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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해...

[SF액션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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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27    추천 2   덧글 4    / 2013.04.06 15:58:41

 

 

 

 

 

 


 "└┴┼┬┤!!"


 입 밖으로 튀어 나와 있던 사람 다리를 내뱉은 델리스의 첫 마디는 고장 난 전파장비의 노이즈 같은 소음이었다. 그 소음과 함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델리스가 어째서……."


 바닥에 엎드려 있던 은하는 델리스를 노려보았다. 지금은 확실하게 상대의 존재가 인지하고 있었지만, 방금 전까지 아무런 공습경보도, 플라네타리안의 예보도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은하, 저건……!"


 혜성은 눈에 띄게 겁에 질려 있었다. 아무리 델리스가 흔하게 나타나는 일이라고 해도, 재앙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떨고 있는 혜성의 손을 붙잡았다. 은하 역시 떨리긴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다른 델리스에 비해 유달리 붉은 몸을 가지고 있는 델리스는 그르릉 거릴 뿐 도망가는 사냥감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붉게 충혈된 눈을 뱅글뱅글 돌리며 무언가 찾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착신음과 함께 은하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그 때문에 붉은 델리스는 은하와 혜성을 발견했다. 정신없이 움직이던 눈알이 그들을 보는 순간 고정되었다.


 '하필, 왜 이럴 때에!'


 은하가 혜성의 손을 붙잡고 거리로 뛰쳐나간 것과 붉은 델리스가 그들이 있었던 자리로 뛰어든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의 구르다시피 뛰쳐나간 은하는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핸드폰을 받았다.


 [아아, 잘 들리나?]

 "사이러스 아저씨?!"

 [그놈의 아저씨란 말은 빼라니까. 쯧.]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급박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느긋한 목소리였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해요!? 갑자기 저 델리스는 어디서 나타난 거죠? 공습경보가 울리지도 않았는데! 아니, 플라네타리안의 예보조차 없었다구요!"


 물론 지금은 공습경보가 시끄럽게 거리를 매우고 있었지만, 이미 일은 일어난 뒤였다.


 [아무래도 위상 도약을 통해 나타난 녀석은 아닌 것 같은데……. 젠장할! 이게 다 빌어먹을 블러드써스터 때문이라고! 그놈이 여기저기에 씨를 뿌려두니까 이런 사단이 일어나지. 아무튼, 일단 거기서 도망칠 수 있겠어?]

 "이미 그러고 있어요!"


 아티팩트라도 있었더라면 바로 어떻게 해보았을 텐데 그들은 비무장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도망치고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가까운 방공호를 향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로 우주 녀석이 가고 있으니까, 곧 도착할 거야.]


 쳅터에서 가장 강한 레이스 가드인 우주가 오고 있다는 소식은 무엇보다 든든했지만, 곧 이라는 말이 걸렸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은하와 혜성만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달려오는 붉은 델리스에게서 얼마나 도망칠 수 있을까. 그들이 감염자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미 먹혀버렸을 일이었다. 은하는 혜성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뛰고 구르며 도망치고는 있었지만, 그들과 붉은 델리스의 간격은 점점 좁혀졌다.


 "오빠는 언제쯤 오는 건데요!"

 [한 10분 정도 걸릴 거야.]


 은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끼처럼 생긴 팔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붉은 델리스에게서 10분이나 도망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은하 혼자였다면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녀의 손을 통해서 전해오는 떨림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까지 버티면 되는 건가요……?"

 [어이,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도주하는데 집중해.. 아티팩트 없이는 감염자라고 해도 델리스를 상대하는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정도는 알텐데? 게다가 상대는 2티어로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도 예측하지 못한 녀석이다. 일단 태양이 버티는 동안 다른 생각 말고 그 자리에서 최대한 벗어나는 것만 생각해. 네가 프로젝트에서 어떤 존재인지 자각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을 생각만 해. 알아들었어?]


