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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온갖 의뢰와 잡일 따위를 도맡아 하는 조직의 통칭, 길드. 바로 여기에도 하나의 길드가 있다. 그 이름은, 어스. 매일같이 적자에 시달리는 길드의 상황으로 인해, 간부들은 골머리를 썩히고 있지만, 길드 마스터의 상태가?! 길드 어스에 어서 오세요!

[퓨전,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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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각인된 기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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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갓카[anileonhart]
조회 1649    추천 0   덧글 0    / 2019.01.08 19:38:49

6화.각인된 기억 속에서

 레드문이 가리킨 자리는 정중앙이었다. 하필이면 한눈에 보기에도 눈에 띄는 옷차림으로, 카로스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홀대리는 무슨 차림이 저러냐며 우릴 놀리는 거냐며 수군대는 상대 길드원들을 깔끔히 무시한 채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럼 마저 이야기를 진행해볼까요?"
 재계약이 진행되는 내내, 카로스는 레드문과 상대 길드원이 나누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온갖 전문용어의 나열과 카로스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말들이 오가고, 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건 로리먼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카로스가 할 일은 그저, 레드문이 손으로 가리키는 부분에 서명하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상대 길드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가 싶었으나, 어느새 이야기의 주도권은 레드문에게 넘어갔고, 레드문은 내내 그 주도권을 유지해나갔다.
 '을'의 입장인 상대 길드는 레드문의 절대적인 갑질에 제대로 응수하지도 못했고, 거래는 어스에 유리한 조건으로 어떻게든 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길드에 돌아오자, 카로스 일행은 다시 정문에서 답위와 마주쳤다.
 "일하러 나가는 거야?"
 답위의 복장은 시대에 맞지 않아 보이는 중갑으로, 손에 들고 있는 헬멧을 제외하면 가히 완전무장한 상태였다.
 "여, 카로스, 일은 다 끝낸 거야?"
 "…뭐, 그런 것 같아. 레드문은 아직 처리할 일이 있다면서 먼저 가라고 말 하더라고……."
 카로스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한 걸음 비켜서주자, 로리먼트가 불쑥 튀어나오며 말했다.
 "어디에 가길래 그렇게 완전무장하고 나가는 거야?"
 "…저번에 그 놈들이랑 결판을 내러 나가게 됐다. 명예 결투이긴 해도, 갑옷으로 겁이나 줄 생각이야."
 "그런 갑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건 너 혼자밖에 없잖아. 불편하지는 않아?"
 "하루 이틀 입는 것도 아닌데 뭘, 그것보다 카로스, 넌 각인 마술에 대해 기억하고는 있냐? 쉬다가 복귀한 어드민 중에서 까먹었다는 사람이 많아서 말이야."
 "각인 마술……?"
 답위의 질문에 카로스는 머리를 끙끙대며 기억 속을 헤집었다.
 "카카, 설마 기억 못하는 거야? 그럼 네 무기도 못 꺼내겠네?"
 각인 마술이라, 카로스가 기억하는 선에서 말하자면 자신의 무구를 각인하여 보관하는 마술로 하프 랜드 조약 이후로 필수로 배워야만 하는 마술 중에 하나였다.
 무기를 들고 다니는 행위는 불안감을 조성할 뿐더러, 전쟁이 끝난 지금은 결투를 제외하면 그럴 일 조차 거의 없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각인 마술을 사용하도록 경찰에서도 지도하고 있다.
 카로스 또한 각인 마술은 예전에 익혀두었다.
 흑검 네로─,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애검의 이름이었다.
 "으음……, 분명히……."
 멍한 얼굴로 골똘히 서 있던 카로스는 무언가 생각난 듯, 자신의 오른손을 쭉 펴 보았다.
 "이거… 였지?"
 오른손의 손등에는 검은 날개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이것이 카로스의 칠흑 마검, 네로의 각인 문양이었다.
 마찬가지로, 로리먼트의 손등에는 나뭇잎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답위가 보여준 슬쩍 각인 문양은 육각형의 도형이었으며, 갑옷과 방패를 각인해 두었다고 한다.
 "…설마 진짜로 까먹은 건 아니지? 잘 기억해봐.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거야. 마력은 미스틸테인으로 보급해줄게. 일단 봐."
 카로스의 앞에서 로리먼트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더니, 낭랑하게 외쳤다.
 「미스틸테인!」
 외침에 공명하듯, 손등에 있던 나뭇잎 문양이 빛나며, 빛과 함께 로리먼트의 지팡이 '미스틸테인'이 그 찬란한 자태를 뽐내며 소환되었다.
 "우와…."
 "뭘 처음 보는 것처럼 그러는 거야? 너도 할 수 있잖아. 네 검의 이름을 잘 기억해봐."
 카로스가 몇 년간 함께 해왔던 검, 카로스의 분신과도 같은 그 이름을 잊어버릴 리가 없다.
 「네로…!」
 그 이름을 외친지 너무나 오래된 탓인지, 한순간 손등이 불에 타는 듯 한 느낌에 휩싸였다.
 "아파…!"
