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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토커와 결혼해버렸다. by 자리끼

학창시절 스토커와 같은 여자아이와 만나 어쩌다보니 연해하게 되고 결국은 결혼까지 하게 된 한 남자. 아니 이제는 가장이 된 그는 아내를 빼닮은 딸까지 낳고 3명이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자 했으나, 그 3명이서 한 지붕 아래에 사는 이상 조용할 수가 없는 매일매일, 그런 시끌벅적한 가족이야기.

[러브코미디]
총 편수 39 / 총 관심작 수 6 / 총 추천수 60 / 총 용량 735.724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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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화 힘없는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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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자리끼[qqim5965]
조회 1915    추천 0   덧글 1    / 2014.02.27 01:28:27
“이모, 여기 부추전 좀 더 주세요.”
 “너는 예전부터 전만 먹더라, 다른 안주도 많은데 말이야.”
 “형. 여기는 전이 제일 맛있어요. 다른 음식들도 맛있는데, 전은 베스트라니까요.”
 지글지글, 기름 두르는 소리. 찜통을 열자 튀어나오는 족발의 냄새. 각종 야채를 밀가루에 범벅 시켜 프라이팬에 던지는 아주머니. 자식자랑, 신세한탄, 정치, 각종 화재로 떠드는 할아버지들. 
 나는 지금 강식이와 막걸리 집에 와 있다. 
 시장통에 있기 때문에 시끄럽고 빈말로라도 깔끔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가게이지만 싸고 맛 좋기 때문에 예전부터 강식이와는 자주 왔다. 
 강식이와 내가 쓰는 말투가 달라진 것 때문에 어리둥절해 사람이 있다면 슬슬 깨어나기를 바란다.
 강식이는 강식선생, 내 동료 교사다. 하지만 학교에서나 선생이라고 부르지. 사적인 자리에서는 형, 동생으로 부르는 사이다.(내가 형이고.) 공과 사는 구분하는 거라는 거지. 부장선생님이 옆에 계신다면 선생을 붙이겠지만 지금은 우리 둘 뿐이니까.
 수업도 끝났고 내일은 토요일이라 수업도 없으니 오늘은 강식이와 간단하게 한 잔 걸치기로 했다.
 “아, 형. 안주빨 세우지 마요.”
 “네가 전만 먹어서 다른 안주가 남으니까 내가 처리하는 거 아니야.”
 처음에는 교사답게 학생들 얘기, 교사들 얘기, 그리고 현재 교육의 문제점 등. 꽤 건전한 얘기를 했지만 술이 한 잔, 두 잔 줄어들고 얘깃거리도 하나, 둘 줄어가니 강식이가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형. 저 저번에 놀랐어요.”
 “저번? 언제?”
 “그니까, 저번에 부장선생님 덕분에 형네 집에서 회식 한 번 했잖아요.”
 아, 그 때를 말하는 건가. 근데 놀랄 게 뭐 있나? 내 마누라가 요리를 겁나게 잘한다는 거?
 “집이 좋더라고요. 그런 집이라면 돈 꽤나 들텐데, 어떻게 장만하셨어요.”
 “뭐야, 우리 집 와서 놀란 게 정말 우리 집이였냐.”
 “솔직히 말해서 형이 타고 다니는 차, 너무 후지잖아요. 그래서 잘 사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집은 엄청 좋아서 놀랐어요.”
 “내 차 안 후져!”
 내 애마를 모욕하지 마! 나와 추억을 함께 한 동반자라고! 자동차는 굴러만 가면 되는 거라고!
 “뭐, 형 쪽이나 형수님 쪽 부모님이 잘 사셔요? 교사 월급만으로는 그런 집 장만하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그런 차나 타고 계시는 거 아니었어요?”
 “자꾸 내 차 비하한다?”
 나는 젓가락으로 동그랑땡을 집어 입에 쑤셔 넣고 말했다.
 “조금 창피한 소리지만 말이야.”
 조금은 취기가 돌았나? 일단 떠들어대고픈 마음이 앞선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나가서 돈 벌어오고 영은이가 내조를 하는 것 같지.”
 “같다고요? 그런 거 아니에요?”
