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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 Dreamland Online
운명의 돌: 멈춰버린 시계추 by 9959

정의는 하나가 아니다. 옳은 정의란 없다. 서로의 정의를 위해 타인을 짓밟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이기적인 이들의 이야기.

[판타지,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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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더미 - Chapter. 겨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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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06    추천 0   덧글 0    / 2019.01.16 13:29:58
  루벤가드는 뿔피리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궁전에서부터 카스트로의 옷과 장비를 소중하게 껴안고 나오는 카로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이런. 아무래도 당신네들이 이긴 거 같은데?”

  루벤가드의 손에 잡힌 페너트레인이 피를 토했다. 그의 피가 손에 묻었지만 루벤가드는 개의치 않았다. 루벤가드는 페너트레인이 말하길 기다렸다. 

  페너트레인은 칠왕국의 언어를 배워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힘겹게 웃으며 어눌한 왕국 솔츠어로 말했다. 

  “이제 좀 놔주십니다.”

  루벤가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붙잡고 있던 페너트레인을 놓았다. 페너트레인이 거칠게 기침을 토했다. 루벤가드는 떨어뜨렸던 활과 화살통을 주웠다. 활을 등에 메고 화살통을 오른쪽 허벅지에 맸다. 그가 기침을 하는 페너트레인을 무시한 채 전장을 둘러보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뿔피리 소리에 과열된 전투가 하나둘 멈추고 있었다. 루벤가드는 찌뿌듯한 어깨를 주물렀다. 그는 내성을 향해 다가가는 카로스를 보며 말했다.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거 제대로 한번 놀아봅시다.”

  루벤가드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등을 돌렸다. 그는 미련 없이 울돌레이를 떠났다. 

*

  뿔피리 소리가 더 들리지 않게 되고 해가 진 후에야 모든 이들이 전쟁에 끝났음을 받아들였다. 자담은 승리했고, 울돌레이는 패배했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칼리모스는 피곤한 몸을 주무르며 스프를 떠먹었다. 주변을 지나가는 자담의 병사들이 두려움과 증오서린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허나 그뿐이었다. 테이라의 엄격한 통제 덕에 울돌레이의 포로들은 자담측의 어떤 보복도 받지 않았다. 

  칼리모스는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취사장으로 가지고 갔다. 거기서 그는 한 그릇 더 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우시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지기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던 사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취사병에게 국자로 맞기 싫으면 당장 꺼지란 소리를 들은 우시르가 투덜대며 등을 돌렸다. 두 남자는 눈이 마주쳤다. 칼리모스가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외성이 사라져 상대적으로 먼 내성벽까지 자리를 옮긴 두 사내는 한동안 침묵했다. 담배연기를 진득하게 내뱉는 우시르를 보던 칼리모스가 말했다. 

  “그건 어디서 가져온 힘이지?”

  우시르가 고개를 돌렸다. 칼리모스가 말을 이었다.

  “지금껏 마나가 아닌 힘으로 마법을 쓰는 건 처음 봤다.”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보급용 싸구려 육포를 입에 집어넣은 우시르가 답했다.

  “알려줄 테니까 당신 ‘진리의 문’ 공정 알려줘.”

  “알아봐야 제어 못할 텐데?”

  “당신 건 다른 문이랑 뭔지 모르게 다르더라고. 내가 또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칼리모스가 턱을 매만졌다. 

  “다른 문이랑 3공정 까지는 똑같아. 4공정에서 흑마법사들의 황천을 해석, 분해, 재구축해서 정수에 곁들이는 거지. 그 다음 문에서 진리를 빼 덮어씌우는 거고. 황천의 강력한 힘이 뒤에서 받쳐줘야 정수가 진리를 버틸 수 있기도 하고.”
  “젠장! 그래서 허무가 잘 안 먹힌 거군.”

  “역시……. 암흑기사들의 힘이었나. 어째 황천이 잘 안 먹히더라니. 근데 어떻게 허무로 마법을 쓴 거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데.”

