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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하나가 아니다. 옳은 정의란 없다. 서로의 정의를 위해 타인을 짓밟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이기적인 이들의 이야기.

[판타지,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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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더미 - Chapter. 겨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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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로스는 자신의 고속이동 초월기 ‘전투질주’를 써봤다. 빈혈처럼 머리가 띵하다. 초월기가 써지지 않는다. 두 번째 카로스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는 건 내성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는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칼리모스의 주술이 다리 한쪽을 날려버렸다. 그가 혀를 찼다. 초월기 ‘전투속행’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복제는 현재 하나뿐이다. 그는 카스트로를 향해 말했다. 

  “이봐, 나 좀 죽여줘.”

  카로스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동시에 두 다리가 멀쩡한 카로스가 시체 속에서 시가를 챙겼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처음 외성을 뛰어다닐 때 눈여겨보았던 화려한 궁이 눈앞에 있었다. 카로스가 시가를 물며 일어섰다. 그림자에 숨어 있던 카스트로는 칼리모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 있었다. 카로스가 카스트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림자로 다시 안 들어가? 기습엔 방심과 선빵이 최고야.”

  카스트로가 고개를 내저었다. 

  “방금 전 주술사가 이 전장의 모든 그림자를 공격했다.”

  시가에 불을 붙이던 카로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돼?”

  “나도 방금 알았다. 지식이 늘었군.”

  “하여튼 주술사, 마법사 이런 애들은 제국 수준에서 전쟁 참가 못하게 막아야 한다니까.”

  “그건 제국이라도 함부로 건들 수 없을 걸. 아주라와 콸테이락들을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은.”

  카로스가 화살에 맞아 움푹 파인 투구를 벗어던졌다. 그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았다. 시가 연기가 짙게 피어올랐다. 카로스가 말했다. 

  “후. 어딜 가나 높으신 분들이 문제로군.”

  “저 마법사와 주술사의 싸움이 길어질수록 더 복잡해질 거다. 빨리 끝내야해.”

  “전쟁의 진선미는 힘, 승리, 빠른 종전이지. 그러기 위해선 적 우두머리의 항복이나 머리가 필요하고.”

  카로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카스트로는 카로스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들은 목적지였던 울돌레이 성의 한가운데 세워진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향했다. 가는 길에 수많은 적병을 마주했지만 그들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카스트로의 단검 앞에 목숨을 잃었다.
 
  기척도 소리도 없이 적의 목을 베어내는 카스트로를 보며 카로스는 휘파람을 불었다. 궁전의 문을 눈앞에 뒀을 때 두 남자는 멈췄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카로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걸렸네. 나 때문인가?”

  카스트로가 무장을 점검하며 답했다.

  “초월기 같은데 흔적이 없군. 아무래도 균열의 조각이나 룬의 힘 같다. 누구 때문이라고 책임을 지우는 건 옳지 않아. 내가 혼자 왔어도 걸렸을 거다.”

  카로스가 죽은 병사의 손에서 방패와 창을 빼앗았다. 그는 머리를 보호할 만한 걸 찾았다. 마땅히 쓸 투구가 없자 어깨를 풀며 궁전의 입구까지 걸어갔다.

  “지금 기습해봐야 씨알도 안 먹히겠지?”

  “그렇다면 당당하게 나아가는 게 답이지.”

  “당신 암살자 아니었어? 이렇게 당당해도 돼?”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지. 별 거 있나?”

  카로스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해보였다. 카스트로는 복면에 감춰진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카로스가 궁전의 거대한 문을 열었다.

  카스트로는 불의의 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기다리던 공격은 없었다. 문을 열었을 때 궁의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그들을 반겼다. 그리고 그 빛줄기 끝에서 휘황찬란한 왕좌와 그곳에 앉아 있는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을 가득 채운 주름은 그가 지내온 세월이 만만찮았음을 말해준다. 육체는 노쇠하였으나 그 정신은 여느 젊은이들 못지않게 맑고 깨끗했다. 그런 노년의 영주에게서 느껴지는 기백 역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카로스는 영주의 양옆으로 서 있는 두 기사에게 눈길을 돌렸다.

  영주를 기준으로 왼쪽에 서 있는 기사는 새까만 갑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칠흑빛 방패와 묵직해 보이는 망치는 빛을 받아 반짝이는 중에도 어둠에 녹아들어 잘 보이지 않았다. 우측의 사내는 잿빛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투구는 겨드랑이에 끼우고 있었다. 남자다운 투박함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선 어떠한 힘도 느낄 수 없었다. 

  ‘일단 삼기 투사는 아니군.’