 검은 날개 모양의 각인 문양이 빛을 뿜어낸다. 그 열기에 카로스는 신음하며 왼손으로 오른손을 꽉 붙들었다.
 카로스의 부재와 함께 오랜 시간동안 녹슬었던 네로의 부활, 카로스의 흑색 마검 '네로'가 검은 빛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잘 알고 있잖아…!"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 검은."
 카로스의 소환 성공에 로리먼트와 답위가 박수를 치며 축하해준다.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 아니면 내가 그렇게 수준이 낮아진 거야?"
 "각인 무기를 영영 못 찾는 사람도 많아. 네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 아무튼, 난 일 때문에 먼저 가 본다."
 "설마 지지는 않겠지?"
 불안한 듯 던진 로리먼트의 말에 답위가 코웃음 쳤다.
 "질 리가 없잖아. 그런 놈들한테, 갑옷에 흠집도 못 낼 거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 답위."
 로리먼트에게 배웅 받으며, 답위는 중갑을 걸친 채 길드 정문을 나섰다.
 그 옆에 서있던 카로스는 오랜만에 소환한 자신의 애검을 보며 흡족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 한번……!"
 허공을 향해 두어 번 베어보자 손에 익었던 검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그런 거 볼 때마다 되게 멋있었는데 말이야……."
 "응? 무슨 말 했어?"
 "아니, 아무 말도 안 했어."
 검술은 잘 알지 못하는 로리먼트가 보기에도 확실히, 카로스의 동작은 예전 같지 않게 어딘가 뻣뻣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맨날 방에서 게임만 하니까 몸이 굳은 거 아니야! 운동이라도 좀 하라구!"
 "갑자기?!"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미스틸테인을, 카로스는 익숙한 동작으로 막아냈다. 눈으로 다 확인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여 공격을 받아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카로스가 항의한다.
 "왜 막는 거야!"
 "왜 때리려고 하는 건데!"
 동시에 그렇게 말하며 대치하다 로리먼트가 먼저 한숨을 쉬며 지팡이를 거두어 들였다.
 "아무튼 지금부터 잘 하면 되는 거야.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
 타이르듯 말하는 로리먼트의 앞에서 카로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자신이었으니까, 로리먼트의 말은 정곡을 찌른 셈이었다.
 "둘이 뭐하고 있는 거냐?"
 정문 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잔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리무진에서 내리는 레드문이 보였다.
 "내 일은 끝난 거야?"
 "거기서 폼 잡고 있지 말고 비켜, 안 그래도 할일은 많으니까 너 따위한테 내줄 시간은 없다."
 카로스의 말을 차갑게 쳐내며, 레드문은 당당하게 정문으로 향했다. 카로스는 그저, 그 저벅저벅 거리는 발소리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레드문님이 오늘따라 많이 피곤해보이니까요. 양해해주세요."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르던 홀대리가 말했다.
 "하기야…… 그렇겠지……."
 "…카카, 우리도 슬슬 들어가자. 무기는 도로 집어넣고……."
 다시 각인 마술을 영창해 무기를 집어넣은 후, 카로스와 로리먼트는 홀대리의 뒤를 따라 길드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레드문이 무능한 사무요원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조금 숙청하는 게 좋겠다고 하던데……."
 "그 '숙청'은 해고를 말하는 거겠지?"
 레드문의 표현법은 가끔 과격해질 때가 있었다. '숙청'도 말 그대로 숙청한다는 뜻은 아닐게 분명하지만……, 레드문의 행보가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무실도 보여주고 싶지만… 다들 일하느라 바쁠 테니까 그건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 네 방부터 다시 정돈하는 게 좋겠어……. 어때?"
 "다들 열심히 일하는 모양이니까……."
 "벌써 4시가 넘었네……. 그럼 네 방으로 가자."
 다시 카로스의 집무실, 여전히 먼지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집무실에서 무엇을 하던, 흩날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환기좀 시켜야 될 거 같아. 창문좀 열어줘, 카카."
 "알았어."
 창문을 열고 돌아서자, 아까는 보지 못했던 노트북이 집무실 책상에 놓여있었다.
 로리먼트가 먼지를 닦아내는 사이 카로스는 몰래 노트북으로 접근했다.
 틀림없이 최신형의 고사양 노트북이었다. 예전에 광고로 본 적이 있었다.
 가격대만 200만원을 넘어가는, 어지간한 고사양의 PC를 상회하는 성능을 자랑하는 녀석이다. 말하자면 슈퍼컴퓨터에 가까울까.
 '이런 게 왜 여기 놓여있는거지?'
 로리먼트에게 들키지 않게 소리 없이 접근한 카로스는 노트북의 전원 키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곧 푸른빛이 들어오며, 노트북에 전원이 들어왔다.
 카로스의 집에 있는 PC도 상당한 고사양의 게임용 PC였지만, 인터넷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간혹 컨트롤과는 별개의 렉으로 다른 유저와의 대결에서 졌을 때 얼마나 억울했던가.
 그에 비해 이건 작업 처리 속도도, 인터넷 속도도 모든 것이 완벽하다. 카로스는 탄성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오오…!"
 "카카! 뭐하는 거야!"