  “별 거 아니야. 일단 공허로 통하는 관문 열어두고 모아놓은 마나를 거기로 집어넣어. 그럼 그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허무에 마나가 듬성듬성 묻어 있거든? 이 상태에서 묻은 마나를 통해 내 ‘내부진지’로 허무를 넣어. 그리고 ‘외부진지’로 허무를 이동시키고 묻어 있는 마나와 허무를 같이 정제하면서 마나를 걸러내면, 짜잔! 마나의 특성을 갖게 된 허무가 되는 거지. 그대로 그냥 쓰기만 하면 돼.”

  칼리모스가 입을 벌렸다. 그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았다.

  “이봐, 그건 아주라들이나 가능한 짓이잖아.”

  “그러는 당신도 콸테이락들이나 쓰는 황천을 통한 공정을 하잖아. 피차 안 놀라도 되는 거 아닌가?”

  우시르가 다 타버린 담배를 버렸다. 그들은 한참을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 수천 명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는 마법사와 주술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한 지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목멘 학자로서 서로를 마주했다. 

*

  겨울 용병단의 편백나무와 소나무 부대는 이번 울돌레이 공성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원래는 총원 2천 명이었을 그들은 지금 고작 천 명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물론 다른 부대가 입은 피해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겨울의 용병들은 한 명, 한 명이 초인의 힘을 다루는 뛰어난 인력이었다. 절반 이상을 잃어버린 건 너무나도 큰 손실이다.

  천 명의 시체를 반듯하게 눕힐 수 있는 구덩이는 매우 컸다. 살아남은 용병들은 죽은 이들의 몸을 구덩이 안쪽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이들은 그들의 인식표와 생전 물품으로 대체했다. 안치하는 게 끝나자 살아남은 이들은 돈주머니를 든 채 그들의 시체로 다가갔다.

  선금으로 받았던 3천만 루블 전부를 죽은 이들의 품에 두당 30만씩 안겨주었다. 모자라는 돈은 지휘관들의 사비로 대체했다. 카로스는 마지막 병사의 품에 돈을 안겨주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빼지 말고 가져가라. 너희가 정당하게 번 돈이다.”

  돈주머니를 모두 비운 용병들이 구덩이를 떠났다. 그들은 단상 위에 올라간 카로스의 뒤로 정렬했다. 

  아직 건재한 륜의 측백나무 부대는 구덩이에 기름을 뿌리기 시작했다. 횃불을 가지고 카로스의 곁으로 다가온 챈슬러는 천천히 그것을 넘겼다. 카로스는 횃불을 든 채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편백나무 1대대 1중대 1소대 루키비아, 메쉬, 아스토레, 진, 우르쉬, 펜서, 루픈, 디아라샤, 엥거, 프렉타르, 케슨, 엔터이, 라그라마. 2소대 소대장 인더블레, 안타림, 모르가, 레오, 알던, 부스타, 잉카, 라크, 벨테이, 션, 이영, 라구르쉬, 프로스톰, 가츠, 크리스티앙, 조안, 바스톤, 헤플리…….”

  카로스는 긴 시간동안 죽은 1089명의 이름을 한 명도 빠짐없이, 한 번도 막힘없이 호명했다. 그 사이 측백나무 부대원들이 기름 뿌리는 걸 마쳤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동안 생전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마지막 사망자의 이름을 내뱉은 카로스는 입을 꽉 다문 채 서 있었다. 그가 횃불을 들지 않은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가 시가를 입에 물었다. 횃불로 시가에 불을 붙인 그가 말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나와 함께 마을 자경단에서 열댓 명의 작은 무리로 시작한 이도, 들어온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런 너희의 희생으로 오늘, 우리는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카로스가 횃불을 구덩이에 던졌다. 

  “바쁘게 달려온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단지 너희가 잊히지 않고 기억되게끔 노력하는 것뿐인 모자란 나를 용서해라.”

  불길이 치솟았다.

