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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 Dreamland Online
운명의 돌: 멈춰버린 시계추 by 9959

정의는 하나가 아니다. 옳은 정의란 없다. 서로의 정의를 위해 타인을 짓밟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이기적인 이들의 이야기.

[판타지,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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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더미 - Chapter. 겨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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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2    추천 0   덧글 0    / 2019.01.10 12:18:45
  아이트라는 루벤가드의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성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트라는 왼손에 든 장궁을 만지작거렸다. 어디서 화살이 날아들지 모른다. 더욱이 적이 강력한 저주를 쓸 수 있는 흑마법사나 강령술사까지 있다는 걸 알았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중 선봉대가 성벽의 바로 앞에서 깃발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트라는 지체하지 않고 오러를 담금질했다.

  새빨간 오러가 몸 전체를 뒤덮고 활과 화살을 감싼다. 아이트라는 허벅지에 메달아 둔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냈다. 화살을 시위에 걸고 천천히 허나 힘있게 잡아당겼다. 화살에 담길 오러의 양을 정확하게 화살촉이 성벽의 표면만을 뚫을 수 있게 조정한 뒤 시위에서 손을 놓았다.
  
*

  첫 화살이 머리 위 약 1미터 쯤 떨어진 곳에 박히는 걸 확인한 카로스는 한 번의 도약으로 오러가 남아있는 화살을 붙잡았다. 그가 한 팔로 몸을 끌어올리기 직전에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첫 화살로부터 3미터 위에 꽂힌 화살을 보며 카로스가 미소 지었다.

  순식간에 20여 미터를 올라간 카로스는 그의 감이 보내는 위험 신호에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루벤가드의 패기가 담긴 화살이 달아들었다. 루벤가드가 시위를 놓기 전 한 발 빠르게 방패를 들었음에도 화살이 투기와 방패를 뚫고 얼굴 앞까지 화살촉을 들이밀었다. 그 즉시 루벤가드는 초월기를 사용했고 폭발과 함께 카로스는 성벽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날아가는 카로스의 모습을 확인한 루벤가드는 곧바로 아이트라를 겨냥했다. 허나 아이트라는 루벤가드가 노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성벽에 화살을 쏘았다. 루벤가드의 화살은 아이트라를 향해 날아갔고 두 명의 화살은 부딪치지 않은 채 서로의 목표를 향했다. 

  루벤가드는 자신이 쏜 화살이 바람과 얼음의 이중 벽에 막히는 걸 보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폭연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두 번째 카로스가 성벽을 마저 오르기 시작했다. 루벤가드는 성벽 끄트머리에 서서 첫 번째 카로스와 아이트라를 동시에 방해했다. 그러나 두 번째 카로스에 대한 건 생각지도 못했기에 그가 연기를 뚫고 성벽을 올라왔을 때 적잖게 당황했다. 곧바로 두 번째 카로스를 향해 활대를 돌린 순간 아이트라의 화살이 그의 활을 쥔 팔을 날려버렸다. 

  “크윽!”

  날아간 팔의 고통에 아이트라를 노려보는 루벤가드를 두 번째 카로스는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라 생각하고 달려들었다. 그는 눈앞에서 달려든 병사의 심장에 손을 박아 넣어 절명시킨 뒤 창을 갈취했다. 루벤가드를 지키기 위해 달려드는 수많은 병사들을 압도적인 패기와 창술로 모조리 도륙하며 나아가던 두 번째 카로스는 순간적으로 온 몸이 무거워지자 이를 악물었다.

  ‘저주……!’

  투기를 두르고 있음에도 무거워진 몸을 일으킬 수 없다. 루벤가드는 투기를 집중해 손상된 팔의 지혈을 서둘렀다. 그는 쓰러진 병사의 칼을 쥐었다. 다음 순간 움직이지 못하는 두 번째 카로스의 머리통이 하늘 높게 치솟았다. 허나 두 번째 카로스의 목을 치고 식은땀을 닦아냈을 때 첫 번째 카로스가 성벽을 올라왔다. 두 남자가 눈을 마주친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초월기가 발동했다. 그리고 루벤가드는 카로스가 휘두른 초고속의 창날에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성벽을 나뒹굴었다. 

