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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인플루엔자(완) by 이원랑

갑자기 사람들이 내가 혐오하던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혐오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나를 지탱하던 혐오가 하나둘씩 사라져간다. 혐오를 주제로 묶인 세 단편 연작, 혐오인플루엔자! 많이 사랑해주세요! *본 글은 노블엔진 투고예정작입니다.

[공포]
총 편수 23 / 총 관심작 수 7 / 총 추천수 30 / 총 용량 339.982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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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고백 04 "인간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혐오라는 감정이 도리어 인간을 죽인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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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이원랑[xkqmfltm]
조회 1531    추천 2   덧글 6    / 2012.06.07 18:38:35

 

 아, 정말로 운이 좋아!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전부 자율이 되니까 4시 쯤 되면 집에 간다. 최고야, 최고! 강제로 해야만 했던 놈들이 어찌나 불쌍한지! 그런데도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하는 애들이 있다. , 물론 해도 좋아!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영어랑 수학을 나보다 못하는 애들은 뭔데? ? 야자라던가를 하면 최소 85점대는 되는 나를 뛰어넘어 90점 이상은 되야하지 않겠니? 그럴거면 차라리 놀기를 하던가!

 “연아아? 너 또 이상한 망상하고 있지?”

 어? 뭐야! 갑자기. 그래. 현실을 직시하자. 지금 나는 나무들 아래를 걷고 있어.

 “! 저거 봐봐!”

 나는 나무 밑에 실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송충이를 보며 외쳤다. , 정말 싫어! 어찌 저런 흉측한 게 다 있담.

 “뭐야? 고작 벌레가지고 뭔 난리야? 그냥 지나치면 돼지.”

 “, 으으. 그래도. 다른 길로 가자.”

 소명은 한숨을 쉬며 내 요청을 들어주었다.

 나무가 없는 탁 트인 곳에 도착하자 소명이 입을 열었다.

 “그래, 벌레하니까 그게 생각난다.”

 “뭐가?”

 “있잖아? 이 학교의 전설적인 사건. 바로 제작년도 겨울에 있어났잖아. 생각해보니 그 일로부터 반년 지났나?”

 아, 당연히 알고 있다. 전설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사건. 주인공은 바로 이진앙. 아버지가 메르세데스 벤츠 S600을 타고 다니는 잘 사는 집안 아들. 하지만 시골을 다녀온 직후 갑자기 이상증세를 보이더니 여자친구를 거의 죽일 뻔했고 심지어 여자친구의 오빠를 죽였다. 더 놀라운 건 어째서인지 이명고 근처의 사창가에서 한 매춘부를 죽일 기세로 팼다고 한다. 이건 바로 이상증세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이상증세는 사람들이 벌레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이 모든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쉽게 말해 정신병에 걸렸다는 소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 믿기지 않는 사건이야. 사람들이 갑자기 벌레로 변한다니. 그런데 그 후에 어떻게 됬다더라?”

 “어떻게 되기는. 그 여자친구라는 사람은 원래대로 되돌아왔지만 오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떠나버렸어. 하긴, 그게 현명한 길이지. 아니었으면 지금쯤 이 학교의 2학년 교실에 앉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을 테니까.”

 “아니. 그 사람 말고. 진앙이라는 사람 말이야. 까먹어버렸어.”

 “, . 그 사람은 지금 정신병원에 있지. 정신병원에서도 아주 심한 사람들만 모이는 병동에 들어갔다고 하더라고. 거기서 허구헌날 벌레 때문에 겁에 떤대. 게다가 거울을 보면 자기마저 벌레로 보이는 바람에 정신병원의 모든 거울을 깨부수는 소란까지 일으켰고.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하지.”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걔네 부모님은?”

 “지금 모든 일을 때려치우고 정신과 분야의 공부를 하고있대. 아무래도 일단 정신병원에 보내기는 했지만, 믿음이 안 가니까 자기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돼서 직접 돌보겠다고 하더라고. 모아둔 돈이야 워낙 많아 사는 데는 지장없겠지. 소문으로는 어딘가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돌볼 거라고 하더라고.”

 “부모만큼은 참 부럽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헌신적인 부모는 쉽게 볼 수 없잖아?”

 “하아. 그 부모들도 참 불쌍하지. 갑자기 그렇게 되어버렸으니까. 심지어 최근에는 진앙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말도 있으니까.”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입술을 내뺐다.