  “쉬어라.” 

  시체가 불탄다. 그들이 걸친 옷과 갑옷, 병장기, 돈. 모든 것이 불타오른다. 그것들이 불타며 만드는 역한 냄새에 눈살을 찌푸릴 법도 했다. 허나 겨울은 불길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어느 누구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동료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

  “윈터펠은?”

  “쉬고 있어.”

  “이번 ‘세계정지’로 받은 형벌은 확실히 끝난 거지?”

  “응. 그래도 후유증이 남아서 당분간 깨어나지 못할 거야. 아직 정신은 시간의 틈에 있는 거 같거든.”

  “고생했다. 륜. 지쳤을 텐데 너도 이제 가서 쉬어.”

  륜이 카로스를 바라보았다. 카로스는 검게 그을린 얼굴로 그녀를 마주보았다. 

  “왜?”

  “아무것도.”

  카로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철수준비를 하는 병사들을 향해 다가갔다.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륜이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찼다. 

*

  “피해가 상당한데.”

  하이람이 고개를 들었다. 우시르는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하이람의 곁으로 가 앉았다. 하이람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쪽은 거하게 장례를 치른 모양이야.”

  “우리랑은 장례 치르는 방법이 다르네.”

  “다들 다르지.”

  “애들 다 모아 놓은 건가?”

  “그래. 이제 네가 마무리만 하면 된다.”

  우시르가 꽁초를 버리고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그는 1300명의 인간과 그에 준하는 말의 시체가 놓인 땅을 바라보았다. 그가 마나를 모았다. 

  우시르의 곁에 모인 마나는 그의 의지대로 시체들에게 다가갔다. 시체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이람의 용병들은 고개를 숙였다. 떠오른 시체들이 하나둘 먼지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이람이 우시르의 곁에 서서 말했다. 

  “너희들은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살아왔지. 그 끝은 결국 죽음이란 걸 알기 때문에 후회가 남지 않게끔 열심히 살았을 거다. 그게 우리의 신조이기도 했지. 

  지키고 싶었던 것, 가지고 싶었던 것, 이루고자 했던 것. 그 모든 걸 해볼 수는 없었겠지. 그러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으니까.”

  그리고 우시르가 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너희들의 삶은, 가치가 있었다. 이 자연이 너희를 받아주는 모습을 봐라. 아무런 거리낌도 없다는 게 그 증거다. 이제 인간의 삶이란 속박에서 풀린 너희는 자연과 함께 어울리게 되겠지. 그 속에서도 지금까지처럼 자신만의 신조와 신념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아라. 그렇다면 그곳에서도 너희는 빛을 잃지 않고 반짝일 거다.”

  우시르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가 불을 붙이고 하이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들만 죽었다고 너무 짜증내지는 마라. 이 영감탱이도 곧 죽어 너희들 곁으로 갈 테니까.”

  하이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놈들아! 나도 곧 간다. 앞으로 길어야 5년이란다! 네놈들보단 조금 늦게 가는 김에 더 즐기고 가야겠다! 먼저 가서 내 자리 좋은 곳으로 하나 잡아 놔라!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

  돌무더기에 깔려 있던 일한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일어나는 걸 기다리고 있던 아이트라가 말했다. 

  “우리가 이겼어. 일한.”

  “흠.”

  별다른 말없이 일한이 갑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일한이 하늘 높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저 멀리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던 그의 대검이 날아왔다. 대검을 붙잡은 그는 그것을 땅에 꽂으며 말했다. 

  “루시는 어떻게 됐습니까?”

  “죽었어.”

  “이런.”

  전혀 놀랍지 않다는 투로 말한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투구를 벗었다. 루시와 아이트라 같은 찬란한 금색의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아이트라는 일한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여전히 잘생긴 얼굴.”

  “저도 압니다. 저 잘생긴 거.”

  “재수 없어.”

  일한이 보기 드문 미소를 띠었다. 그가 말했다.