 정신없이 휘두르는 붉은 델리스의 도끼질에 그들이 넘어선 가드레일이 잘리고, 그들이 지나갔던 바닥이 갈라졌다. 그 중 몇 번은 정말로 위험했었다. 몇 초 차이로 간신히 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도주한다고 해도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붉은 델리스는 확실히 그들만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은하는 대답대신 핸드폰을 꺼버렸다.


 "혜성아 도망칠 수 있겠어?"

 "……."


 도망치는 와중이었지만, 겁에 질린 혜성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은하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불안한 눈빛에 은하는 결심이 선 듯 근처에 있는 오토바이를 주워들었다.


 "시간 벌기라면……!"


 소녀가 들어올릴 수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닌 오토바이는 은하의 손에서 벗어나 붉은 델리스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은하의 몸보다 더 큰 철 덩어리는 어느새 오토바이가 아닌 투박하지만 꿰뚫는다라는 단순한 기능을 극대화 시킨 거대한 창으로 바뀌어 있었다. 투창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속도였지만, 붉은 델리스의 몸을 맞추었을 뿐 별다른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역시 직접 타격을 주지 않는 이상 안 되는 건가.'


 잠깐의 시간동안 은하는 생각을 마치고 싸울 준비를 맞췄다.


 "혜성아, 걱정마."

 "은하……."


 10분. 10분이면 그녀의 오빠가 구해주러 나타나 것이다. 은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소년을 지키기 위해 숨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손에 쥐고 있는 황동 가로등을 고쳐 잡았다. 아니, 황동 가로등이었던 그것은 은은한 은색을 띄는 창의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비록 그녀의 아티팩트인 파워 스피어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쥐고 휘두를 수 있는 금속이라면 분명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혜성이는 내가 지킬꺼니까……!"


 은하의 손은 분명히 떨리고 있었지만, 그 눈만큼은 붉은 델리스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붉은 델리스 역시 은하의 적의를 읽었는지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뭐해 은하 누나! 피해!"


 쇠붙이와 쇠붙이가 부딪치기 전, 허공에서부터 검은 갑옷을 입은 태양의 검이 붉은 델리스의 어깨를 힘껏 내리 찍었다. 그리고 그 검에 달려있는 톱날이 수만 번 회전하며 붉은 델리스의 어깨를 찢어내려 하고 있었다.


 "사이러스 아저씨가 우주 형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했으니까. 그니까 도망가!"


 톱날이 만들어내는 불꽃이 조금만 더 베어내면 외피를 잘라낼 수 있을 것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붉은 델리스 역시 그것을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자신의 등 뒤에 달라붙어 있는 무언가를 떼어내기 위해 붉은 델리스는 도끼팔을 마구 휘둘렀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태양은 몇 바퀴 굴러 나가 떨어졌다.


 "태양아!"

 "난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도망가라니까!"


 건물 잔해를 밀어내고 일어난 태양은 곧바로 다시 붉은 델리스에게 달려들었다. 붉은 델리스는 도끼처럼 생긴 팔을 휘둘렀으나 태양은 잽싸게 피했다. 최대한 근접한 태양은 검을 있는 힘껏 복부를 향해 찔러 넣었다. 분명 유효한 타격이었으나 붉은 델리스는 복부가 찢어지는 것을 무시하고 태양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크읏-!"


 태양은 급하게 중화기인 볼터를 강화시켜 막아내었다. 강철의 능력으로 강화시켰다고는 하나, 디티스 합금이 아닌 이상 델리스 앞에서는 한 번 밖에 통하지 않는 요행이었다. 태양은 일단 물러서며 볼터를 내려다보았다. V자로 꺾여버린 볼터는 더 이상 총기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보였다.


 "너 혼자서는 무리야 태양아!" "괜찮아 은하 누나!"


 태양은 원래의 모양을 알 수 없을 만큼 휘어버린 볼터를 버리고 검을 고쳐 잡았다. 그것은 실전에 투입 된지 세 달도 안 된, 아직 10살 밖에 안 되는 태양의 허세나 다름없었다. 솔직히 태양은 저 델리스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태양마저 도망치면 모두가 다친다는 생각에 태양은 한걸음 더 내딛었다.


