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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하나가 아니다. 옳은 정의란 없다. 서로의 정의를 위해 타인을 짓밟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이기적인 이들의 이야기.

[판타지,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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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93    추천 0   덧글 0    / 2019.01.12 18:50:34
  우시르는 성벽 아래로 보이는 참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칼리모스의 주술에 걸려 미라가 되어버린 병사들과 말, 그들의 시체를 짓밟으며 밀고 들어오는 자담의 대군, 그걸 막기 위해 내성에서 쏟아지는 적 병력의 모습은 이성 없이 폭력이란 본능에 몸을 맡긴 짐승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사이사이 보이는 지휘관들의 격한 전투는 전쟁의 참혹함을 뒤엎고 아름다움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우시르는 멀리 보이는 일한의 공격궤도에 맞춰 몸을 눕혔다. 곧바로 일한이 휘두른 대검의 궤적을 따라 막대한 오러를 품은 충격파가 날아왔다. 거인이 칼을 쥐고 벤 것처럼 일한의 공격 궤도에 있는 모든 게 잘려나갔다. 우시르는 휘파람을 불렀다. 

  일한의 공격에 휩쓸린 병사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었다. 두꺼운 성벽은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감처럼 쉽게 잘려나갔다. 칼리모스의 주술진이 사라진 여파였다. 

  아이트라가 일한을 몰아붙이고 있지만 그게 한계였다. 일한의 몸을 덮은 갑옷은 아이트라의 보이지 않는 화살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우시르는 저 갑옷이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선 아이트라의 ‘균열의 조각’에 맞고도 멀쩡할 리가 없다. 

  ‘아마도 룬 갑옷이겠지…….’

  만약 정말로 룬 갑옷이라면 지금 일한의 힘은 저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룬은 균열의 조각과는 달리 공격적이지 않다. 균열의 조각이 가진 수많은 초월기와 압도적인 힘 대신 룬은 단순한 몇 가지만 사용자에게 쥐어준다. 그리고 그 단순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사용자의 초인의 힘을 엄청나게 증폭시켜주는 것이다.

  우시르는 끼어들까 망설였다. 지금 그가 아이트라에게 합류한다면 일한을 죽이진 못하더라도 행동불능으로 만들 수 있을 터였다. 허나 그러지 않았다. 그가 상대해야할 이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힘을 아껴야 한다. 우시르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입에 물고 있는 담배가 전부 타들어갔을 때 시체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우시르는 미간을 좁혔다. 기다리던 상대가 준비를 끝내고 도착했다. 그는 자신의 곁에 머무는 마나가 점차 줄어드는 걸 느꼈다. 그 마나들은 정수가 되어 칼리모스에게 힘을 보탰다. 

  마나 쟁탈전은 시작 되었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시체를 짓누르고 생겨난 주술진 위로 칼리모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허나 그건 우시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한쪽이라도 상태가 더 좋았다면 일방적으로 싸움이 끝날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시르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섰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하고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서로에게 마법과 주술을 난사하던 모든 마법사와 주술사가 당황하며 멀뚱멀뚱 서 있기 시작했다. 그들은 평범한 병사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영문을 몰라 당황하던 그들의 눈에 성벽에서 벌어지는 마나와 정수의 싸움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사와 주술사가 아닌 이상 성벽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느낄 수조차 없다.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싸움은 이미 시작된 뒤였다. 

  우시르는 마법사의 모든 마나를 강탈하고도 모자라 말도 안 되는 범위에서 마나를 끌어왔다. 반대로 칼리모스는 주술사의 모든 정수를 빼앗고 그 힘을 통해 우시르의 마나를 좀먹기 시작했다. 

  우시르의 거대한 마나를 칼리모스가 약탈해 정수로 바꿔가고 다시 우시르가 정수를 마나로 변환해 되찾기를 반복한다. 그 모습은 전장의 모든 마법사와 주술사들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서로의 자원을 약탈하고 강탈하는 와중에 칼리모스가 먼저 움직였다. 

  칼리모스는 성벽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의 손이 닿은 외성벽 전체에 주술진이 나타났다. 동시에 성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시르는 불리한 싸움에서 선공까지 뺏기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성 밖으로 뛰어내렸다. 머무는 건 위험하다. 칼리모스는 성벽 전체를 자신의 수족으로 연성했다.

  외성의 성벽 전체가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이 거대한 뱀이 고개를 드는 것과 같아서 한참 서로를 향해 살의를 드러내던 모든 이들의 시선을 모았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성벽이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지휘관이라 불리는 이들만이 서로의 힘을 겨루는 걸 멈추지 않았다. 

