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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온갖 의뢰와 잡일 따위를 도맡아 하는 조직의 통칭, 길드. 바로 여기에도 하나의 길드가 있다. 그 이름은, 어스. 매일같이 적자에 시달리는 길드의 상황으로 인해, 간부들은 골머리를 썩히고 있지만, 길드 마스터의 상태가?! 길드 어스에 어서 오세요!

[퓨전,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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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길드입니다만, 문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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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갓카[anileonhart]
조회 1578    추천 0   덧글 0    / 2019.01.19 10:33:13

9화.길드입니다만, 문제라도?

 오늘따라 어깨가 천근만근이었다.
 중년의 사무직 길드원, '박차장'은 오늘도 길드에 출근한다.
 박차장이 길드에 나온 시각은 상당히 이른 6시 경, 이렇게 일찍 온 것도 어제 남은 잔업을 미처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쪼아대는 레드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오늘에라도 빨리 이번 프로젝트를 끝내서 제출해야만 한다.
 "박차장님, 일찍 오셨네요.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맑게 울리는 청아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홀대리가 서 있었다.
 "홀대리도 고생이 많아. 그 녀석 비서일은 힘들지?"
 "아니요.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역시나, 오늘도 서류가방을 잔뜩 들고 와서는 미소를 짓는다.
 홀대리는 이렇게나 좋은 사람인데, 레드문─그 인간은─.
 아아, 떠올리기도 싫은 놈이다.
 하필 저런 놈이 우리 부서 위에 있다니, 참 재수도 없지.
 박차장은 씁쓸하게 웃어넘기며, 이른 아침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어찌어찌 하여 간신히 올릴 보고서는 전부 작성했지만, 이다음이 또 문제이다.
 이걸 레드문에게 전해야만 한다.
 정말 보기 싫은 그 얼굴을 다시 한 번 마주해야만 한다. 그것이 내 일이니까─.
 박차장은 기지개를 쭉 뻗으며 레드문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들고 일어섰다.
 레드문이 있는 집무실은 22층이었던가, 유독 그 층에 있는 사무실만이 유독 조용하다고 들었다.
 22층에 배치된 사무요원들은 대부분이 레드문의 심복으로, 철저히 세뇌 당하다시피 한 길드원들이었다.
 그런 악의 소굴 같은 곳으로, 박차장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 레드문에게 봐달라며 관련 서류들을 모두 건네자─.
 "에휴……, 허 참……."
 그렇다. 항상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일단 길게 내쉬는 한숨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박차장 또한 각오했던 일이었다.
 "이야~ 이거 박차장, 내가 이러라고 2개월의 시간을 준 게 아닐 텐데 말이야. 그렇지? 기회를 달라고 해서 솔로 프로젝트까지 큰 맘 먹고 내주었는데, 이걸 뭐 말이라고 하는 거야? 너 개인을 위하여 길드 자금을 투자하고 막대한 손해를 본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거야? 박차장 부자인가 봐? 책임질 수 있다면 당장 지원해주지. 하하하하──."
 그것은, 무언가 말을 꺼낼 틈도 없었다. 변명하려고 하는 만큼 족쇄가 되어 발목을 붙잡아올 뿐이다.
 "그… 그렇지만… 성공하면 적어도 초기 자금의 세 배 정도 끌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못 알아들은 거야? 이 문건은 기각이야. 다시 써 오던가 해."
 "……."