 “미안하지만 틀렸다. 이래서 말하기 창피한 거였는데.”
 막걸리를 한 잔 들이킨다.
 “막 말하자면 나는 그냥 부인한테 빌어먹고 사는 남편인 거지.”
 “형이 빌어먹는 거라고요? 하지만 형수님은 일 안하시지 않아요?”
 “그게 맞긴 한데 말이야.”
 내 얘기가 흥미로운지, 강식이는 주문한 전이 왔어도 한 번 흘끗 보기만 할 뿐 손대지는 않는다.
 “우리 집 비싼 거 맞아.”
 하지만 전은 따뜻할 때, 먹어야지. 
 나는 전을 내 앞으로 끌어왔다.
 “근데 그 집은 영은이가 산 거야. 나는 한 푼도 못 보탰고.”
 “네? 그런 집을 형수님 혼자서요? 형수님 쪽 집안 잘 살아요?”
 영은이 부모님은 벌써 돌아가신 게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이런 걸 떠벌리고 싶지는 않으니 그 쪽 이야기는 요령껏 피하면서 이야기를 진행시키자.
 “아니, 부모님 손은 하나도 안 빌리고. 영은이, 자기가 번 돈만으로 구입한 거야.”
 “네? 어떻게요? 솔직히 지금까지 열심히 일 해 돈 벌어도 저런 집 장만하는 건 어려운데. 뭣보다 저 집에서 사신지 꽤 되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젊었을 때 저런 집을 장만할 돈이 있었다고요?”
 “그러니까 내 마누라가 대단하다는 거다.”
 간장이 떨어져서 더 달라 말할까 했지만 이미 전에 간이 배어있어서 그냥 먹기로 한다.
 “그래, 이왕 말 나온 김에 술자리 안주거리로 얘기 하나 해주마.”
 “오오! 형하고 형수님 얘기인 거죠?! 그런 거죠!”
 강식이 녀석은 기뻐하며 막걸리를 한 병 더 주문한다. 이야기보따리를 하나 풀었으니 오늘 술값은 녀석보고 내라고 해야겠다.
 “너 내가 1년 재수한 거 아냐?”
 “형 재수했어요?”
 “그래, 그래서 영은이랑 대학 입학을 같이 하게 됐지.”
 강식이는 내 얘기를 경청할 준비가 됐는지 이제는 대답도 안하고 귀만 쫑긋거리고 있다. 안주에도 손을 안 대는 거 보니 먹으면서 얘기하라 그건가?
 그러면 내 독무대다.

 “쨌든 나는 1년 재수를 하게 됐는데, 그 때 내 성적이면 다른 대학은 들어갈 수 있었거든. 근데 내가 원하는 대학에는 조금 모자랐던 거야. 나도 재수를 할까, 말까 엄청 고민했거든, 근데 솔직히 재수라는 게 쉽냐? 재수는 진짜 자체 죄인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지. 나도 힘들겠지만 뭣보다 부모님이 얼마나 힘드시겠어. 그런데도 내가 고민한 건, 점수가 너무 아까운 거야. 정말 너무할 정도로 조금 모자랐거든. 그리고 난 정말 그 대학을 가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어쩐다, 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재수를 선택했지. 그리고 뭐....... 당연한 수순이지만 부모님은 극구 반대하셨어. 뭔 재수냐고, 돈 네가 낼 거냐고, 뭐 상상할 수 있는 평범한 잔소리가 쏟아졌지. 부모님들 하는 말이야, 머리로는 다 이해했지. 하지만 머리하고 마음은 또 다르거든.”
 “아니, 내 대학 내가 떨어져서 힘든 건 나인데.”
 “그리고 재수학원만 안 가면 돈이 그렇게 깨지는 것도 아니잖아.”
 “같은 말을 하면서 부모님하고 싸웠어. 역시 어린 거지. 19, 20살이라고 해봤자, 아직 애인 거야. 그래도 싸운 덕분인지 부모님은 내 재수를 허락해주셨어.”
 “그런데!! 조건이 붙었었어. 그것도 예상치 못한 큰 조건이.”
 “재수하는 1년간 자취를 해라.”