  몸을 일으킨 성벽은 칼리모스의 의지에 따라 분해와 재구축을 반복했다. 이윽고 성벽 자체가 거대한 골렘이 되어 병사들을 짓밟으며 대지에 뿌리를 내리듯 발을 디뎠다. 골렘은 칼리모스의 의지에 따라 우시르를 향해 거대한 손을 내려쳤다. 

  굉음과 함께 땅이 울렸다. 일한이 만들어낸 약한 지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한 지진이 일었다. 칼리모스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닿은 곳에서부터 주술진이 생겨났다. 그 안에서 미리 각인해두었던 용암을 끄집어낸 칼리모스는 그것을 그대로 전장에 쏟기 시작했다. 

  용암은 급속도로 전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퍼지는 용암은 작은 물결로 시작해 파도가 되어 병사들을 삼켰다. 
  우시르는 골렘이 만들어낸 먼지와 공기를 자신에게 끌어왔다. 먼지에 마나를 덧씌운 뒤 그것들을 전부 작은 쇳조각으로 바꾸고 공기에 태워 칼리모스를 향해 날렸다. 그는 칼리모스가 흘려보낸 용암을 밑에서부터 주술진까지 전부 얼려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칼리모스는 다가오는 쇳조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 바로 앞에서 나타난 주술진을 통해 쇳조각은 완전히 분해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순간 칼리모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골렘이 말을 듣지 않았다. 

  ‘운석을 떨어뜨릴 때부터 굉장하다는 건 알았지만, 내 골렘의 명령권까지 가져가다니…….’ 

  마나와 정수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의 창조물을 빼앗으려할 줄은 몰랐다. 수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몸체의 통제권을 절반 이하로 갖게 된 칼리모스는 혀를 찼다. 이렇게 된 이상 우시르가 각인을 풀고 골렘의 명령권을 완벽하게 가져가는 걸 막아야 했다. 그는 골렘의 몸 곳곳에 각인을 박아 넣었다. 그러고는 허공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우시르가 손을 뻗고 있는 칼리모스를 짓눌러버리기 위해 공기의 벽으로 그를 압박했을 때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주술진이 나타났다. 우시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규모의 술식에 식겁했다. 그는 주술진을 깨기 위해 진을 이루고 있는 정수를 건드렸지만 칼리모스가 시간을 들인 만큼 쉽지 않았다. 잠깐의 방심 사이 칼리모스의 주술진이 완성됐다. 

  그리고 세계가 암흑에 둘러싸였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아주 기이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은 종말이 다가온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칼리모스의 주술진 아래로 모든 빛이 사라져 순식간에 어둠에 뒤덮인 울돌레이 성 일대의 모습은 충분히 그러한 오해를 사고도 남았다. 

  느닷없이 빛 한 점 없는 어둠이 깔리자 지휘관들은 당황했고 다른 모든 병력은 공황에 휩싸였다. 

  아이트라와 일한, 루시는 당황하면서도 자신의 오러를 빛으로 바꿔 주변을 비췄다. 어둠 속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낸 이는 표적이 되기 십상이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윈터펠은 어둠 속에서 오러에 둘러싸여 빛을 내뿜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 남은 단 세 개의 빛줄기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고정되었을 때 칼리모스의 주술진이 눈부신 빛을 발했다.  

  태양의 빛과 열이 주술진에 닿아 분해된다. 그것들은 주술진을 통과하며 정수에 힘입어 형체를 가진 빛과 불의 창이 되었다. 그리고 수 미터 길이의 창들은 ‘폭발’이라는 주술사의 각인을 새기고 어둠이 깔린 울돌레이 전역에 쏟아졌다.

  우시르는 마나를 마법이라는 힘으로 바꾸기 위한 최소조건인 영창을 파기하고도 위력적인 마법을 난사할 정도의 마법사다. 그와 비슷한 수준의 마법사는 강대한 칠왕국의 이름 있는 마법사에게서 찾을 수 있다. 대제국들 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무리 마법과 상극인 주술이라 한들 우시르라는 사내를 힘으로 찍어 누를 이는 많지 않다는 소리다. 그 또한 그에 대해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헌데 칼리모스란 남자는 우시르의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우시르가 이를 악물었다. 단순한 주술과 마법의 상극 때문에 밀리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무슨 짓을 하든 칼리모스의 실력이 위다. 우시르는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칼리모스의 정수 다루는 기술에 감탄하는 자신이 어처구니없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눈을 감았다. 우시르의 주위로 수십 겹의 마나 방어막이 펼쳐졌다. 

  ‘이 몸도 수명이 길진 않겠군. 대체품을 빨리 찾아야겠어.’