  카로스는 곧바로 두 번째 자신을 만들었다. 자기 자신의 완벽한 복제였기에 대화와 몸짓으로 합을 맞출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서로 반대 반향으로 달리며 성벽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성벽의 전투를 지켜보던 우시르는 카로스의 작전대로 지금껏 모아둔 마나를 사용해 칼리모스의 주술진을 공격했다. 주술진이 출렁이는 사이 대기 중이던 마법사들이 모아놓은 마나를 전부 강탈해 성벽 아래에서 적의 수성에 맞서던 겨울 용병단, 이천 명 전원을 카로스가 정리한 성벽 위로 골고루 공간이동 시켰다. 동시에 하이람과 그의 기병들이 성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거운 쇳덩이로 무장한 중기병이 랜스를 앞세우고 전속력으로 돌진하면서 그 곁을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장과 장창을 쥔 경기병이 호위한다. 그리고 중기병의 돌진이 가진 파괴력을 최대한 살려주기 위해 오로지 속도만을 위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방패만 든 기병들이 가장 선두에서 고기방패가 된다. 

  성벽의 점령이 확실시 됐고, 기병이 달려든 순간 테이라가 안면보호대를 내리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돌격해!”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가 전 병력에 울려퍼지게끔 페너트레인이 소리에 공력을 담아 멀리 퍼트렸다. 

  아이트라는 장궁을 말에 걸고 단궁을 꺼내들었다. 그녀가 말에 올라타며 병사들의 함성 소리에 묻히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저렇게 잘 훈련된 기병일 줄 알았으면 사들일 때 반대하지 말 걸 그랬어요!”

  “나도 몰랐어! 가자!”

  지지 않을 만큼 악을 써가며 소리친 테이라는 아이트라의 호위를 받으며 왕국군의 선두에서 하이람의 기병대를 바짝 쫓았다. 상대적으로 느린 보병들은 테이라의 초월기로 하나같이 초인의 힘을 다루게 됐기에 문제없이 그들을 쫓았다. 
  
*

  “암살자! 나랑 가서 성문을 열어! 펙서스! 지금부터 지휘권 인계한다! 챈슬러, 룩! 날 따라와! 녹스 넌 펙서스 지켜!”

  병력이 성벽에 등장한 순간 첫 번째 카로스는 바로 지시를 내렸다. 동시에 두 번째 카로스는 적들이 깔린 성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두 번째 카로스는 첫 번째가 하려는 게 뭔지 알고 있다. 그는 빠른 종전을 위해 적들의 수장을 칠 것이다. 허나 그리 쉽게 되지는 않을 테다. 적의 강자들 중 외성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루벤가드뿐이었다. 나머지 지휘관들이 어디 있을지 알 수 없다.

  ‘활잡이를 그냥 죽게 놔뒀다. 왜지? 저런 중요한 자원을 이렇게 쉽게 내다버리다니……,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군. 꿍꿍이가 있나?’

  달려드는 병사를 향해 창을 집어던졌다. 창은 병사를 꿰뚫고도 힘이 남아 그 뒤로 몇 명의 목숨을 더 앗아갔다. 두 번째 카로스는 허리춤에 있던 칼을 뽑았다. 가까이 다가온 병사의 칼에 자신의 칼을 부딪쳤다. 그의 칼날은 병사의 칼을 반쯤 잘랐지만 그 이상 힘을 낼 순 없었다. 평범한 병사임에도 패기가 담긴 칼은 쉽게 베이지 않는다. 그는 그대로 칼을 밀어 적과 밀착시킨 뒤 폼멜에 적의 칼날을 걸어 사선으로 끌어내렸다. 투구를 쓴 그대로 적의 안면을 들이받아 얼굴을 뭉갠 뒤 목젖을 잡아 뜯었다. 

  두 번째 카로스는 병사를 죽인 뒤 칼을 던져 다가오던 다른 병사를 죽였다. 그는 발치에 떨어진 창을 발로 차 올렸다. 그대로 병사 네 명을 참수한 뒤 성문을 여는 도르래를 향해 창을 던졌다. 패기가 담긴 창날은 두껍게 서로의 몸을 꼬고 있던 밧줄을 끊었다. 

  웅장한 마찰음과 함께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으로 하이람의 기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문이 완전히 열렸을 때 정확하게 도착한 하이람의 중기병은 외성에 남아있던 병력을 완전히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들어온 경기병은 중기병의 움직임에서 살아간 이들을 몰살했다. 