 "앙?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면 제대로 수완을 보이란 말이야. 솔직히 박차장, 길드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제대로 된 실적을 낸 적이 몇 번이나 있지? 대부분 같은 부서 직원들이 처리하고 박차장은 거기에 편승했을 뿐 아니야? 내가 듣기론 그렇게 알고 있는데 말이야. 이번 프로젝트도 똑같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은 분명 매력적이지. 하지만 박차장은 그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나? 아니지, 그건 전부 길드가 떠안게 되는 거지. 기획서가 이게 뭐야? 발로 써도 이것보단 잘 쓰겠네."
 툭─.
 "……."
 박차장의 앞에 기획서를 집어던지자, 빠드득하고 박차장의 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박차장은 정작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로는 레드문을 이길 수 없다고 이미 오래 전에 깨달은 이후다. 입을 열어 무언가를 하려고 해 봤자, 레드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더 목소리만 높여질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였지만 결론적으로 박과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이렇게 말하면 또 대답이 없지. 그래, 답이 없구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전투 직으로 나가는 게 어때? 솔직히 이쯤 되면 박차장은 너~무 무능해서 사무직에는 안 맞는 거 같거든? 아니면 그냥 저냥 대충 일 하려고 길드에 가입한 건가?"
 "…아닙니다."
 어느 샌가 주먹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아무튼 다시 써 오던가 해~. 이런 프로젝트는 저얼~대로 지원 못해주니까 말이야. 알았지?"
 어깨를 토닥거리는 레드문의 앞에 선 박차장은 마음 같아서는 면전에다 대고 말하고 싶었다.
 '그 더러운 손 내 어깨에서 치우지 못해? 이 쓰레기 같은 녀석아. 네 녀석이 그렇게 잘났어? 그놈의 독불장군 마인드로 혼자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 혼자 길드 일 전부 할 수 있는 거냐고!'
 그런 박차장의 어깨를 토닥이던 레드문의 손이 멈추었다. 그러더니, 피식 웃으며 말한다.
 "박차장,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넌 얼마나 잘났으면 그렇게 까불고 다니냐고, 너 혼자 길드 일 전부 할 수 있을 거 같냐고~?"
 뜨끔─.
 '대체 뭐지? 어떻게 안 거야?'
 식은땀을 흘리는 박차장의 앞에 한걸음 더 다가선 레드문이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한다.
 "그야~ 박차장 얼굴에 다 나와 있는 걸? 그래, 길드 일 전부 혼자서 떠맡아 본 적도 있었지~. 그때가 참 좋았는데 말이야. 지금처럼 길드 자금 축내는 쓸모없는 사무직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나 혼자 하는 게 낫겠어. 뭐, 속에 담아두기만 하면 병 된다니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보쇼."
 마음속에 담아두는 말을 했다간 레드문이 원하는 대로 되어버리고 만다. 박차장이 입을 여는 순간, 그대로 끝이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 아무것도……. 그럼 다시 써오겠습니다……."
 "그래야지~."
 마치 나무늘보같이 축 늘어진 채 기획서를 붙들고 집무실을 나가는 박차장을 보며, 레드문은 끌끌거리며 혀를 찼다.
 "참, 어이가 없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그 옆에서, 홀대리가 따끈따끈한 김이 나는 커피를 들고 온다.
 "레드문님, 커피 한 잔 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아아, 그래. 그거 좋지, 뭐."
 느긋하게 앉아서 커피 한잔 하려니, 박차장의 뒤를 이어 사무실에 들어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카로스는 오늘도 나오긴 했어."
 "그러냐?"
 아침부터 대뜸 하는 말이 카로스 얘기다. 이제 와서 그런 놈을 데려와서 어쩌겠다는 지, 레드문은 그런 생각을 하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아리엔느님."
 "…그런데 말이야……. 으으, 진짜! 내 이름은 로리먼트라구, 그 고상한 성씨로 부르지 말란 말야!"
 "네, '아리엔느·시트리아·로리먼트'님."
 "…아아! 아무튼… 카로스가 집무실에서 나오질 않아……."
 로리먼트는 아까전의 박차장과 비슷한 자세로 축 쳐지는 모양새로 말했다.
 "그게… 아침에 온 이삿짐센터 직원들…… 있잖아……."