 "이래보여도 무능력한 어른들보다는 쌔니까!"

 "┌──┬┘!!"


 태양이 달려들자 붉은 델리스 역시 포효성과 함께 도끼를 내질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둘은 일제히 서로의 무기를 휘둘렀다. 검과 도끼가 부딪치며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앙-!
그것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붉은 델리스는 거대한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도끼를 휘둘렀다. 태양 또한 그것들을 막아내며 집요하게 어깨를 노렸다. 태양에게 있어 어디까지나 시간끌기가 목적이었지만, 한 팔이라도 잘라낸다면 이후의 상황은 유리해질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붉은 델리스는 더 시간을 끌 생각이 없어보였다.


 "┼┴┴───!!"


 기분 나쁜 노이즈와 함께 붉은 델리스가 더욱 공격적으로 달려들었다. 델리스와 싸운지 몇 분이나 흘렀을까, 아니 몇 십 초 밖에 흐르지 않았을까. 태양은 근본적으로 밀리는 힘의 차이 때문에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태양아 숙여!"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은빛 창이 붉은 델리스의 복부에 날아와 꽂혔다. 태양이 갈라놓은 상처를 비집고 들어간 창은 보기 좋게 꽂혔지만 관통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방금 전에는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했던 창이 이번에는 제대로 피해를 입혔다.


 은하는 거대한 은색 창들을 쌓아놓고 붉은 델리스를 노려보았다. 분명히 위기 상황이었지만, 혜성과의 꿈만 같은 시간을 방해한 것만으로도 은하가 분노하기는 충분했다. 그녀는 붉은 델리스가 다른 행동을 할 틈을 주지 않고 연속해서 은색 창을 던졌다. 은빛 궤적은 집요하게 갈라진 외피를 향해 뻗어나갔다.


 "│└─┴─┘!!"


 붉은 델리스는 혼탁한 눈알을 까뒤집으며 괴성을 질렀다. 몇 개의 창이 박힌 몸에는 붉은 액체와 물컹한 유기물들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좋아! 이제 내가 처리할게 은하 누나!"


 버티기가 아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태양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붉은 델리스에게 달려들었다. 델리스의 몸뚱아리를 두 동강 내기위해 태양은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톱날이 회전하면서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델리스의 외피도 찢어버릴 것이라.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크앗-!!"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태양의 검이 붉은 델리스에게 닿기 전, 붉은 델리스는 역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붉은 델리스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태양은 부딪쳐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붉은 델리스가 노린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사정없이 찌른 은하를 노리고 있었다.


 "혜성아 피-"


 은하는 던지려고 쥐고 있던 창으로 급하게 막아내었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형태만 변형시킨 창은 철사처럼 휘어져 버렸고, 그에 따라 은하가 그대로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 물건처럼 내던져진 은하는 몇 번이나 광장 바닥을 구르며 쓰러졌다. 아무리 일반 사람들보다는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어찌됐든 은하 역시 사람의 범주안에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녀의 왼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지며 부러지자 하얀 뼈가 살짝 드러났다. 은하는 피와 눈물을 동시에 왈칵 쏟아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소녀는 울부짖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왼팔에서 전해오는 격통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에 코른 버서커는 기뻐하듯 두 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사냥한 먹잇감을 자랑하듯 포효했다.


 "│┼┴─└┐!!"


 혜성은 그 모습을 보며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들거리는 다리는 생각과는 달리 계속 뒷걸음질만 치고 있었다. 반대로 붉은 델리스는 쓰러진 소녀를 탐스럽게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살아야 해.'


 가슴이, 속삭였다. 아무런 힘이 없는 그는 가봤자 개죽음만 당할 것이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죽지 않으려면, 살고 싶으면 은하로부터 멀어져야 한다고. 그러는 사이에 멀어져만 가는 붉은 델리스를 보며 혜성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으아, 아악, 아아아아아-!!"


 하지만, 은하는 일어섰다.


 구부러진 창을 다시 펴서, 그것을 지지대 삼아 은하는 일어났다.


 "─┴─┴┼."