 그리고 로리먼트에게 들켜 잔소리를 한 움큼 듣고 말았다.
 로리먼트의 말을 들어보니, 노트북은 길드 마스터의 업무용으로 레드문이 남은 잔여비로 구매한 모양이었다. 나름대로 카로스를 길드로 끌어낼 속셈이었겠지만 연락이 아예 닿지 않아 그저 잊힌 채 그 자리에 놓여있던 것으로 보였다.
 아무튼, 카로스는 레드문의 계략에 완전히 넘어갔다.
 "집에서 하는 것보다 여기 와서 게임하는 게 낫겠는걸……."
 "아니! 게임하러 길드에 오면 안 되지! 바보야! 일단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청소부터 도와!"
 "네! 알겠습니다!"
 카로스를 유인하는 데는 게임이 더 나았던 모양이었다.
 로리먼트는 밀려오는 짜증을 한숨으로 내쉬고는 아무렇게나 놓인 서재를 정리했다.
 그러자 발치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건…?"
 로리먼트는 자세를 낮춰 서재 밑바닥에 끼어있던 나무 판을 꺼내들었다.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보니, 예전에 길드 간부들이 나란히 모여 찍은 사진이 든 낡은 액자였다. 본래 서재에 놓여있었을 테지만, 언젠가 떨어진 이후 그대로 방치된 모양이었다.
 "이런 게 왜 여기에…… 카카, 이것 좀 봐봐."
 "응? 왜?"
 로리먼트로부터 다소 빛이 바랜 사진을 받아든 카로스는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
 사진에는 카로스와 로리먼트, 답위와 준, 그리고 찍기 싫어하는 표정의 레드문과 카로, 그리고 사이에 끼어있는 엔비…… 마지막에 서 있는 흑발의 여성은…… 앨리스였다.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느껴져 카로스는 가슴팍을 쥐어잡았다.
 사진을 든 손이 바들바들 떨려온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또 증상이 찾아오고 말았다.
 카로스의 이변을 알아챈 로리먼트가 재빨리 뛰어왔다.
 "…카카!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다행히 가슴의 통증은 곧 잦아들었다.
 가빠졌던 호흡도 점차 가라앉았다.
 종종 이런 일이 있었다. 병과는 별개로, 이건 또 다른 문제이다.
 "카카, 옷좀 벗어봐."
 갑자기, 로리먼트가 불쑥 그런 요구를 해왔다.
 "…어? 갑자기 왜?"
 "잔말 말고 벗어봐. 빨리!"
 그러고는 다짜고짜 달려들어 카로스의 상의를 거칠게 걷어냈다.
 카로스의 허리부근부터 시작된 검은색의 상흔이 어느새 가슴팍까지 향해있었다.
 "…저주가 더 심해졌잖아. 왜 진작 길드를 찾지 않았어. 이건 위험한데……."
 바닥에 떨어진 액자를 흘낏 본 로리먼트는 사진에 찍혀있던 앨리스를 보고서야 기억해낸 듯 말했다.
 "…저거 때문이야? 저게 상흔을 자극한 거야?"
 카로스는 듣지 못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방금 전 로리먼트에게 들었던 말 중 신경 쓰이는 단어가 있었다.
 "…저주라고 표현하지 마. 그건 누구 잘못도 아니었으니까……."
 "…그치만, 이렇게 네 몸을 점점 갉아먹고 있잖아! 이러다 이게 전신으로 퍼지면 너도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
 갑작스레 소리를 지르는 카로스의 앞에서 로리먼트가 움츠러들었다.
 기세에 눌려 자기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선 로리먼트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신경 안 쓸 수가 있어. 이대로 가면 네가 죽게 생겼는데……. 걱정된단 말이야. 난……."
 젖어있던 눈동자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그걸 보고서야 한순간 욱했던 카로스도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들어서 심해진 거야. 아마……."
 무언가 말하려던 카로스는 도중에 말을 멈추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떠올려보자면 꽤나 오래전의 과거까지 가게 된다.
 2년 전,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던 에인헤야르와의 길드 전쟁─그것은 결국 어스의 승리로 종전을 맞이했다.
 결과만 보면 좋은 거지만, 어스 측에 있어서도 에인헤야르와의 싸움은 비록 어스의 승리로 끝났다고 한들, 승자 없는 피로스의 승리였다.
 에인헤야르의 리더 메르와의 싸움에서 희생된 길드원들, 그리고 최후에 이르러서 자신의 몸을 내던진 앨리스─그 영향으로 카로스의 몸에는 이런 상흔이 남고 말았던 것이다.
 허리춤에서 시작된 그 새카만 상흔은 어느 샌가 등을 타고 문신처럼 전신을 향해 퍼져나갔고, 그에 따라 카로스의 몸에도 상당한 무리가 가고 있었다.
 여러 번 고치려고 시도해봤지만, 결국 상흔은 사라지지 않았고, 레드문은 상흔을 보며 앨리스와 여러 가지로 연결되어 있던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끊어진 탓에 이렇게 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압박감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악몽을 꾸는 일이 잦아진 것도 최근의 일이었다. 그런 꿈을 꾼 아침에는 매번 환멸감을 느낀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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