 “그게 우리 학교 학생이었다니. 세상 참 무섭다. 그렇다면 방연도 꽤 위험한 거 아니야?”

 “방연은 다가가지만 않으면 괜찮잖아? 하지만 진앙은 다가가든 안 다가가든 벌레로 변한 건 모두 죽이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 그 진앙이라는 사람도 참 바보같아. 그렇게까지 벌레를 혐오할 필요가 있었을까. 결국 벌레들도 이 생태계에 도움이 되잖아? 그런 걸 생각했다면 사람들이 벌레로 변할 정도로 혐오하지는 않았을 텐데.”

 왠지 소명의 말이 틀린 기분이 든다.

 “그렇지는 않을걸. 혐오는 그 대상의 모든 것을 박탈해가니까.”

 “? 무슨 소리야?”

 “알기 쉽게 예를 든다면 오타쿠가 있잖아? 애니메이션 오타쿠. 안경 쓰고 돼지인데다가 여드름이 빡빡한 전형적인 오타쿠를 많은 사람들이 혐오하잖아? 나도 그렇고. 그러면 그 오타쿠가 가진 모든 인간성이 박탈당하는 거야. 그 오타쿠가 가지고 있는 도덕심이라든가, 그런 선한 내면이 있어도 혐오의 대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 무시당하는 거지. . 혐오는 그 대상을 혐오 자체로 만들어. 이를테면 혐오는 마법같은 거지. 다른 비유를 들어볼게. 나치 독일과의 싸움에 참전한 미군 병사가 있어. 그 미군 병사는 혐오스러운 나치를 무너뜨리려고 하지. 그러다가 SS친위대와 조우하고 격렬하게 싸우지. 그러다가 우연히 그 SS친위대가 늙은 어머니를 정성스럽게 봉양하는 효자이면서 아주 착한 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SS친위대에 들어온 건 단지 나치 정부가 자신의 어머니를 인질로 협박했기 때문이야. 이걸 전부 알게 된 미군 병사는 SS친위대를 죽이고 싶어할까? 정녕 죽인다 한들 그 모든 걸 알기 전과는 분명히 다른 감정이 들 거야. 그렇지 않아? 혐오는 마법이야.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는 마법. 진앙은 그 마법에 사로잡혀 제정신을 잃은 거지.”

 말을 마치고나니 오랜만에, 아니 이렇게 많이 말을 한 건 처음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놀라서 내 입을 가리고 소명을 보았다. 소명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우와, 연아아. 정말 다시 봤어.”

 “? , 으응. 그래? 아하하.”

 머쓱해져서 뒷머리를 긁었다.

 “, 하지만. 말은 이렇게 했어도 일단 혐오는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잖아? 바퀴벌레나 토사물, 오염물질, 더럽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건 위험하고 불결한 거니까 혐오하는 거잖아? 그런데 거기에 너무 집착하면 자신을 부수고 마는거지.”

 “인간을 지키기위해 태어난 혐오라는 감정이 도리어 인간을 죽인다는 건가?”

 “. 바로 그거야.”

 역시, 소명이다. 내가 장황하게 주절거린 말들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해버렸다. 오히려 내 번잡한 설명보다 간결하고 효과적이다.

 “, 벌써 집이네. 그럼 이제 바이바이할까?”

 소명이 제안하자 난 씩 웃으며 바이바이할 준비를 했다. 갑자기 소명의 턱 아래쪽이 움찔했다. 불길한 징조다. 소명이 또 뭔가 할 조짐이다.

 “아직도 그를 포기 못 했어?”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소명은 또 언제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말하자면, 나도 너와 같은 때가 있었어.”

 조금 놀라 올려다 본 소명은 일심동체하여 한 쪽으로 쏠리는 나뭇잎들을 보고 있었다.

 “나도 예전에는 방연에게 호감이 있었어. 그도 그럴것이, 이 이상한 정신질환만 빼면 완전히 최고의 미남이잖아? 안 그래?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지. 또 그 때는 나도 꽤나 어려가지고, 내가 얼렬히 사랑하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

 소명은 어이없다는 듯 쿡쿡 웃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다가갔어.”

 소명은 몸을 돌려 자신의 옷을 확 들어올렸다.

 “그 결과가 이거야.”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나도 모르게 소명의 배에 손을 갖다댔다. 그 매끈한 몸매에 반역자가 있었다.

 “칼에 베인거야?”