 “깜짝 놀랐어. 갑자기 자취라니. 약 20년간 살아온 부모의 품속을 떠나라잖아. 하지만 나는 받아들였지. 싸운지 별로 지나지도 않아서 오기가 있었거든. 아무래도 부모님은 그 1년간 세상 힘들다는 걸 배우고 오라는 그런 생각을 하셨던 거 같아.”
 - 방은 구해주고 방세도 부모님이 내주신다. 공부하는 데, 필요한 돈이라면 말만 해라 바로 주마. 다만 그 외의 생활비는 정해진 액수, 그 이상은 절대 주지 않는다. 엄마가 걱정해서 그 쪽으로 찾아갈 수도 있지만 네가 먼저 집에 들어오는 것은 안 된다. 그리고 재수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게 당시 내 자취의 전제들이었어. 시작은 고등학교 졸업식 날, 졸업하고 바로 부모님들은 사람들 불러서 내 짐들을 자취방으로 옮기셨어. 너무 독하다고 생각했지. 졸업하자마자라니, 매정도 하셔 진짜, 크크큭. 막상 자취방에 딱 도착을 하니까, 불안하더라고. 공부야, 뭐 여태 하던 대로 하면 되니까 상관없지만. 앞으로 부모님 없이 지내라니, 한숨이 나왔지. 엄마가 아침밥을 해주시지도, 청소를 해주시지도 않지. 아빠가 용돈 주시는 것도 돈을 어디다 얼마만큼 써야하는지 알아서 해주시는 것도 아니지. 다 내가 해야 하는 거잖아. 괜히 무섭고 그래서 짐 정리를 시작했지. 짐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미 가구 위치부터가 다 내 선택이잖아?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 겨우 끝냈을 때는 이미 밤이었어. 오늘은 힘드니까 자고 내일부터 공부 시작하자, 라고 생각해서 이불을 깔려고 했는데.”
 - 띵동.
 “벨이 울리는 거야. 식겁했지. 밤이고 나 혼자 있고 뭣보다 아직 아무한테도 내가 자취한다고 얘기도 안했는데 누가 날 찾아오겠어. 막 머릿속에서는 묻지마 강도 같은 게 떠오르고 말이야. 그래서 문은 안 열고 목소리로만 누구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반대편에서 말하더라.”
 - 저예요, 오빠!
 “그래, 영은이였어. 벌벌 떨었던 게 바보 같다고 느낄 정도로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하는데, 힘이 쫙 빠지더라고. 안 그래도 적적하던 참에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었지. 그런데, 난 영은이가 무슨 피난 온 건 줄 알았어. 짐을 어마어마하게 가지고 온 거야.”
 - 영은아, 그 짐들은 다 뭐냐?
 - 네? 그냥 짐인데요?
 - 아니, 어따 쓰는 짐들인데?
 - 그냥 간단한 것들 몇 개인데. 옷, 수건, 도마, 칫솔, 교복, 식칼, 다리미, 이불, 프라이팬, 화장품, 팩, 교과서, 휴대폰 충전기, ㅋㄷ. 뭐 이런 것들이요.
 - 왜, 마지막 그건 자음만 써놨어.”
 - 순수함이 한 꺼풀이라도 벗겨진 사람이라면 뭔지 바로 알 걸요. 음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 ....... 그럼 그걸 왜 가져왔어.
 - 아잉, 오빠도 참. 부끄럽게 그걸 제 입으로 말해요? 오빠 언제부터 이런 플레이를 즐기셨어요.
 - 아니, 아니, 아니. 혼자서 급 전개 하지 말고. 내 말은 짐들을 왜 가지고 왔냐고.
 - 왜냐뇨? 당연히 필요하니까 가져왔죠.
 - 어디에 필요한데.
 - 사는데요,
 - 영은아. 내가 설마, 설마 하는데. 혹시 여기서?
 - 네!!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다. 나는 짐 정리할 때부터 왠지 이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더라. 아니, 평소 영은이가 하던 행동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 근데 그게 적중한 거고.
 "뭐 당연히 안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러쿵저러쿵 하다 보니 결국 동거하는 걸로 결착이 나버렸지.

 "잠깐만요, 형."