 그런 소녀를 탐스럽게 바라보던 붉은 델리스는 알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마 식사 전 기도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붉은 델리스는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자신의 도끼를 머리위에서 교차했다. 피할 틈은 없었다. 막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단숨에 은하를 향해 내리찍었다.


 그러나 붉은 델리스의 도끼는 목표물을 베어내지 못했다.


 "은하…… 누나, 괜찮아……?"


 은하의 앞에는 작지만, 너무나도 커 보이는 등이 보였다.


 "은, 하…… 누나, 는…… 우리의…… 희, 망…… 이니까……."


 태양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왼쪽 어깨에서 사선으로 파고드는 도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붉은 델리스가 은하를 노릴 수 없도록 막는 것에만 집중했다. 붉은 델리스의 발목을 잡기 위해 검으로 다리를 공격하고, 은하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


 "아, 안 돼……. 태양아……. 안 돼……."


 태양은 쓰러지기 전 은하를 보았다. 울고 있는 소녀를 보며 태양은 환하게 웃어보였다.


 "다행, 이…… 다……."


 그 말을 끝으로 태양의 몸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붉은 델리스의 도끼가 태양의 몸을 가르자 참혹하게 두 동강이 난 몸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 돼에에에-!!!!!"


 붉은 델리스는 소녀의 절규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태양의 몸을 들어올렸다. 분리되어 버린 몸이라 절반 밖에 안 되었지만, 지금 붉은 델리스에게는 유용한 영양분이 될 터였다. 기분 나쁜 끈적거리는 소음과 함께 붉은 델리스의 아가리가 쫙 벌어졌다. 빛을 잃은 태양의 머리가 타액과 붉은 액채로 번들거리는 입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태양의 머리를 삼켜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생살이 으깨지는 소리, 뼈가 부서지는 소리,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뒤섞이는 소리, 그리고 소년의 소리 없는 비명소리.


 그 모든 것이 은하와 혜성에게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혜성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전에도 본 그 끔찍한 장면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델리스에 의해 가장 소중한 사람이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가슴은 계속 속삭였다.


 '살아야 해, 살아야 해…….'


 하지만,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픔과 고통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은하는 창을 들어올렸다. 태양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는 붉은 델리스를 향해 은빛 창을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은하는 꽂아 넣은 창을 돌리며 상처를 넓혀 빼내었다. 그리고 다시 꽂아 넣었을 때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자리를 찔러 넣었다. 은빛 창을 뽑아내고 다시 찌르고를 계속 반복했다. 붉은 델리스의 입에서 붉은 액체가 마구 튀었지만 은하는 개의치 않았다.


 소녀의 눈에서는 하얀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흑……, 태, 읏 태양, 이를 돌려줘……!"


 그러던 중, 은빛 창이 박혀 있는 붉은 델리스의 입이 찢어졌다. 그로테스크한 소리와 함께 어쩐지 웃고 있다는 기분을 주었다. 그 모습에 흠칫한 은하가 창을 빼내려고 했지만, 붉은 델리스의 입을 다물고 그것을 저지했다. 그리고 태양을 통해 재생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다… 른…… 형, 제……. 죽, 인다……."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언어였다. 붉은 델리스는 입을 달싹 거리다가 은하를 창 째로 들어올렸다. 은하가 미쳐 창을 놓을 틈도 없이 붉은 델리스의 팔이 은하를 후려쳤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은하는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크학-!!"


 델리스는 입에 꽂혀 있는 이물질을 뱉어내며 마지막 유언을 묻는 듯 붉은 델리스는 은하에게 기계음 같은 소리를 흘렸다.


 "다, 른…… 형, 제…. 죽인다……."


 붉은 델리스의 팔이 은하를 가리켰다. 명백하게 자신의 목적을 밝힌 붉은 델리스는 더 이상 지체할 것도 없다는 듯이 두 팔을 들어올렸다. 이번에야 말로 끝이다. 은하 또한 태양처럼 잘리고, 먹히고, 죽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혜성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 붉은 도끼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그리고 참수형을 집행하는 간수처럼 붉은 델리스는 은하를 향해 도끼를 내려찍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은하는 그대로 두 동강이 났어야 했지만, 두 동강이 나버린 것은 붉은 델리스의 커다란 팔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문도 모르는 사이에 붉은 델리스의 다른 한쪽 팔도 잘려나갔다.


