초인 같은 속도이다.

 

[어, 어떻게 된 일이야? 아연이가 어쨌다고?]

 

나는 우선 서아연을 발견하게 된 과정부터 시작해서 병원까지의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물론 정차미와 관련한 일은 제외하고.

 

[또 우리 학생이…….]

 

선생님의 어깨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평소의 인자한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 화를 속으로 삭이는 부분이, 어른이라는 걸 느꼈다. 틀림없이 괴로우시겠지. 무엇보다 선생님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욱.

 

[대체 누가, 어떤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속으로 억누르고 있던 목소리가 무거운 울분을 담긴 채로 밖으로 표출되었다. 조용히 나타나는 그 감정은 마치 조용히 타오르는 푸른 불꽃같았다.

 

[죄송합니다.]
[서영이 네가 왜 사과해?]
[아니, 그게…….]

 

말문이 막혔다. 어쩐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멋대로 사과해버렸다. 아니, 멋대로가 아니다.

 

[서영아, 내가 전에 말했지. 굳이 쓸데없는 생각 안 해도 된다고.]
[죄송해요. 하지만 저는…….]

 

더 이상 두고볼 수만은 없다. 그렇기에 나는 선생님께 재차 사과드렸다.

 

[이 멍청한 놈아!]

 

따악. 말이 끝나기도 채 전에 머리에 호된 타격! 손목의 스냅을 효율적으로 이용한 훌륭한 공격이다. 머리가 띵해진다.

 

[말 했잖아, 내가. 그런데 오늘만 해도 아무 말도 없이 혼자서 멋대로 행동하고!]
[죄송합니다.]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반성한다. 잘못한 건 확실하니 대꾸 한 마디 할 처지도 못된다.

 

[내가 그렇게 쓸데없이 멋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니? 정말 얘는 멀쩡하게 생겨가지고는 정말 왜 이렇게 대책이 없어!]

 

온몸 구석구석을 꿰뚫는 것 같은 시선이 나를 향한다.

 

[왜 이런 식으로, 끼어들지 않아도 될 일에 계속 뛰어드는 거니? 정말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무단 조퇴나 하고! 반 애들한테 물어봐도 다들 모른다고 하고, 되는대로 찾아봐도 안 보이고. 또 우리 학생중 누가 없어지거나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알아?]

 

점점 소리를 높여가시던 도중,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인 것이 느껴졌다. 가슴팍 어딘가를 가시로 쿡 찌르는 것 같다.

 

[서영이 너는 왜 옛날부터 항상ㅡ]

 

갑자기 말씀이 뚝 끊겼다. 억지로 자른 것 같기도 했다. 제자의 철없는 행동에 목이 멘 걸까. 죄송함에 나는 고개를 차마 들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각오가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던 말로 대꾸했다.

 

[모른 척 할 수가 없었어요.]

 

굳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을 테지만, 내가 그러고 싶어서 한 일이니까 상관없다. 혼나더라도, 욕을 먹더라도 이 마음만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잠자코 있을 수가 없다.

 

[서영아, 정신 차려. 이 일은 네가 멋대로 끼어들 일이 아니야.]
[알아요, 하지만…….]

 

뭔가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이, 계속 망설임을 남기고 끝까지 매달리게 만든다. 내가 끼어들어도 된다는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조차. 선생님은 도끼눈을 풀고는,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네가, 무슨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필사적인지 나는 잘 몰라. 그 이유가 얼마나 심각한 건지, 절실한 건지도. 하지만 네가 무슨 이유를 지니고 있건 간에, 나는 네가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어.]

 

선생님은 담담하지만, 따스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으셨다.

 

[나는 너의 선생님이고, 너는 나의 학생이니까.]

 

거짓말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말이라고 어째선지 확신할 수 있었다.

 

[네가 누군가 때문에 마음 아파하듯, 너 때문에 누군가 슬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마.]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지를 고민하면서.

 

[괜찮으니까,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 아연이 일도 네가 마음 쓸 것 없어.]

 

선생님은 내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이젠 선생님이 어떻게든 해 볼게.]

 

순간 머릿속이 띵해지면서 현기증이 났다. 뭔가 익숙한 감각이다. 어디선가 겪었던 상황같다.

 

[약속할 테니까,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차미가 어느새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건 몇 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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