  창이 떨어지며 그의 방어막을 하나하나 깨부수기 시작했다. 우시르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으고 영창을 시작했다. 
  칼리모스의 빛과 불의 창은 떨어질 때마다 대규모 폭발을 일으켰다. 빛의 창이 떨어진 곳은 주변이 초토화됨과 동시에 병사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불의 창이 떨어진 곳은 살려달라는 비명과 사람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지옥으로 바뀌었다. 두 개가 같은 곳으로 떨어졌을 때 일으킨 폭발은 반경 수 미터의 땅을 날려버렸다. 그곳에 남은 건 잿더미뿐이었다. 

  칼리모스는 골렘의 어깨 위에서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과 그 주변에 주술진을 가득 채웠다. 그가 하늘에 펼쳐둔 건 강력한 위력을 가진 주술이지만 피아를 가릴 정도로 여유가 있던 상황이 아니었다. 저 불의 창과 빛의 창은 칼리모스의 몸도 찢어놓을 수 있었다. 

  주술각인은 효과적으로 그의 몸에 떨어지는 창을 다시 분해하고 재구축했다. 칼리모스는 토할 것 같았다. 이미 지친 상태에서 너무 많은 공정 과정을 건너뛰고 이 주술, ‘하늘로부터의 종언’을 사용했다. 애초에 완벽하게 펼친 게 아니기에 앞으로 남은 지속시간은 길어야 3분일 것이다. 그가 창백하게 변한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팔이 덜덜 떨리고 토악질이 밀려왔다. 

  ‘3, 4공정을 건너뛴 게 타격이 크군. 5공정까지 건너뛰었으면 앉아 있지도 못했겠어.’

  칼리모스는 더 버티지 못하고 골렘의 어깨에 토했다. 배를 채운 게 없었기에 위액만 잔뜩 흘러나왔다. 주술의 다섯 가지 공정 중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두 개를 건너뛰면서까지 큰 기술을 사용했기에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칼리모스는 소매로 입을 닦았다. 
 
  ‘쉴 시간이 많지 않아. 아까부터 마나의 흐름이 안정적이야. 한 곳으로 모이지도 않고 부자연스럽게 퍼지지도 않았어. 저 정도 마법사가 아무런 반격도 없이 조용히 있을 리가 없지. 영창까지 해가면서 큰 걸 준비하는 모양인데 나도 다음 걸 준비해야지.’

  칼리모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친 몸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정수를 모으기 시작했다. 
  
*

  루시는 몸을 웅크렸다. 그녀는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는 떨어질 때마다 오러의 막을 휘청이게 하는 주술의 위력에 혀를 내둘렀다. 제대로 된 마법과 주술의 격돌을 본 건 오랜만이었다. 문제는 너무 제대로 된 대결이라 그 위력에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녀는 자신과 싸우고 있던 윈터펠을 바라보았다. 

  일격필살의 투창을 몇 번이나 느리게 만들어 가볍게 피하던 사내는 애처로울 정도로 볼품없이 주술사의 창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자신에게 직격하는 창만은 눈에 띄게 느려진다. 그리고 쉽게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다. 루시는 혀를 송곳니와 어금니 사이에 넣고 깨물었다. 

  ‘처음에는 반격이나 반발력 뭐 그런 건 줄 알았는데 부정시공이라…….’

  그녀가 아랫입술을 앞니로 살짝 깨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서로 공격하는 건 불가능하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도 된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루시는 일한과 아이트라를 바라보았다. 

  아이트라는 루시와 마찬가지로 오러의 막을 펼쳐둔 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헌데 일한은 창의 꿰뚫는 힘과 폭발을 맨몸으로 받으며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의 틈이 보이지 않는 순백의 갑옷은 오러의 빛을 반사하며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루시는 질린다는 투로 고개를 내저었다. 

  모두가 몸을 피하는 와중에도 일한만은 어떠한 방어적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대검을 어깨에 올려두고 고개를 들어 빛나는 주술진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여유롭게 주술진을 쳐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수많은 전장을 제국의 검으로서 참가했지만 이런 격돌은 처음 봤습니다. 아마 루시는 전장을 좋아해서 본 적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기적과도 같은 힘. 마법과 주술의 어처구니없는 위력의 힘은 감히 초월기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일한은 어깨에서 대검을 내리며 고쳐 잡았다. 그는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인 아이트라에게 다가갔다. 아이트라는 일한의 방어력에 진절머리가 났다. 아무리 공격하고 틈을 노려도 저 갑옷은 뚫리지 않는다. 상식적인 선에서의 단단함이 아니다. 그건 그녀의 오러 막을 휘청이게 하는 주술사의 강력한 공격도 그의 갑옷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그녀가 제국 기사로 있을 때 평기사였던 일한의 방어력은 그럭저럭 봐줄만한 정도였다. 헌데 지금은 그녀의 공격이 전혀 닿질 않는다. 그동안 자신을 갈고 닦는 걸 게을리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일한이 너무나도 강해졌을 뿐이다. 아이트라는 그가 거쳐 온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녀가 말했다. 

