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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온갖 의뢰와 잡일 따위를 도맡아 하는 조직의 통칭, 길드. 바로 여기에도 하나의 길드가 있다. 그 이름은, 어스. 매일같이 적자에 시달리는 길드의 상황으로 인해, 간부들은 골머리를 썩히고 있지만, 길드 마스터의 상태가?! 길드 어스에 어서 오세요!

[퓨전,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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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달빛의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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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갓카[anileonhart]
조회 1588    추천 0   덧글 0    / 2019.01.12 13:39:51


8화.달빛의 여운

 "저… 로리먼트……, 나……."
 "아악! 이게 뭐야! 칼질을 할 때는 베이지 않게 손을 고양이처럼 오므리고 했어야지!"
 카로스가 슬쩍 왼손을 내밀자, 로리먼트는 깜짝 놀라며 물러섰다. 설마하니 식칼에 베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허나 카로스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마지막으로 직접 요리하기 위해 식칼을 잡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떠오르지도 않을 정도로 아득한 옛날 일이었다.
 하긴, 지금까지 컵라면과 편의점 도시락으로 연명해온 저녁 식사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치료해줄게. 어디보자……."
 "…아얏!"
 쓰라린 건 둘째치더라도, 베인 상처는 그저 약간 피가 베어나온 정도였다. 이 정도의 작은 상처는 지팡이가 없어도 치료가 가능했다.
 로리먼트는 자신만만하게 주문을 외우며 카로스의 손을 붙잡았다.
 베인 상처에 녹색 빛이 스며들었지만, 왜인지 모르겠지만 상처가 아물기 전에 빛은 소리없이 사그라들었다.
 이 상황에 의심가는 건 딱 하나였다.
 "…피곤해서 그런가……. 마력 고갈인가봐. 꽉 누르고 있어!"
 이런 분야에서는 전문가인 로리먼트의 말에 따라 상처를 꽉 누르고 있자, 저 멀리서 가방을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찾았다! 하는 말과 함께 로리먼트가 무언가를 꺼내왔다.
 '응급처치 도구 상자, 역시 이런걸 항상 들고 다니구나. 역시 로리먼트야…….'
 그런 생각을 하며 카로스는 멍하니 손을 내밀고 있었다.
 본래라면 마술로 치료했을테지만, 로리먼트도 많이 피곤하니 어쩔 수 없다.
 상처를 살펴보던 로리먼트는 정성스럽게 상처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는 조심스럽게 반창고를 한 장 붙여주었다.
 무심코 고개를 내려보자, 로리먼트의 얼굴이 가까웠다. 조금만 더 있으면 맞닿을 정도로 로리먼트는 지근거리에 있었다.
 정성스럽게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주는 로리먼트를 보며, 카로스는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꼈다.
 '긴장해서인가….'
 "다 됐어."
 하품을 하며 로리먼트가 일어선다.
 "…너, 한손 검은 잘 쓰면서 이런 작은 식칼은 못 다루는 거야?"
 그렇게 농담조로 말하며, 로리먼트는 쿡쿡 웃었다.
 "식칼도 만만하게 볼 건 아니구나……. 하하……."
 식칼, 조그맣지만 확실히 그 날은 살아있다. 애초에 한손 검과는 쓰임새가 다르지만─이렇게 베여버렸으니 그 부분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할게. 그냥 거기 앉아있어."
 하지만 로리먼트에게만 모든 걸 맡기기에는 약간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는 조금 미안한데……."
 그러자 무엇이 좋을까~라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던 로리먼트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행주를 던져주며 말했다.
 "그럼 거기 책상이라도 좀 닦아놔."
 카로스는 로리먼트가 던진 행주를 척하고 멋들어지게 받아든다.
 "맡겨만 줘."
 적어도 책상을 닦는 일은 손을 베거나 하진 않을테니까, 로리먼트는 안심하고 재료 손질을 계속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텅 비어있던 책상에 갖가지 요리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많이 지쳤을테니까… 자!"
 얼마 후, 카로스의 책상에는 매일 똑같은 맛이던 컵라면과 편의점 도시락 대신 오랜만에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나날이 요리 실력이 늘어나는 거 같아……."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싸한 것이 아니라 맛도 썩 괜찮아서, 어디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정신없이 젓가락질을 하는 카로스를, 로리먼트는 뿌듯해하며 바라보았다.
 '입에 맞아서 다행이네…….'
 혹시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떨까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카로스의 모습을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카로스에게 자신이 만든 요리를 내준 적도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로리먼트의 실력은 더욱 성장해서 어지간한 요리는 혼자 거뜬히 해낼 정도로 늘어났다.
 오늘 차려준 요리 레시피들은 미리 생각해둔 것이었다.
 매일같이 똑같은 식사만 할 카로스를 위해 영양이 듬뿍 들어가도록 설계했고, 다행히 카로스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먹고 있다.
 로리먼트는 그런 카로스를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다 뒤늦게 젓가락을 집었다.