 강식이가 말을 끊는 바람에 나는 전에서 오징어만 빼먹고 있던 젓가락질을 멈췄다.
 "그러니까 갓 20살이 된 사내가 여자랑 동거를 했다고요? 어떤 이러쿵저러쿵을 거쳐야 그런 결말이 나오는 거예요? 아무리 서로 연인사이라고는 해도......."
 "아니, 아니, 아니."
 이번에는 내가 말을 끊었다. 물론 고의로! 이걸로 쌤쌤이다!
 "아직 그 때 나랑 영은이는 안 사귀었어."
 "네?!!"
 강식이가 호들갑스럽게 놀란 리액션을 취한다. 그 탓에 하마터면 막걸리를 쏟을 뻔 했다.
 "왜 이리 호들갑이야."
 "아뇨, 형! 호들갑이 아니라요!"
 강식이는 젓가락으로 나를 찌를 기세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녀석 아무래도 내가 형인 걸 잊었나 보다.
 "그러니까 지금 형 말은, 20살 남자가 고3 여자애하고 딱히 연인 사이인 것도 아니지만 한 집에서 동거를 했다고 말하고 있는 거냐고요!! 뭣보다 자취방이면 크지도 않을 거 아니예요!"
 "어?...... 어....... 단칸방이었어."
 기세에 눌려 나도 모르게 연약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맙소사!"
 강식이는 한탄을 하고는 내가 오징어를 다 빼먹은 전을 빼앗아 가 거칠게 씹으며 말했다.
 "제가 형을 잘못 봤네요. 형이 그런 호색한 이였다니, 절제없이 여자 몸을 탐하는 호색한."
 "야, 뭔 소리야. 내가 무슨 그런........"
 "그럼 아니라고요?"
 강식이는 또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이걸로 2:1이 돼버렸다.
 "겨우 20살이라해도 어엿한 사회인이라고요. 근데 그런 남정네가 가족도 애인도 아닌 고교생 여자애하고 좁디 좁은 단칸방에서 단 둘이 살았다는데, 그게 호색한이 아니고 뭐예요?"
 아니라고 반박하고는 싶었지만 이미 영은이와 나의 관계부터가 비정상이었는데, 내 입에서 정상적인 반박이 나올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 대신 내 입에서 나온 건 "별로 안 좁았어, 단칸방치고는 큰 편이었다고......." 라는 모기소리.
 "아! 이러쿵저러쿵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니까!"
 "도대체 어떤 이러쿵저러쿵 이었냐고요!!"
 "기업비밀이다, 짜샤!"
 나는 막걸리를 한 잔 들이키고 말했다.
 "그냥 얘기나 잠자코 들어, 어차피 아쉬운 건 너잖아, 임마."
 그렇게 다시 내 독무대로.
 
 "혼자라는 게 불안하기도 했고, 영은이라면 집안일을 도맡아 해줄테니까, 내 쪽에서는 거절할 이유도 없었지."
 "뭐야, 너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주제에 모든 집안일을 여자한테 맡기는 쓰레기를 쳐다보는 눈으로 날 보는 거야? 야, 난 그 때 재수생이었다니까, 공부로 엄청 바빴다고. 아, 맞다....... 영은이는 고3이었지....... 아니, 잠깐만! 하, 하지만 그건 영은이가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한 거고!!......... 아니다, 그만하자. 어째 말을 하면 할수록 나의 더러움이 부각된다. 나 쓰레기 맞는 것 같다."
 "아, 맞다. 그리고 내가 말을 빼먹었는데, 나는 무엇보다 영은이에게 손을 안 댈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동거를 한 거야, 오해 말라고."
 "쨌든 그렇게 해서 동거생활을 시작했지. 그리고 드디어 네가 궁금해하던 영은이의 재력에 관한 얘기가 이 때 여름방학에서 시작돼. 이제서야, 본론에 들어왔네."
 "여름방학이라 하더라도 고3이라서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불렀지만 영은이는 예외였어. 아무래도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은 인재인 영은이를 특별취급해준 거겠지. 그래서 당시 영은이는 농담을 조금만 보태서 24시간 내내 내 곁에 붙어있었어. 내가 공부할 때, 영은이는 뒤에서 빨래, 청소, 요리, 독서, 공부, 유혹, 뭐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애초에 단칸방이다 보니까 화장실 가는 것만 빼면 계속 같이 있는 거였으니까."