  카로스와 카스트로를 발견한 잿빛 갑옷의 기사가 투구를 썼다. 그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고 세워두었던 도끼를 들었다. 그러자 두 기사의 몸에서 붉은 오러가 샘솟기 시작했다.

  오러의 농도가 한눈에 보기에도 아이트라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카로스는 영주의 목을 따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영주가 투기로 몸을 감싸며 왕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카스트로의 모습이 사라졌다. 동시에 궁전 내부는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뒤덮였다. 

  어둠에 섞여 영주의 등 뒤로 다가간 카스트로는 그의 감이 보내오는 신호에 재빨리 몸을 뺐다. 곧바로 어둠이 걷히고 궁전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카스트로의 몸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내 초월기가 바로 지워지다니…….’

  카스트로는 영주와 기사들을 유심히 살폈다. 문득 영주의 손에 들린 투박하게 생긴 칼 한 자루가 눈에 띄었다. 카스트로는 깊게 들이마신 숨을 내쉬었다. 

  ‘균열의 조각이군. 당연히 기사들 중 하나가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걸 영주가 가지고 있을 줄이야.’

  카스트로는 혀를 차며 카로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가 작게 말했다.

  “상정 외의 전력이다. 저 두 놈도 미지수고. 발을 빼는 게 좋겠어.”

  카로스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가 심호흡했다.

  “그런데 쟤들이 보내줄 것 같지는 않은데.”

  땅을 박차고 뛰어나온 검은 기사는 카로스에게 방패채로 부딪쳤다. 그는 순간적으로 오러를 폭발하도록 벼렸다. 발로 차인 길가의 돌멩이처럼 날아간 카로스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엄청난 오러가 응집된 망치에 머리가 깨져 죽었다. 

  죽음은 순식간이었다. 기사의 속도와 힘에 놀랄 법도 했지만 카스트로는 당황하지 않았다. 카로스의 초월기를 알고 있었기에 카스트로는 잿빛 기사의 공격을 피하는데 집중했다. 

  시체를 뒤로하고 잿빛 기사에게 합류하려던 검은 기사는 초월기의 흔적이 느껴지자마자 뒤돌아 카로스의 몸뚱이를 내려쳤다.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검은 기사는 박살 난 바닥과 먼지를 뚫고 영주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카로스의 모습에 놀랐다. 그는 한 발 늦게 카로스를 쫓았다. 

  카로스는 들고 있던 창을 던졌다. 어중간한 초인의 힘을 쓰는 자라면 일격에 세, 네 명을 꿰뚫는 패기가 담긴 창이었다. 

  영주의 패기로는 카로스의 패기가 담긴 창을 쳐내도 상당한 부상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투기로는 카로스의 패기를 막아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주는 어렵지 않게 날아오는 창을 쳐냈다. 

  영주가 삼기라는 초인의 힘을 사용하는 이상 카로스의 공격에 피해를 입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건 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영주가 들고 있는 균열의 조각이 가진 초월기는 창에 담긴 카로스의 패기를 지웠다. 투기를 통해 강해진 육체에서 나온 속도만이 남겨진 평범한 창을 영주의 패기가 담긴 검이 쳐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패기는 그 특성상 언제나 같은 힘을 유지한다. 한 번 물체에 패기가 담기면 시전자가 손에서 그것을 놓더라도 당사자가 원하면 기력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상태가 최상이든 최악이든 언제나 사용자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위력을 품고 있다. 쉽게 말해 지쳐서 일어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사용하는 패기와 최상의 상태에서 확실한 적의를 갖고 적을 향해 사용하는 패기는 모든 면에서 차이가 없다

  또한 아무리 강력한 힘에 맞서더라도 패기는 투기처럼 뚫리거나 힘이 줄어들거나 하지 않는다. 아무리 심한 압박을 가해도 패기는 언제나 그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낸다. 패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건 오직 살기뿐이다. 

  이러한 특성 탓에 그 어떤 외압에도 삼기 사용자의 패기만은 굴하지 않는다. 그 어떤 초인의 힘보다 뛰어나진 않지만 막강한 저력을 가진 초인의 힘이 바로 패기다. 그리고 그건 곧 삼기 투사들의 자부심이었다. 

  헌데 그런 패기가 순간 사라지며 창이 튕겨나갔다. 당사자인 카로스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삼기 사용자인 카스트로 또한 순간적으로 넋을 놓았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금방 충격을 이겨냈다. 카로스는 검은 기사의 오러가 응집된 망치를 방패를 들어 막았다. 폭발과 함께 그의 몸은 수십 미터 밖으로 튕겨나갔다. 

  날아가며 자신이 던진 창을 바라본 카로스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창에는 패기가 담겨 있었다. 

  ‘뭐지? 지운 게 아니다?’