 '살아야 해…….'


 회전하는 톱날이 굉음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붉은 델리스의 두 다리가 잘려 나갔다. 사지가 다 잘려버린 붉은 델리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괴성만 지를 뿐이었다.


 "살아야 해……."


 태양의 검을 들고 있는 혜성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는 붉은 델리스의 입 사이로 태양의 검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태양의 검이 톱날을 회전시키며 붉은 델리스의 입을 갈아내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붉은 델리스를 바라보던 혜성은 태양의 검을 천천히 아래로 그어 나갔다. 이미 죽어버려 발악조차 안하는 붉은 델리스의 몸의 중앙선을 따라 천천히, 그저 천천히 갈라냈다. 이윽고 혜성의 몸이 붉은 델리스가 뿜어낸 붉은 액체로 흠뻑 졌었을 때, 톱날의 회전이 멈추며 붉은 델리스의 몸이 반토막이 났다.


 "살아야 돼……."


 그 말을 끝으로 혜성의 몸이 고꾸라졌다.


 "혜성아……?"


 그 모습에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은하가 혜성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모르겠지만 죽은듯한 붉은 델리스 옆에 혜성이 쓰러져 내렸다. 그것만으로도 은하를 움직이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혜성아-!!"


 축 늘어진 그의 몸을 붙들자 소름끼치는 한기가 느껴졌다. 인간의 몸이 아닌 기계를 만졌을 때의 그 차가움이었다.


 "혜성아, 괜찮아!?"


 은하는 혜성에게 소리쳤지만, 그는 기절했는지 어떠한 미동조차 없었다. 은하는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혜성의 맥박을 짚어보고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맥박은 잘 느껴지지 않았고, 숨도 너무 가늘게 쉬고 있어 공황상태의 은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혜성아, 혜성아! 죽으면 안 돼! 죽으면 안 돼 혜성아! 혜성아 제발 눈 좀 떠봐! 제발 혜성아! 제발! 제발 눈 좀…… 떠봐 혜성아……. 흑, 혜성아……."


 피와 흙먼지로 엉망이 된 은하는 혜성을 붙잡고 울었다. 눈앞에서 누군가가 또 죽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은하는 필사적이었다. 그것이 혜성이라는 소년이었기에 더더욱 소녀를 필사적으로 만들었다.


 "흣, 그러니까 제발 으흑…, 누군가 흐흑……. 도, 와주세요……."

 "은하야!!"


 저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 낯익고, 따스하며, 힘이 되는 목소리를 향해 은하는 힘없이 소리쳤다.


 "오빠, 흑……. 혜, 혜성이를 흣, 제발…… 흐흑, 살려…… 줘……."


 그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여동생에게 다가갔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동생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피와 흙에 엉켜 엉망이 되어있었고, 안색은 파리하게 창백했다. 심지어 뼈가 드러날 정도로 부러진 팔로 힘겹게 소년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는 쓸쓸하게 웃으며 여동생을 안아들었다. 은하는 우주의 품에 안긴 채 부러진 팔을 늘어뜨렸다. 그녀는 자신의 안위보다 혜성을 더 걱정하며 울었다. 델리스 공습해제 알림이 방송망 타고 흘러나왔지만, 모든 것이 부서진 광장 속에서 우주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작성자에 의해 2013.06.23 02:31 에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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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슈퍼세이브 04/06/08:43
선추댓후 읽기!
0 04/06/08:49
은하 : 내게 진짜 무기가 있었다면 어땠겠어ㅠㅠ
혜성이 말고 태양이도 좀 챙겨줘....
16 에어피트 04/07/02:44
아아 그는 좋은 쇼타였습니다...
이번 화는 생존왕 혜성의 무쌍난무가 베스트..
0 하늘열번보기 04/12/08:03
애도를 표합니다.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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