 "근데 그러다 사소한 대화 하나에 일이 터졌어."
 - 오빠, 저희 이러고 있으니까 꼭 부부같지 않아요? 히히히.
 - 이런 부부라면 사양한다. 부인한테 모든 걸 기대는 남편이라니, 한심하잖아. 
 - 아니예요, 뭐가 한심해요, 오빠. 오빠가 한심할 일은 절대 없어요.
 - 뭐야, 그러면 네가 나 평생 먹여살려줄 거야?
 - 평생 먹여살려주면 저랑 결혼해주실 거예요? 그래요, 애인 같은 세세한 건 건너뛰고 바로 부부로 가요.
 - 아서라, 아서.
 - ??
 - 혼자서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할 건데? 소박하더라도 신혼집은 장만해야하지. 집 생겼으면 가구도 사야지. 그리고 세금도 있잖아. 또 애라도 생겨봐라, 학교 보내야지, 학원 보내야지, 그리고 이것저것 챙겨줘야 하지. 그게 다 얼마야, 얼마.
 - .........
 - 안돼, 안돼.
 - ......... 그래요.
 - 응? 뭐가 그래?
 - 오빠 말이 맞아요.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 ??
 - 빨리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겠어요.
 - ......... 엥?
 - 오빠 걱정 마세요. 이 여름방학 안으로 제 능력이 충분하다는 걸 오빠한테 보여드릴테니까요.
 - !!
 - 방학 끝나기 전에는 돌아올게요, 오빠! 밥은 꼭 챙겨드셔야해요!!
 - 자, 자, 잠깐만! 여, 영은아!!
 "그렇게 영은이가 집을 나갔지. 응? 갑자기 이게 무슨 전개냐고? 나도 몰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영은이한테 물어봐, 영은이한테."
 "나도 그 때는 엄청 당황했지. 얘가 갑자기 영문모를 말만 남기고 집을 나갔으니까. 근데 그렇다고 딱히 영은이를 찾으러 가거나 하지는 않았어. 내가 나쁜 남자나, 그런 거여서 그런 게 아니라. 영은이라면 뭐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거든. 영은이라면 터미네이터하고 같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도 자기 혼자 당당히 걸어나올 걸."
 "나는 어리둥정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어 재수생이. 공부나 해야지."
 "그렇다고 영은이한테서 연락이 하나도 없었던 건 아니였거든. 가끔씩 전화를 해서는 '사랑해요, 오빠.' 라고 말하고는 끊더라고. 무섭게시리. 갑자기 전화해서는 저 말만 남기고 끊는다니까, 안 무섭겠냐?"
 "그러다 슬슬 방학이 끝나가던 쯔음에 영은이가 돌아왔어. 온 몸에 피곤이 배여있는 모습으로 말이야. 나는 얘가 뭘 하고 다녔길래 이러나, 해서 물어봤지. 그랬더니 하는 말이."
 - 책을 쓰고 왔어요. 헤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오빠. 조만간 돈이 생길 거예요.

 "책이요?"
 뜬금없이 튀어나온 소재라 그런지 강식이가 되물어보았다.
 "그래, 책."
 "잠시만요. 그러니까 지금 형수님이 19살 때 쓰신 책이 출판됐다는 얘기죠?"
 "그러면 뭐겠냐."
 강식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 출판사가 무슨 자선단체도 아니고 고3 여자애가 들고온 원고를 출판해줬다고요? 어디서 입상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명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 나도 너처럼 생각했어. 그랬더니 영은이가 그러더라. '무명인 제가 책을 낸다는 게 어려운 건 맞죠. 하지만 어려운 거지,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 라고."
 "허, 참........"
 강식이는 할 말을 잃은 듯하다. 그 때의 나랑 똑같은 반응이다.
 "그리고 뭐 전개상 당연한 결말이 되겠지만 그 책은 완전 히트쳤어. 영은이의 말대로 돈이 마구마구 들어오더라."
