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이 수련을 시작한지 어느덧 3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거대한 중립도시 【네필】에 해가 중천에 떠오른 때, 푸른빛 머리의
휴마남성이 길드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향하는 곳은 길드의 맨 꼭대기 층, 어지간한 모험가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계층의 방. 그는 꼭대기
층에 도착하여 그곳에 있는 유일한 문을 열어 들어갔다.
“펠인가. 잘 왔군.”
녹색과 검은색이 뒤엉킨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펠을 반기고 있는 인물은 길드의 관리자 ‘길드 마스터’라 불리는 터스크 호르던이라는 하프엘프의 남성이었다.
“오랜만의
만나는 파티동료인데 좀더 살갑게 맞이해주면 안 되는 건가.”
“누가 할
소리.”
서로의 대화에 두 사람은 소박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 모습은
오랜 친구와의 만남을 즐기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그도 그럴게 두 사람은 같은 파티원 이었으며, 릭의 아버지인 펠즈가 이끌었던 파티의 소속해 있었던 인물들이다.
“그래서 여기엔
무슨 일로 온 거지?”
“유적탐사에
관해 보고서에 못 적은 이야기가 있다. 그걸 마저 하러 온 거다.”
“흠…… 그렇다면, 보고서에는 적을 수 없던 얘기란 건가.”
“뭐,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지만.”
펠과 터스크는 방 한 가운데에 있는 소파에 마주보며 앉았다.
“유적탐사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거야?”
턱을 만지며 묻는 터스크를 보고 있던 펠은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고, 터스크는 그런 펠의 반응에 표정이 사뭇 진지해 졌다.
“유적의 경비를
보던 모험가와 연락이 안 된다는 것과 특정 이상반응이 일어났다. 이것이 내가 유적에 발을 옮긴 이유다.”
“어. 그건 내가 네게 직접 퀘스트를 내린 거니까. 그래서 가보니 뭐가
있었지?”
펠은 조용히 두 손을 모아 꽉 붙잡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속이
뒤집어지는 처참한 광경.”
“……처참한
광경?”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사태에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한 터스크는 다리를 꼬았다.
“경비를 서있던
모험가는 전부 기이한 형태로 죽어있었지. 몸이 세로로 슬라이스 돼있던 녀석, 신체의 반 이상이 녹아 굳어져있던 녀석, 몸의 절반이 벽에 파묻혀진……아니, 결합돼있던 녀석……. 나라도
등이 오싹해 지더군.”
두 눈을 감으며 그때의 그 광경을 되새겨내는 펠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사람이 사람의 형태로서 죽음을 맞이 하지 못했던 그 광경은 너무나도 잔혹하고,
너무나도 참담한 광경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모험가만 발견 된 게 아니다.”
시체가 모험가 만이 아니라는 신경 쓰이는 한마디에 터스크의 미간을 살짝 일그러졌다. 모험가들이 경비하고 있던 오래된 유적에 모험가 만이 아닌 다른 존재가 있었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이다. 유적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주변 국가들은 유적, 미궁, 마경 등 통틀어 던전이라 불리는 것은 전부 【네필】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유적… 던전에 발을 함부로 들이는 것은 주변 국가들은 꺼려하는 것 일터인데. ……혹시.”
“헌터다.”
펠의 입에서 나온 헌터란 단어에 터스크는 ‘역시나 인가.’라 생각하며 이마에 손을 얹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헌터들도
시체로 발견됐지. 전부 제대로 된 죽음은 아니 였지만, 그
시체 중 하나 덕에 유적에 숨겨진 방의 입구를 발견했다.”
“……숨겨진
방? 그 유적은 더 이상 숨겨진 공간은 없을 텐데.”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며, 의문을 가진 터스크에 대답에 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존재했단
말이지. 그곳에 들어가보니 무언가 봉인돼 있던 흔적이 발견됐다. 이건
내 감이지만…… 상당히 위험한 냄새가 났다.”
크라운은 깊이 생각에 빠졌다. 펠의 이야기에 신뢰를 하기
때문인지, 또는 예상이 가는 것이 있는지 알면서도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곤 입을 열었다.
“……이것은
아직 공표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헌터. 지하길드의 움직임이
요즘 들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는 정보와 흔적이 이곳 저곳에서 발견 돼가고 있어.”
지하길드란, 헌터라는 무법자들이 속해 있는 거대한 조직의
이름이다. 모험가와 다르게 기본적으로 위법행위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청부업자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자들로만
구성 돼있다 할 수 있다.
“……무언가
하려는 건가.”
“뭔가를 저지르려고
해도 이쪽은 이쪽대로 전력이 있어. 대표적으로 시온과 네가 있으니 지하길드녀석들을 억압할 수 있을 텐데.”
“무슨 소리지? 시온과 내가 억압할 수 있다니.”
생각에 잠기고 있던 펠은 터스크의 얘기를 듣고 발끈하였다.
“시온은 아직
성장하지도 않았다. 아직 미숙해.”
“그 애는
완벽해. 모험가가 된지 3개월 만에 랭크가 4번이나 올랐다고.”
시온이 미숙하다는 소리에 살짝 당황하듯 다급히 말하는 터스크는 시온의 경의적인 성장속도를 강조하였다. 일반적인 모험가는 3개월이면 빨라도 랭크가 2번 올라간다. 이는 시온의 성장속도는 비정상적이란 것과 그만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뒷받침 해주는 근거이다.
“그 애는
몸만 컸지 정신은 성장하지 않은 어린애, 능력치가 높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시온은 정신적으로 아직 미숙하고 비어있는 것이 많다. 그렇기에 릭에게
끌리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시온이 릭에게
끌리고 있다고? 그 애와 시온은 정반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달라. 서로
공감할 것이 없는데 왜 끌리고 있다는 거지?”
옅은 미소를 짓는 펠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터스크는 반론을 내뱉었다.
“그래 정반대지. 그렇기에 그 둘은 서로 이끌리고 있다. 외적으로는 성장을 이루지
못했지만 내적으로 성장을 해나가는 릭, 외적으론 성장을 해냈지만 내적으론 성장을 이루지 못한 시온. 비슷하면서도 다른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있지.”
여전히 미소 지으며 말하는 펠에게 귀를 기울이는 터스크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없다. 시온과 릭은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다. 신에게 사랑 받았다라고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자와 그 무엇에도 은혜를 받아
보지 못한 자.
“릭이 시온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부터 시온은 시간이 날때 마다 내게 릭에 대해서 묻더군. 그리곤 틈만 나면 멀리서
릭을 멀리서 지켜보러 갔지.”
“마치 사랑하는
소녀 같군.”
언짢은 표정을 짖다가 능글맞게 내뱉는 터스크의 농담에 펠은 웃음을 터트렸다.
“릭과 시온은
서로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이 상태로 둘이 좋은 관계를 쌓아 줬으면 좋겠군.”
펠은 마음은 선배로서, 선생으로서 가지고 있는 마음이었다. 후배이면서 제자인 두 사람이 서로를 도와 성장하길 바라는 그는 터스크와 마저 대화하기 위해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터스크를 응시하였다.
“그럼 터스크
일단 이 얘기는 다음에 미루고,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