*

  칼리모스는 순식간에 과부하가 걸려 주술진 일부가 파괴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충격에 피를 토하며 아직 살아 있는 주술진의 방어에 전념했다. 그의 곁에서 라나텔은 팔짱을 낀 채 분명히 루벤가드의 손에 죽었을 카로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자연사를 제외한 모든 죽음의 형태가 저 자에겐 보이지 않는 걸? 게다가 실체나 다름없는 분신이라……. 상정 외야. 감도 좋아서 내 저주를 계속 피하고 있고…… 정말 성가셔. 저런 불사 놈들과는 싸우고 싶지 않아. 난 여기까지만 어울려줄 테니 알아서들 하라고.”

  라나텔은 죽일 수 없는 상대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루벤가드가 죽은 이상 더는 수성에서 압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녀는 칼리모스의 반응을 기다렸다. 칼리모스는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래봤자 삼기 투사다. 기력의 한계는 분명해.”

  “그 기력이란 것도 쟤들은 자기 마음먹기에 달렸잖아? 싸움을 시작했을 때 초월기랑 삼기가 제일 변수가 많은 놈들이야. 쟤들은 상식과 거리가 좀 멀다고. 너도 이쯤에서 꽁무니 빼는 게 좋을 걸? 활잡이 꼴 안 나려면 말이지.”

  칼리모스는 딱딱한 얼굴로 라나텔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그 시선을 마주했다. 칼리모스가 몸을 일으켰다. 라나텔은 울돌레이를 뒤덮은 대마법 보호막이 걷히는 걸 느꼈다. 그녀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역시 너도 여기서 접는 게 현명하다고…….”

  “공격으로 전환한다. 예정대로 루벤가드를 내성으로 옮기고 외성 내에서 적들을 하나하나 자르도록 하지.”

  “뭐? 미쳤어? 아니, 죽은 건 옮겨서 뭐하게?”

  칼리모스는 외성에 정수를 집중했다. 외성의 바닥에 거대한 주술진이 나타났다. 그는 목을 두어 번 꺾었다. 내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두 명의 제국 기사를 확인한 그는 주술진을 통해 그 안의 모든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여기까지는 예정대로다.”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빨아들인 생명력을 루벤가드의 시체에 집중했다. 라나텔은 칼리모스가 루벤가드를 되살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 경악했다.

  “미친놈인 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칭찬, 고맙군.”

  퉁명스럽게 한마디 한 칼리모스는 루벤가드를 되살렸다.

*

  눈을 떴을 때 사지가 멀쩡한 걸 확인한 루벤가드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칼리모스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한 이들이 미라처럼 메말라 있었다. 그는 월등한 시력으로 내성의 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제국 실반의 상징을 가슴에 박아 넣은 순백의 갑옷으로 빈틈없이 무장한 이들은 전혀 다른 초인의 힘을 쓰는 루벤가드마저 압도적인 기세를 느끼게 했다. 그는 소름이 돋는 팔을 매만지며 읊조렸다.

  “저런 놈들이 제국에는 널렸다니…….”

  루벤가드는 바로 눈앞에서 시체를 짓누르며 나타난 주술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재빨리 주술진에 몸을 맡겼다.

*

  두 번째 카로스는 비틀거리는 병사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방금 전 공격은 이들에겐 막는 것도 벅찼다. 그리고 잔뜩 빼앗은 생명력으로 죽은 활잡이를 되살렸다. 안 그래도 성가신 놈이 살아났는데 내성 문이 열리고 그보다 더한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부가 찌릿찌릿하다. 그의 감은 저들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카로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그림자에 녹아들어 있던 카스트로가 복면을 쓴 얼굴을 내밀고 말했다.

  “제국 기사라……. 지금도 저런 실력자들이 제국에서 고작 일반 병사들 수준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군.”

  카로스는 심호흡했다. 카스트로가 카로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작전에 변경 사항은?”

  “아직까진 없어. 어긋나긴 했지만 저 정도 수준이면 우리 쪽 오러 여자랑 비슷한 거 같으니까.”

  “저쪽은 둘이지.”

  “그럼 우리도 쪽수 맞춰야지.”

  카스트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카로스는 엄지손가락으로 등 뒤를 가리켰다.

  “이럴 때 쓰라고 부정시공 초월기 식객을 달고 다니는 거야. 윈터펠이랑 여자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우린 이대로 속행한다.”