 "그거 책 제목이 뭔데요?"
 이제 우리 식탁에는 막걸리도 안주도 없다. 더 시킬 생각도 없으니,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
 "제목 말해주면 알려나? 베스트셀러이긴 했지만 워낙 오래전이고 말이야."
 "형, 저 국어선생이예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베스트셀러였다면 알 수도 있죠."
 "질척한 시선."
 "네?"
 "질척한 시선이라고, 책 제목이."
 "......... 네?"
 "질. 척. 한. 시. 선. 이라고 임마."
 강식이는 잠깐이지만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이 얼어붙었다. 그리고는 멈췄던 시간을 메꾸려기라도 하려는지 흥분해서는 급하게 말을 했다.
 "마, 말도 안돼!!!! 말도 안된다고요!!! 어떻게 그 책 저자가 형수님이실 수가 있어요!! 언블리버블!!!! 오 마이 갓!!! 지저스!!! 질척한 시선 작가님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계셨을 줄이야!! 형, 그 책을 모르면 제가 사람이 아니죠!!! 우와!! 진짜 말도 안돼!!!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이 녀석, 소독차라도 지나가면 따라갈 기세인데.
 시끄러워서 주위 사람들이 눈쌀을 찌푸렸지만 이 녀석을 막을 도리는 없어보여서 그냥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자기도 힘든지, 숨을 조금 헐떡이며 강식이가 물었다.
 "혀, 형. 근데 궁금한 게 그걸 형수님이 쓰셨다는 게 정말 의외네요."
 "그러냐?"
 "그도 그럴게. 그 책 내용이 그렇잖아요. 표현도 장난 아니고요. 그런 걸 형수님이 쓰셨다니, 거 참. 믿기지가 않네요."
 질척한 시선.
 내용은 심플하다. 한 남자를 극심히 사랑한 여자가 결국은 그 남자를 납치, 감금. 그리고 납치한 남자와 같이 지내는 걸 여자의 입장에서 서술한 게 바로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책에서 주목한 건 표현법이었다. 여자의 비뚤어진, 어긋한 사랑과 남자에게는 공포로 다가오지만 여자에게는 사랑으로 다가오는 상황 묘사. 그리고 여자 입장에서 서술함으로써 느껴지는 섬뜩함.
 독자들부터 평론가까지 이런 표현법에 극찬을 가했다. 
 천재가 나왔다나, 뭐라나. 
 그 책의 어느 정도는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란 건 아무도 모르겠지.   
 그런 사실에 나는 실소를 머금으며 
 "........ 그러냐?" 
 라 대답했다.
 아, 맞다. 그리고 말 안 해줬는데.
 책의 결말은 여자가 남자를 죽이고 자살한다.


 시장에서 우리 집까지 별로 멀지도 않아서 금방 도착했다. 이쁜 마누라와 귀여운 딸아이의 인사를 기대하며 문을 열자.
 "늦어!!!"
 반겨준 건 도깨비가 된 딸의 불호령.
 "도대체,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별로 늦지도 않았어, 도희야. 이제 겨우 6시 조금 넘겼는데........"
 "아빠한테나 그렇고!"
 도희는 휴대폰을 꺼내 뭘 검색해보고는 말한다.
 "나한테는 6월 2일부터 1월 8일까지라고!! 거의 7개월을 기다렸단 말이야!!"
 박도희, 넌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근데 엄마는 어딨어?"
 "엄마는 요즘 분량이 너무 많아서 오늘은 내가 좀 쉬게했어."
 메인 히로인의 출연을 막다니, 엄청난 힘이다.
 "엄마는 좀 쉬어도 돼! 그 동안 너무 설쳤어."
 "엄마한테 설친다니......."
 예절 교육부터 다시 시켜야겠다.
 "그나저나 아빠도 문제야!!"
 아무래도 문 앞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던 건 날 혼내기 위해서였나 보다.
 "이제야 드디어 과거 에피소드가 끝났는데, 그러면 바로 집에 들어와서 그 동안 출연을 못 한 귀엽디 귀여운 딸의 에피소드를 진행시켰어야지. 기껏해봐야 엑스트라보다 조금 나은 아저씨하고 술이나 마시고 오고! 결국은 과거 에피소드를 하나 더한 격이잖아!!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나도 어엿한 히로인이라고!!"