  카로스의 몸이 궁전의 기둥에 부딪쳤다. 기둥은 박살났고, 먼지구덩이 사이에서 그가 몸을 일으켰다. 

  엄청난 위력의 공격이었다. 카로스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찌그러진 방패와 넝마조각이 된 왼팔을 보며 혀를 찼다. 투기로 몸을 회복할 틈도 없이 검은 기사가 달려들었다. 카로스는 칼을 빼 맞섰다.

  성공적인 방어였음에도 무지막지한 위력의 망치는 카로스에게 정면 대결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는 망치의 머리를 최대한 피하며 칼을 망치자루에 갖다 댔다. 순간적으로 그의 팔이 망치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쳐졌다. 

  ‘이런 미친! 뭐가 이렇게 무겁……, 이 씨발! 설마!’ 

  채 회복되지 않은 왼팔로 방패를 집어던져 기사의 시야를 가린 카로스는 몸을 뒤로 뺐다. 그는 달려드는 검은 기사의 망치를 주시했다. 아무리 봐도 망치는 평범해보였다. 그런 게 카로스 정도의 삼기 투사에게 무겁다는 느낌을 줄 리 없다. 그가 인상을 썼다. 저건 ‘룬’이다. 

  카스트로는 잿빛 기사의 공격을 피하면서 카로스에게도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는 카로스가 느낀 것과 똑같은 걸 느꼈다. 카스트로는 설마하는 마음에 잿빛 기사의 칼에 자신의 칼을 부딪쳤다. 공격으로 전환할 거라 생각하지 못한 잿빛 기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강력한 오러가 칼을 밀어내는 게 느껴졌지만 무겁지는 않았다. 카스트로는 왼손에 든 단검으로 도끼를 밑에서부터 위로 쳐내려 했다. 하지만 도끼의 무게에 단검은 제자리에 멈춰서는 걸로 모자라 도끼날과 함께 어깨를 향해 떨어졌다. 

  ‘미친……. 이것도 룬이라고?’

  카스트로가 초월기를 사용해 어둠으로 몸을 바꿨다. 허나 영주의 초월기가 카스트로의 실체를 붙잡았다. 초월기는 제대로 써졌다. 허나 그의 실체는 그대로 남아 도끼날에 찍혔다. 투기가 버티는 사이 팔이 완전히 잘려나가기 전에 카스트로는 다급하게 몸을 빼냈다. 

  도끼날에 박혀 끊어지기 직전인 어깨에 투기를 집중했다. 혈관, 근육, 뼈, 신경이 연결되고 절단면에 살갗이 뒤덮인다. 그리고 부족한 피가 차오른다. 카스트로는 잿빛 기사의 공격을 피해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는 달려오는 기사의 뒤편, 옥좌에 서 있는 영주를 보며 이를 갈았다. 

  ‘초월기는 써졌다. 하지만 내 몸이 인간의 몸 그대로 남아 있어서 도끼에 찍혔다. 그런데 투기는 없애지 못했다. 왜지?’

  카스트로가 심호흡했다. 그는 잿빛 기사의 공격을 피하며 파고들었다. 초월기를 써 공격하려던 찰나 문득 의아함이 생겼다. 카로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살기의 특성으로 강화된 패기라면 충분히 룬으로 강화된 오러를 뚫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초월기를 사용한다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하지만 카스트로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는 파고든 상태로 몸을 틀어 기사를 지나쳤다. 영주를 향해 어둠을 묶은 다섯 개의 단검을 던지며 기사를 곁눈질했다. 

  이상했다. 오러의 농도로 봤을 때 만만찮은 전투감각이 있는 사내일 것이다. 검은 기사만큼 폭발적인 힘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카스트로를 밀어붙일 수 있는 강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부터 어딘지 엉성하게 틈이 생긴다. 공격해달라는 듯이. 그가 인상을 썼다. 그러곤 영주를 바라보았다. 

  영주가 단검을 쳐냈다. 단검에 담겨 있던 패기가 지워진 탓이다. 몇몇 단검은 날이 잘려나갔다. 하지만 묶여 있는 어둠은 그대로였다. 카스트로가 마치 고무줄을 잡아당기듯 단검에 묶인 어둠을 당겼다. 그에게 돌아온 다섯 개의 단검은 패기를 담고 있었다. 카스트로가 몸을 틀어 기사의 공격을 피했다.