  “제국으로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

  “몰라. 우리 가문 마지막 자손한테 어울리는 짝 정도는 붙여주고 가야겠지.”

  “빨리 돌아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이트라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분명 그녀가 받은 휴가는 200년이 넘는다. 아직도 많이 남았다. 빨리 돌아갈 이유 따위는 없다.
 
  “왜? 무슨 일 있어?”

  일한이 피곤한 눈으로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녀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잘생긴 얼굴이 다가오자 기분이 좋았다. 허나 그가 귓속에 속삭인 말은 그녀의 얼굴을 잔뜩 일그러지게 했다.

  “지금……, 그게……, 대체, 무슨……?”

  “상급기사 선까지 내려온 명령입니다. 함구하라는 지시도 따라왔습니다.” 

  아이트라가 이마를 짚었다. 그녀는 신음을 흘렸다. 

  “언제……, 언젠데?”

  “아직 모릅니다. 때가 되면 우리 모두, 알게 될 겁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령관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듯합니다.”

  아이트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갈리겠지. 말도 안 되는 짓이잖아, 그건…….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싸움이랑은 비교가 안 된다고. 애초에 그런 일을 벌이면 ‘늑대’는 어떻게 막을 건데? ‘챔피언’은? ‘철신’이 누가 됐든 ‘초대 철신’이 아니면 그쪽은 감당 못해.”

  “‘거미’나 ‘흑색창’ 아니면 ‘하얀 이리’ 쪽에 손을 뻗을 거라 예상됩니다. ‘영웅’들을 막을 수 있는 건 같은 ‘영웅’들뿐이니까요. 뭐가 됐든 그쪽은 우리가 신경 쓸 게 아닙니다. 그런다고 대항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거미랑 흑색창에 하얀 이리? 이거 규모가 너무 커지는데…….”

  “아무튼 선배님을 끝으로 다 전했습니다.”

  “……너 그거 전하려고 전쟁에 나온 거야? 분명 중요한 얘기긴 한데……, 설마 너 휴가 받은 애들 다 처리하고 다녔어?”

  “그럴 리가 있습니까? 휴가 받은 선배님들은 선배처럼 놀고먹는다고 약해지지 않습니다. ‘제국기사’분들 중에도 휴가 나오신 분들 제법 있는데 제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리고 전쟁에 참가하자는 건 루시 생각입니다.”

  “이게 이제 막 뼈 때리네? 그리고 루시 걔는 여전하구나.”

  “아무튼 선배님이랑은 한번 겨뤄보고도 싶었고, 그런 김에 의견에 동조한 겁니다. 그리고 루시는 상급기사 승단 때문에 데리고 가야겠습니다. 죽어서 시끄럽게 떠들지 않을 테니 편하겠군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아이트라는 부글부글 끓는 기분을 진정했다. 그녀는 잔뜩 입술을 내밀었다. 

  “아까 너랑 싸우던 데 있어.”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일한은 대검을 짊어졌다. 그는 루시가 있는 곳으로 향하며 한마디 했다. 

  “그때를 대비해 모든 상급기사는 옛날 이상의 기량으로 끌어올리라는 제2작전사령관님의 명령도 있습니다. 못 미치는 자는 거들어 주신다 하시더군요.”

  “리퍼 사령관님? ……미치겠네.”

  “다음에는 제국에서 뵙죠.”

  “아, 잠깐! 일한.”

  “예.”

  아이트라는 가까이 와보라고 손짓했다. 일한은 그녀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트라가 그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일한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저는 널리고 널린 일개 상급기사일 뿐입니다만.”

  “괜찮아. 가서 내가 그랬다고만 전해줘.”

  “제 직급으로 감히 ‘제국기사’ 분들과 그 위의 ‘남작’님들을 만나 뵐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선배의 부탁이라면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응! 고마워.”

  일한이 가볍게 목례한 뒤 떠났다. 아이트라는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그러고는 이내 일한이 속삭였던 말을 떠올리고 신경질적으로 돌무더기를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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