 * * *

 박차장이 출근할 때와 같은 시각, 어스에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찾아왔다.
 이른 아침부터 25층 카로스의 집무실로 배달할 물건들이 있다며, 포장된 물건들을 잔뜩 옮겼다.
 카로스 또한, 이른 아침부터 길드에 나와 이삿짐 나르는 걸 도왔다.
 그러다가 정확히, 로리먼트와 딱 마주쳤다.
 "카카, 빨리 왔네? 그것들은 다 뭐야?"
 "…어, 으응……. 그렇지……."
 카로스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것처럼 한순간 주저하다 말을 이었다.
 "…그냥 내 방에서 가져온 짐들이야."
 "나도 거들까?"
 로리먼트는 왠지, 돕고 싶어 하는 듯 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곤란하다.
 "아… 아니! 그건 됐어……!"
 "…되게 짐이 많은 모양인데…… 그럼 난 먼저 올라가 볼게!"
 "조심해서 들어가!"
 그렇게 카로스는 로리먼트를 서둘러 보냈다.
 그야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 옮기고 있는 것들을 로리먼트한테 들켰다가는 잔소리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제 그런걸 봐버린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었다.
 "…휴, 이렇게 많았었나……."
 어느새 짐을 모두 최상층에 옮기고 정리하는 데만 1시간이 넘었다.
 랜선을 꽂고, 케이블을 정리한 후에 전원 버튼을 누른다.
 그렇다. 카로스가 지금 길드에 가져온 건 온갖 게임 기기였다.
 원래 이런 용도로 쓰는 방이 아닐 테지만, 한번쯤은 이렇게 커다란 모니터를 게임용으로 써보고 싶었다. 게다가, 이 초고사양의 노트북도 있다.
 헤비 과금러이자 게이머인 카로스에게 있어서 이것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던 것이었다.
 "해상도…… 우와……!"
 최상층을, 어느새 게임방으로 만들어버린 카로스였다.
 심지어 벽걸이형 tv도 이참에 하나 구비해두었다.
 덥고 습하던 카로스의 방에 비해서 이곳, 최상층 길드 마스터의 집무실은 에어컨도 빵빵하며 인터넷 속도도 그야말로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요즘 왜 이렇게 볼 게 없냐. 방송사에서 짜고 지루한 프로그램만 편성하는 기분이란 말이야."
 그리고 현재에 있어서는, 이미 카로스 자신의 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카로스의 발밑에 굴러다니는 것은 게임기, 또 게임기,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는 게임기, 과자 부스러기, 그리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는 게임기……. 더 이상 길드 마스터의 집무실이라 볼 수 없는 카로스의 명백한 개인 공간.
 순식간에 변해버린 그 공간을 지켜보는 카로스의 눈에 이채가 스쳐갔지만, 나중에 청소하기로 또 다시 미루고 게임기와 과자 부스러기를 피해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겨 냉장고의 문을 열어젖혔다.
 카로스는 탄산음료로 가득 찬 냉장고에서 콜라 한 캔을 꺼내들고는 바닥에 퍼져있는 각종 지뢰들을 피해 소파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파에도 어느새 이것저것 잡다한 물건이 쌓여있었으나,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구석으로 밀어 두고 쓰러지듯 걸터앉는다.
 메마른 목에서 톡톡 튀는 탄산을 느끼며, 카로스의 고개가 무기력하게 뒤로 젖혀진다.
 이렇게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젯밤의 투혼에 무거워진 눈꺼풀이 감긴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의식에 취한다. 그렇게 느껴지는 건, 공허함과 허무함과…… 게임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카로스가 무언가를 깨닫고는 벌떡 일어선다.
 그 순간 뻗쳐있던 앞머리가 카로스의 눈을 가볍게 툭 건드렸다.
 "벌써 이렇게나 길게 자란 건가……. 조금 거슬리네."
 어느새 눈을 찌를 정도로 길어진 앞머리를 아무렇게나 쓸어 넘긴 카로스가 재빨리 컴퓨터 앞에 앉았다.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모니터를 켜며 여러 번 링크를 타고 들어간 온라인 게임 홈페이지의 공지 사항을 확인한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지……. 오늘은……."
 거기서 말을 끊고 클라이언트를 실행시키며 환호성과 함께 말을 이었다.
 "오시어스의 오픈 베타 테스트!"
 "─가 아니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카로스는 흠칫 놀라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모니터에 어렴풋이 비치는 누군가의 실루엣에 뒤를 돌아보자 당연하다는 듯이 소파에 앉아있는 단신의 소녀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깨 부근까지 내려온 양쪽으로 땋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리고, 맑은 눈동자가 카로스를 잡아먹을 것처럼 안광을 뿜어내고 있다. 꽉 다물고 있는 입술로 보아 화난 것처럼 보이지만, 어린애가 투정부리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름은 로리먼트, 어스의 간부 중 한 명이며 카로스가 부재중인 현 상황에서 레드문 다음으로 많은 일을 떠맡고 있다. 보조형 마법을 익힌 마법사이며 최초로 어스에 가입한 첫 번째 길드원.
 매사에 밝은 태도로 일관하던 로리먼트가 입술을 꼭 다문 채 카로스를 노려보며 문서를 움켜쥔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방에 들어와 앉아있는 모습에 카로스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그 직후──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카로스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했다.
 "어어?"
 본능적으로 취한 동작이었지만, 그 순간의 카로스는 자신의 방에 매설되어 있는─의도하지 않았던─지뢰들을 잊고 있었다. 이윽고 뒷걸음질하던 발이 과자 봉지에 미끄러지고, 카로스는 기계 체조와 같은 동작으로 보기 좋게 자빠졌다.
 카로스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콜라가 손아귀에서 슬며시 빠져나간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와중에도 카로스가 생각하는 건 단 하나.
 '콜라만은 안 돼, 콜라만은 안 돼, 콜라만은 안 돼!'
 그렇지만 이미 손에서 빠져나간 콜라는 보기 좋게 온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 모습을 보며, 카로스가 비명을 지른다.
 "아아악!"
 로리먼트가 한순간 풉,하고 웃었던 건 카로스의 기분 탓이었을까.
 "…으으… 카카, 너 말이야…… 진짜……!"
 결국, 카로스는 숨기던 모든 것들을 로리먼트에게 들키고 한동안 쓰디쓴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가져온 게임기들과 온작 패키지 게임들, PC관련 기기까지 깡그리 압수당하다 시피하며, 카로스는 대성통곡했다.
 로리먼트는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껏 길드에 데려다 놨더니 하는 짓은 방에서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이래서야 말짱 도루묵이다.
 결코 카로스더러 이러라고 길드에 데려온 것이 아니었다. 카로스 스스로 통제가 안 된다면 압수를 해서라도 카로스에게서 게임을 떼어놔야만 한다.
 "정말……, 어쩌면 좋을까……."
 로리먼트는 들고 있던 문서를 카로스에게 겨누며 싸늘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탄식하는 로리먼트의 앞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는 카로스는 전혀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있었다.
 "근데 어떻게 들어온 거야? 분명 문에는 락(Lock)이 걸려있던 것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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