  그는 어둠이 묶인 단검 다섯 개를 기사의 팔에 던졌다. 어둠은 밧줄처럼 팔에 감겼다. 카스트로는 어둠을 늘려 다섯 개의 단검을 땅에 박았다. 이어서 단검과 그게 박힌 땅을 어둠으로 침식했다. 단검은 더 깊숙이 박혀갔고, 어둠은 기사의 팔을 땅을 향해 잡아당겼다. 초월기의 힘이 대단했기에 기사는 점차 바닥을 향해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단검과 땅을 완전히 결합시켜 기사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을 때 그는 천천히 생각했다. 

  ‘이 상황임에도 충분히 내 초월기를 아까처럼 아무 힘도 못 쓰게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아니지. 못했다는 게 맞으려나? 다음 사용까지 시간이 필요한가보군. 저기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이 초월기 발동의 조건 같은 것일 테고. 그렇다면 다음 사용까지 얼마나 걸리지? 한 번에 전부 지울 수 있나? 확인해봐야겠군.’

  카스트로가 궁전 전체를 어둠으로 덮으며 영주를 향해 단검을 던졌다. 단검이 어깨에 박히기 직전 영주의 초월기가 발동했다. 궁전의 어둠이 지워지고, 잿빛 기사의 팔을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던 어둠도 사라졌다. 하지만 패기가 담긴 단검은 영주의 어깨를 꿰뚫고 지나갔다. 카스트로는 기사의 다리를 발로 차 균형을 흩트리며 몸을 피했다. 

  ‘빗나갔군. 그래도 다음엔 확실하게 목을 칠 수 있겠어.’ 

  그가 잿빛 기사를 무시한 채 영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깨가 꿰뚫려 팔이 덜렁거리는 영주의 모습은 어서 빨리 이 전쟁을 끝내자는 카스트로의 욕심을 부추겼다. 그 모습을 본 두 명의 기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스트로의 뒤를 노렸다. 

  카로스는 검은 기사의 등을 발로 차 넘어뜨렸다. 그는 깡통처럼 찌그러진 얼굴 절반에 투기를 집중했다. 그가 피를 닦으며 침을 뱉었다. 

  “어디서 한눈을 팔아?”

  검은 기사의 칠흑의 망치가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카로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잿빛 기사의 도끼가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카스트로는 등지고 있음에도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빛에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허나 그에게 어둠은 거북하고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빛보다 더 친숙했기에 아무런 장애 없이 영주의 목을 향해 사슬낫을 집어던졌다. 

  낫이 영주의 머리를 취할 것이라 예상했던 카스트로는 그것이 튕겨져 나오자 인상을 썼다. 눈을 감고 있는 터라 정확히 무슨 일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영주가 막은 게 아니었다. 빛이 줄어든다 판단한 그는 눈을 떴다. 

  영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영주가 있던 자리를 황금빛의 반원이 대신하고 있었다. 초월기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카스트로는 두 기사 중 한 명이 가진 ‘룬’의 초월기라 확신했다. 그가 이를 악물며 잿빛 기사를 향해 어둠에 묶은 단검을 집어던졌다. 

  ‘슬슬 짜증이 나는군!’

  단검은 기사의 견갑 사이를 파고들었다. 순간적으로 왼팔의 움직임을 방해받은 기사의 오른팔을 향해 사슬낫을 걸었다. 

  오러는 투기와 달리 육체 그 자체를 강화하는 게 아니다. 순수한 근력의 싸움으로 간다면 삼기 투사가 오러 투사에게 밀릴 일은 절대 없다. 카스트로는 사슬낫을 통해 묶인 잿빛 기사의 몸뚱이를 잡아당겼다. 기사의 견갑 사이에 박힌 단검은 끌려가는 순간까지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끌려오는 그를 향해 카스트로는 초월기를 사용했다. 

  어둠은 그의 손에서 한 개의 비수가 되었다. 그에 집약된 힘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단번에 승부를 내려한 카스트로는 기사의 몸에 비수를 밀어 넣었다. 

  비수가 심장에 닿았다는 느낌이 왔을 때 찔러 넣은 틈으로 빛이 쏟아졌다. 카스트로는 눈을 감으며 이를 악물었다. 

  ‘반격형 초월기……!’

  그는 초월기가 완성되기 전에 몸을 어둠으로 바꾸려 했다. 하지만 카로스를 압박하면서도 그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검은 기사가 망치를 들어 카스트로를 가리켰다. 망치가 은은한 빛을 내뿜었을 때 카로스는 검은 기사의 갑옷 틈으로 칼을 찔러 넣었다.

  룬의 초월기에 집중하는 찰나의 틈에 약해진 오러의 막을 뚫고 들어간 칼날은 검은 기사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팔을 끊어놓았다. 하지만 한 발 늦었고, 검은 기사의 룬이 가진 초월기가 카스트로의 초월기를 묶었다. 
  카스트로는 잿빛 기사의 초월기를 정면으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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