 "도희야, 너는 히로인이 아니야. 그랬다가는 근친이 돼버리잖니. 딸이 히로인이라니 무슨 그런 망발을."
 "아빠야 말로 뭘 몰라! 요즘은 어딜 가나 근친이라고!! 오빠와 여동생, 엄마와 아들, 이모와 조카, 어딜 가나 근친이 보인다고!! 이 세상은 근친 범벅이란 말이야!!"
 내 생각보다 이 세상은 더 썩어있었구나........
 "역시 근친이 최고야!! 근친엔딩으로 가자! 근친! 근친! 근친!"
 아니, 썩은 건 내 딸인가.
 "나한테 자꾸 이렇게까지 신경 안 써준다면 나도 다 방법이 있어!"
 도희는 나한테서 거리를 벌리고는 소리쳤다.
 "노랑이 아줌마의 근황을 털어놓겠어!"
 "아, 안돼!!"
 그, 그건 안돼!!
 "빨리 약속해! 다음 편은 나만을 위한 편이라고!"
 "도, 도희야, 진정해! 미안하지만 다음 편도 이미 줄거리가 잡혀있다고. 지금 와서 바꿀 순 없어."
 "그럼 협상은 결렬이다!!"
 나는 도희의 입을 막으려고 달려보았지만 역시 내 딸, 똑똑해서 그런지 미리 거리를 벌려놓은 이유가 있었다. 
 "랑이 아줌마는 이미 딴 남자 만나서 지금 쌍둥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다고!!! 이 녀석들아!!!"
 느, 늦었다....... 더 이상 막을 수 없어........
 "네들 얘기 들어보니까, 여주인공을 랑이로 바꾸라느니, 랑이가 더 좋다느니. 헛소리! 이미 딴 남자 잘 만나서 달콤한 연애도 하고 끈적한 신혼여행도 다녀와서 지금은 애 딸린 아줌마라고!"
 "그, 그만........"
 "하여간 너네들은 그게 문제야! 항상 하렘만 보니까 그렇지! 어떻게 여자가 평생 한 남자만 보고 살아! 미쳤어?!! 그 하렘물들 보면 아주 가관이라고, 남자한테 차여놓고서도 '그래도 난 아직 포기 안해.', '언젠가는 네가 날 돌아보게 만들겠어.', '방심하지 마, 난 아직도 널 좋아하니까.' 라니 아주 지랄들을 해요, 지랄들을!! 딴 여자가 좋다는데, 왜 이리 극성이야! 뭐 한, 두명이면 말을 안해. 무슨 7, 8명이서 그러고 앉아있으니, 그게 병이지 뭐야."
 "이제 그만......"
 "네들은 또 그런 여자들 보면서 '거절당해도 포기하지 않고 일편단심이라니, 흑흑 눈물난다." 라며 질질 짜겠지. 웃기지 마!! 세상의 반이 남자다! 걔네들도 나중에는 딴 남자 만나서 잘 먹고 잘 살아! 솔직히 그런 데의 남자주인공은 뭣도 없잖아, 여자들만 쓸데없이 하이스펙이고, 걔 말고 딴 남자 잡는 게 훨씬 이득이겠다!!"
 "이, 이제 그만......"
 "그리고 뭐 하렘엔딩? 모두가 행복해지는 엔딩이라고? 나참, 내가 기가 막혀서. 남자 한 놈이 여자 여럿 후리고 다니는데, 행복을 어디다가 함부로 붙여!! 네들 내 말 잘 들어!!"
 도희는 어느 곳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말한다.
 아마도....... 당신들 쪽이겠지.
 "하렘엔딩은 세상에서 가장 추잡하고 난잡한 망나니 엔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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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자리끼 02/27/01:29
제가 사실 이걸 네이버 웹소설에서도 연재하는데, 거기다가만 올리고 여기다가 올리는 걸 잊고 있었네요.

일단 밀린 거 다 올리긴 할 건데. 여길 통해서만 읽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짓을 했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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