  카스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예정대로 첫 번째 카로스의 그림자로 이동했다. 첫 번째 카로스는 지친 부관들을 지키고 있었다. 카스트로가 온 걸 확인한 그가 말했다.

  “나한테 얘기 들었겠지?”

  “그래. 확실히, 편하군.”

  “좋아. 챈슬러, 룩. 너흰 대기해라. 그 상태로는 방해 된다.”

  챈슬러와 룩은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카로스는 외성벽의 살아 있는 적들을 정리하며 제국 실반의 기사들을 눈여겨보았다. 
  
*

  아이트라는 혀를 찼다. 줄곧 느껴지던 찝찝함의 정체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테이라를 페너트레인에게 맡기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를 알아본 여기사가 투구를 벗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선배.”

  유창한 제국 실반의 말이었다. 아이트라는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해보였다. 그녀는 긴 금발을 어깨 너머로 넘기는 여기사를 노려보았다. 

  “루시, 일한……? 너희가 왜 여깄어? 제국의 기사는 소국의 분쟁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방침을 어기다니, 제정신이야?”

  루시는 일한을 쳐다보았다. 투구를 쓴 채 묵묵히 서 있던 그가 짊어지고 있던 대검을 땅에 꽂았다. 일한이 말했다.

  “그건 선대 철신의 방침이었습니다.”

  아이트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철신이 정해졌다고? 이렇게 빨리? 알스트레일 님과 레노어 님이 거절하고 당분간 철신 자리는 공석이라고 했었는데…….”

  “벌써 오십 년도 전의 일입니다. 역시 장수의 축복은 시간감각을 떨어뜨리는군요. 선배님.”

  일한이 대검을 들었다. 장정 세 명이 붙어도 들기 힘들어 보이는 대검을 가볍게 들어 올린 그는 오러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루시가 싱긋 웃으며 투구를 썼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방패와 창을 꺼낸 그녀는 아이트라를 향해 적대적 태도를 취했다. 그들의 뒤로 적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아이트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투구를 썼다. 활로 손을 가져가던 그녀가 멈칫했다.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 활과 화살통을 버렸다. 그녀가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 그래. 오랜만이라 제국 법을 깜박하고 있었네.”

  일한은 아이트라의 손에 투명한 무언가가 쥐어졌다는 걸 확인하고 루시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루시가 땅을 박찼다. 그리고 일한의 대검이 땅을 내려쳤다. 

  대지가 갈라졌다. 약한 지진에 가까운 흔들림과 충격파 속에서 아이트라는 균형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루시를 향해 보이지 않는 활을 겨냥했다. 보이지 않는 시위를 놓자 거센 바람과 함께 일한의 충격파를 웃도는 파동이 일었다. 

  바람의 화살은 방패에 닿았고 루시는 그대로 날아가 성벽을 무너뜨렸다. 일한은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대검을 휘둘렀다. 

  풍압만으로 몸을 흔들리게 할 정도로 파괴적이다. 슬쩍 대검이 휘둘러진 궤도에 시선을 갖다 대자 그대로 성벽이 잘려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장난 아닌데? 언제 이렇게 컸지?’

  그의 공격 궤도를 피한 순간 루시가 온 힘을 다해 창을 집어던졌다. 창을 던지기 위해 디뎠던 땅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고 무너졌던 성벽은 단지 창을 던진 충격으로 더 박살났다. 

  그들의 연계는 환상적이다. 아이트라는 루시의 창을 피할 수 없었다. 그녀는 죽음을 직감했다. 허나 날아오던 창이 느려졌다. 그 순간 몸을 피할 수 있었고 다시금 빨라진 창은 외성의 벽을 완전히 뚫고 순식간에 저 멀리 날아갔다. 투구를 쓴 루시의 고개가 까닥거렸다. 그녀는 다시 나타난 창을 붙잡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한이 아이트라와 격전을 벌이는 중 자신을 방해한 이를 찾던 루시는 초췌한 얼굴로 성벽에 걸터앉아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검은 머리와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 높게 선 코, 호밀색 눈동자가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투구 아래에서 씩 웃었다.

  “너구나?”

  루시가 도발적인 자세로 윈터펠을 향해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윈터펠은 두 번째 카로스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이트라가 일한을 막는 동안 내성에서 쏟아지는 병사들을 뚫고 전진하고 있었다. 도움을 얻긴 힘들어 보였다. 

  “재수 없으면 년 단위로 누워 있겠군.”

  그가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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