 * * *

 "휴우… 배부르다. 설거지는 내가 할테니 잠깐 쉬고 있어."
 피곤한 듯 쇼파에 엎어져있는 로리먼트를 보며, 카로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거지 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시계를 보니 벌써 막차가 끊길 무렵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로리먼트, 어떻게 할까? 너무 늦었는데 이만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로리먼트는 잠깐 졸았던 듯 고개를 꾸벅숙이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시계를 보며 하품을 하며, 로리먼트는 쇼파에 기대어 몸을 일으켰다.
 "…흐아아……. 벌써 10시 경이네. 슬슬 출발해봐야겠어……."
 그렇게 일어선 로리먼트는 어쩐지 비틀비틀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걸었다. 아무래도 상당한 피로가 쌓인 모양이었다.
 "오늘밤은 많이 늦었고 너도 그 상태 그대로 보냈다가는 혼자 쓰러질 거 같으니까, 데려다줄게."
 자고 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아마 여러모로 힘들 것이라고 판단하고, 카로스는 로리먼트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을 선택했다.
 양심에 찔리는 것도 있었을 뿐더러, 로리먼트는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와 손수 저녁 식사까지 차려주었다. 이 정도도 못해줄 카로스가 아니었다.
 게다가, 밤길은 위험하다. 그런 곳에 로리먼트를 혼자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응, 고마워……."
 저녁 식사로 조금이나마 몸이 회복됐는지, 로리먼트는 미스틸테인을 꺼내들었다.
 다른 용도가 아니라, 지팡이로써의 용도로 쓰기 위해서─.
 지팡이에 힘겹게 기대어 한 걸음씩 내새우며, 로리먼트는 찌뿌둥한 허리를 쭉 피며 기지개를 뻗었다.
 날시는 싸늘하다. 가벼운 차림으로 입었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이다.
 카로스는 대충 후드집업을 챙겨입고, 로리먼트와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어때? 카로스, 길드에 온 소감은?"
 현관문을 지나 주택가를 지나던 와중, 불쑥 로리먼트가 물어왔다.
 어떠하냐니, 솔직히 너무 많은 정보를 한 번에 목격해버려 아직 다 받아들이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저 어스는, 자신이 기억하던 모습과는 정 반대로 변화해버렸고, 그 상황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 모양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로리먼트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아니었겠지만, 카로스의 소감은 그러했다.
 애초에, 너무나 바뀐 길드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괜히 이런 저런 말을 해 봤자 역으로 족쇄가 될 가능성도 있었기에 카로스는 말을 아꼈다.
 싸늘한 밤바람이 불어오고, 로리먼트가 추운 듯 옷깃을 꽉 움켜쥔다.
 하긴, 로리먼트는 그저 얇은 원피스 차림이었다.
 카로스는 조용히 후드를 벗어 로리먼트에게 덮어주었다.
 "엑? 괜찮은거야? 춥지 않아?"
 "난 괜찮아. 집도 가까운 편이고……."
 추위를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카로스는 로리먼트와 실없는 잡담을 하며 밤길을 걸었다.
 어스에서 있었던 이야기들, 아련하게 남은 추억들, 그리고 싸웠던 일들 모두가, 지금은 머나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떠나있던 와중에도, 어스는 존재했으며 아직 살아서 숨쉬고 있다.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로리먼트의 미소를 보는 것도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얼마나 갔을까, 저 멀리 문이신 역이 보인다. 황급히 달려가서 확인해보니, 아직 막차는 남아있었다.
 이 으스스한 밤길에 로리먼트를 혼자 보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마음같아서는 끝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이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만다.
 "…조심해서 돌아가."
 "으응……, 고마워. 카카, 나 먼저 가볼게~."
 하품을 쉬며 지하철에 올라타는 로리먼트를 보고나서야, 카로스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조심해서 가."
 이미 지하철의 문은 닫혀서 소리는 들리지 않을 테지만, 로리먼트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마냥 지팡이에 걸쳐 축 늘어진 채 손을 흔들었다.
 지팡이를 짚은 채 기둥에 슬쩍 기대어 서는 로리먼트를 보며, 카로스도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었다.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에, 카로스가 느끼는 피로감 또한 상당했다. 그저 하루 빨리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쓰러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다시, 로리먼트와 걸었던 밤길을 혼자 걸어간다.