  “남들이 새로운 힘, 새로운 무기를 찾아 헤맬 때 우직하게 방어 하나만 판 덕을 톡톡히 보는구나, 일한.”

  “선배님은 조금 힘들어 보이시는군요.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투구에 가려져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트라는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모든 걸 잃은 사람마냥 공허한 얼굴을 하고 있을 테다. 그의 갑옷을 오러가 감싸기 시작했다. 저 붉은 농도를 보건데 그는 이미 예전의 평기사 수준을 넘어섰다. 아이트라는 일한이 상급기사가 되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너 언제 그렇게 강해진 거니? 평기사는 진즉에 넘어선 거 같은데.”

  일한이 두 손으로 대검을 들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오러가 대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 위압적인 모습에 아이트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미 30년 전에 선배님과 같은 상급기사였습니다.”

  “……괴물 자식아. 너무 빠르게 컸잖아. 그리고 너 대체 그 갑옷은 얼마나 오래된 룬으로 만든 거야?”

  “글쎄요. 저는 룬 장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알스트레일 사령관님께서 정말 오래 전 것이라 말씀해주셨습니다.”

  “철신을 거절하고 백수가 될 거라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시더니, 아직까지 계실 줄이야.”

  “상식적으로 다른 분들이 보내줄 리 없지 않습니까.”

  “하기야……. 아무튼 오랜만에 그 잘생긴 얼굴이나 한 번 보자.”

  “답지 않게 시간을 끄시는군요.”

  “이런! 걸렸네?”

  일한이 대검을 높게 쳐들었다. 아이트라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일한이 대검을 내리쳤다. 

  대검과 그것에 담긴 오러가 아이트라의 머리를 날려버리기 직전 우시르의 영창이 끝났다. 길고 긴 영창 끝에 펼쳐진 마법은 단순하면서 광범위했고, 강력했다. 

  엄청난 힘과 속도로 떨어지던 대검은 그대로 일한 본인을 향했다. 칼리모스의 떨어지던 창들도 주술진을 향해 역행했다. 

  오러를 두르고 있던 아이트라와 루시는 본인들의 힘에 찌그러지는 걸 느꼈다. 그들은 바로 오러를 풀었다. 윈터펠도 자기 자신의 시간이 느려진다는 걸 깨닫고 놀라 초월기 사용을 멈췄다. 

  역행한 창들이 칼리모스의 주술진을 깨부쉈을 때 울돌레이 일대는 다시금 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우시르는 두 번째 마법을 사용했다. 그 순간 칼리모스와 그의 골렘 그리고 우시르의 모습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 순간, 채 당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병사들을 제외한 지휘관 급 인물들은 서로의 적을 향해 무기를 들이밀었다. 

  칼리모스는 우시르의 마법이 ‘반전’, ‘역행’, ‘중력’, ‘반발’을 포함한 열 가지 이상의 조합이라는 걸 깨달았다. 만약 깨닫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땅에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주술진을 발판 삼아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울돌레이 성이 새끼손톱보다 작게 보인다. 얼마나 멀리 튕겨진 것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미리 주술진을 두르고 방어에 전념하고 있지 않았다면 튕겨져 나온 속도 그대로 갈가리 찢겼을 것이다. 그는 순수하게 우시르의 능력을 감탄했다.

  ‘나 못지않게 지쳤을 텐데 이런 광범위한 마법의 사용이라……. 그리고 나 하나한테만 집중적인 중력 공격이라니!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말이 안 나오는군.’

  그가 발밑을 바라보았다. 미처 대응하지 못한 골렘은 이미 가루가 되어 흩어진 지 오래였다. 칼리모스는 출렁이는 마나의 파장에 시선을 옮겼다. 우시르가 중얼거리며 하늘을 걸어오고 있었다. 

  칼리모스는 발판을 조정해 우시르와 시선을 맞췄다. 여전히 그를 밀어내려는 중력을 최대한 분해하고 재구축하며 우시르의 등 뒤로 하늘이 찢어지는 모습에 집중했다. 그와 동시에 우시르의 곁에 머물던 모든 마나가 허공의 새까만 균열로 사라져갔다. 칼리모스는 손뼉을 쳤다. 그의 두 손을 필두로 하늘 곳곳에 주술진이 나타났다. 그 뒤로 수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시르의 균열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은 마나가 아니었다. 

  ‘저건……, 대체 뭐지?’

  칼리모스는 미지의 힘에 경계했다. 그는 미닫이문을 여는 것처럼 붙이고 있던 손을 뗐다. 주술진 뒤에서 나타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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