 “그냥 베인 정도가 아니야. 아예 푹 찔러넣어서 도려냈지. 그건 그냥 위협이 아니라 정말로 날 죽이려는 거였어.”

 그랬구나. 소명은 항상 수영장에서 전신수영복만 고집했지. 이제 알겠어. 게다가 학교 점심시간에서 소명이 내가 그에게 다가가면 생길 수많은 참사에 대해 나열했었지. 그 때 맨 처음 나온 게 칼에 배가 째이는 거였어. 그렇구나. 자기가 그런 걸 당했으니 먼저 나왔던 거로구나.

 “하지만 감사하는 것도 있어.”

 소명은 옷을 내리며 새침스럽게 눈을 깜빡였다.

 “내 아이스러움을 완전히 날려버려줬으니까.”

 항상 소명의 어른스러움을 부러워 했는데, 그것이 방연 때문이었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주먹이 저절로 꼭 쥐어지며 어깨가 밑으로 내려간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여자를 인식 못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여자를 죽이려고 하는 걸까?”

 “글세. 네가 말한 것 때문이 아닐까? 혐오말이야. 혐오라는 마법. 방연은 여자만 보면 그 마법에 걸려 여자를 죽이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지. 혐오스러운 집의 벌레들을 모조리 박멸하는 것처럼. , 그런 위험한 놈이랑 같은 학교인 것도 모잘라 같은 반이라니. 짜증나.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기 위해 억지로 학교에 다니게 하고 말이야. ,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괜찮지만.”

 소명은 자기 아파트를 향해 걷다가, 마지막 문장을 말할 때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분명 나를 두고 한 말이다.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면 피 본다, 그런 뜻이겠지.

 소명이 눈 앞에서 사라진 순간에도 그 끔찍한, 복부의 삼분의 일을 차지한 흉터때문에 전부 다 틀린 시험지를 내 눈 앞에서 흔드는 것처럼 불쾌감이 든다. 하지만 소명만 할까? 아마 고백을 했겠지? 그래서 방연은 여자를 죽일 때를 대비해 칼을 숨겨두든, 아니면 호신용으로 칼을 숨겨두든 칼이 있었을 것이다. 그걸로 소명의 배를 푹 찔러 찌지지직하며 지퍼 열 듯이 갈랐겠지. 아마 피라고는 코피를 본 게 전부였을 예전의 소명은 바닥으로 콸콸 흘러나오는 피를 보고, 돼지 곱창요리로는 익숙한 창자가 쏟아지는 걸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비명을 저질렀을까? 도망쳤을까? 뱃 속 안에 창자를 밀어넣으며? 아마 그게 확률이 높겠지. 그렇지 않으면 살아날 수도 없었을 테니까.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방연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왜 학교에 다니게 하는 걸까?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무사하다는 건 그렇다 쳐도.

 소명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이미 한 번 진앙이라는 괴물을 배출했기 때문에 교장은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거야. 퇴학시켜버리거나 자퇴시키면 분명히 문제가 되겠지. 그래서 일단 남겨두는거야. 아무도 그를 못 건드리도록 엄포를 두고. 그러면서 윗사람들 주머니에다가 돈 좀 두둑이 넣어두겠지. 학생의 안전이 무슨 상관이겠어? 자기들 잇속이나 챙기는 작자들인데.’

 매미라도 뜨거워서 나무에서 떨어질 지경의 더위 속에서, 드라이아이스같은 오한이 심장에서부터 밀려나와 온 몸이 모기물린 듯이 따갑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오늘도 길어서 좋아요, 음음.

오늘은 진앙의 뒷이야기와 함께 소명의 과거네요.

진앙이나 소명이나 가여운 애들이에요. 쓰담, 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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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인플루엔자(완)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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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리엔 06/07/06:48
칼빵에 이어 배를 짼다라...
뭔가 상상이 가서 무섭다 ㅠ
18 이원랑 06/08/09:21
우앗... 카루님. 늦게 답글을 달지만, 모바일도 봣는데 댓글을 참 빨리 다시더라구요...!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루님 때문에라도 하루하루 연재해야 할 기분이예요.
0 06/08/08:07
ㄷㄷㄷㄷ;; 자, 잘보고가요.
18 이원랑 06/08/09:21
이정도로 무서워하시는건 아직 이릅니다!
1 애니메이트 06/08/10:00
으어으어..... 엄청나네요....
18 이원랑 06/09/11:09
엄청나다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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