 "어?"
 밤길을 걷던 도중에 바라본 초승달은 오늘따라 야위어보였다.
 아마 자신의 상황도 비슷할까, 길드에서 자신을 기억해주는 이들도 얼마 되지 않는 지금, 길드에서 카로스의 위치도 다른 간부들에 비할 바는 못될 것이다.
 길드를 떠난 2년간의 공백, 자신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그저, 먹고 자며, 이따금 떠오르는 트라우마에 괴로워했을 뿐이다.
 무의미한 시간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혼자 괴로워하며 현실에서 도피해왔을 뿐이다.
 게임 속으로─허나 그 게임도 이제는 사라졌다. 지금부터는 무엇을 하면 좋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한없이 공허한 느낌이 가슴에 몰려온다.
 그걸 잊기 위해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쉽사리 잊을 수만은 없었다.
 이 손으로 지켜내지 못했던 길드원들, 그리고 과거의 트라우마, 그에 따른 여러 후유증들─.
 그 모든 것들이, 카로스를 스쳐가는 모든 것들이 카로스를 옥죄어온다.
 오늘처럼 로리먼트를 따라 다시 어스로 향한다면, 자신은 그것과 마주해야만 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마주치고, 또 싸워야만 한다.
 솔직히, 무서웠다. 그것들과 다시 대면하는 것이 겁이 났다.
 과거에 겪었던 길드 전쟁과 지켜내지 못한 길드원들은 잊을만 하면 꿈에 나와 카로스를 연신 괴롭혀댄다.
 지켜내지 못한 현실에 절규하며, 또 스스로를 증오하며, 자괴감과 열등감에 시달리며─매일 밤을 지새웠다.
 때론 눈물도 흘렸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조용히, 방에 틀어박혀서 홀로 훌쩍였던 때도 있었다.
 두렵다─.
 끝없는 어둠이 내려앉은 카로스의 가슴에서, 오직 그 말만이 윤곽을 드러내었다.
 다시 길드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
 그것이 무서워서, 길드에서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그 무거운 책임감에,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절망하며 길드를 버리고 뛰쳐나온 몸이다.
 이제와서, 길드에 돌아갈 수 있을까?
 길드에 돌아간다면, 환영해주는 이가 있을까?
 길드원들을 져버리고, 모든 책임감을 져버리고, 죽어나간 길드원들을 등지고 홀로 도망가버린 이 자신을─모두는 용서해줄까?
 ─그러나 자신을 찾아와준 로리먼트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아직도 병실에 누워있는 앨리스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그 트라우마와 다시 마주해야만 한다.
 설령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라도, 지금보다는 나아질거라고 생각한다.
 길드 마스터로써의 책임감, 그리고 길드 '어스'를 위해,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카로스는 예전에 길드에서 활동했던 추억이 눈앞에 스쳐가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억들─. 그저 추억이 되어버린, 그 시절의 일들─.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
 그 중 후자는, 트라우마가 되어 카로스에게 후유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은, 무척이나 멍청한 짓이다.
 자신이 그렇게 혼자 괴로워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간다. 그에 뒤쳐지는 건 다름 아닌 자신이다.
 머릿 속으로는 확실하게 그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다만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은, 별개의 문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언제까지고 도망치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오히려 이 기회에, 그 트라우마를 부숴주겠다고 카로스는 맹세했다.
 로리먼트가 찾아와줘서 다행이었다. 로리먼트 덕분에, 자신은 과거와 다시 마주할 수 있었고, 자신을 옥죄이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몰라보도록 성장하고, 또 변해버린 길드 어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부재중일 때도, 시간은 흘러가고 또 흘러가 어스는 그런 형태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가지 못했던 건, 자신이었다.
 원인은 알고 있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는 해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카로스 자신이다. 이 얼마나 우둔한 행위였던가.
 희미하게 빛나는 초승달을 보며, 카로스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내일부터는 제대로 길드에 나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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