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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 Dreamland Online
운명의 돌: 멈춰버린 시계추 by 9959

정의는 하나가 아니다. 옳은 정의란 없다. 서로의 정의를 위해 타인을 짓밟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이기적인 이들의 이야기.

[판타지,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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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뭐야?”

  다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은 백은색 머리칼을 가진 소녀가 품에 안고 있는 빵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다갈색 머리를 가진 소년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검은 머리의 소년과 흑갈색 머리를 가진 소년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빵을 다갈색 머리의 소년에게 보여주었다. 세 명의 소년이 동시에 말했다.

  “빵?”

  “응!”

  그리고 소년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뒷걸음질 쳤다. 소년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소녀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그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는 오늘이 생일인 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정말 해맑게 웃으며 소년들을 향해 말했다.

  “생일 축하해!”

  소녀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얼굴로 그들을 마주했다.

  다갈색 머리의 소년과 검은 머리의 소년은 굳어버린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지만 흑갈색 머리를 가진 소년은 최대한 밝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소녀의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와 흑갈색 머리를 가진 소년의 연한 녹색 눈동자가 마주쳤을 때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뗀 소년은 목이 메지는 않을지 조심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생, 일이라서 만들어 온 거야?”

  다갈색 머리의 소년과 검은 머리의 소년은 이 상황에서 말을 꺼낼 수 있는 흑갈색 머리의 소년이 정말 눈부시다고 느꼈다. 마치 책에서 등장하는 구세주와 같은 모습에 두 소년은 감동했다. 속으로 박수를 치며 그들은 흑갈색 머리의 소년을 쳐다봤다. 기대에 찬 일행들의 눈빛에 심각한 마음의 병이 생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갑작스럽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소녀가 빵을 한 조각 떼 소년들에게 주며 말했다.

  “응. 처음에 뭘 줄까 고민했는데 너희 밥 잘 못 먹고 다니잖아. 그래서 이거 주려고 만들었어. 먹어봐, 맛있어!”

  코앞까지 다가온 빵 조각을 보며 짧은 시간 세상을 창조했을 신의 고통과 근심을 단번에 깨닫게 된 흑갈색 머리의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갈색 머리의 소년을 쳐다보았다. 검은 머리의 소년은 흑갈색 머리를 가진 소년이 지금까지 대신해준 것을 생각하며 다갈색 머리의 소년에게 속삭였다. 

  “인간적으로, 네가 먼저 먹어야지.”

  다갈색 머리의 소년은 정색하며 답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개소리 마!”

  결코 먹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표출하던 다갈색 머리의 소년은 검은 머리의 소년이 등을 있는 힘껏 떠미는 덕분에 소녀의 바로 앞까지 나가게 됐다. 소년은 한껏 똥 씹은 표정으로 검은 머리의 소년을 노려보았다. 살벌한 시선을 마주하게 된 검은 머리의 소년은 능청스레 휘파람을 불며 시선을 회피했다. 

  소녀가 빵을 내밀었다. 그녀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페아르가 처음에 먹어주면 기쁘지!”

  페아르의 고동색 눈동자가 찬바람을 맞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페아르는 뒷걸음질로 멀어져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안쓰러움과 연민이 한가득 담겨있다. 억울했다. 

  페아르는 간절하게 빌었다. 

  ‘신이라는 아저씨에게. 죄송해요. 지금까지 아저씨를 믿지 않은 걸 후회하구요, 지금이라도 믿을 테니, 살려만 주세요.’

  “아.”

  페아르는 눈을 감았다. 빵 조각이 입속에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인상이 써진다. 그리고 그 순간 다른 두 소년은 눈을 감아버렸다. 

  두 소년의 얼굴에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가득했다. 곧이어 이어질 비명소리에 두 소년은 귀마저 틀어막았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같은 전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밟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두 소년이 기다리던 페아르의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소년들은 경악했다.

  ‘이번에는 소리를 지를 수조차 없는 맛인 거니? 그런 거니, 페아르?’

  그들은 끔직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을 지레 짐작하며 꽉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떴다. 

  예상이 빗나갔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소년은 입을 벌린 채 빵을 걸신들린 듯 집어먹고 있는 페아르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순간 페아르가 미쳐버린 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얼빠진 소년들의 얼굴을 보며 페아르가 말하자 그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뭐하세요?”

  그러자 정말 말도 안 된다는 투로 검은 머리의 소년이 페아르의 이마를 억센 손길로 탁 내려치며 말했다.

  “너 어디 아프냐, 페아르? 아프면 아프다고 말 해!”

  페아르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는 얼굴로 소녀가 떼어주는 빵을 입에 넣었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얼빠진 얼굴로 페아르를 쳐다보고 있을 즈음 흑갈색 머리의 소년이 다가와 페아르의 몸 구석구석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페아르는 퍽 불쾌하다는 투로 짜증을 냈다. 두 소년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동시에 페아르의 이마에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은 서로의 이마에 갖다 댄 뒤 말했다.

  “……정상인데?”

  흑갈색 머리의 소년은 이마를 만져본 걸로는 확신이 서지 않는지 페아르의 맥을 짚어보았다. 그러고는 놀랍다는 얼굴로 검은 머리의 소년을 쳐다보며 말했다. 

  “알타이르! 정상이야!”

  알타이르는 붉은 눈동자를 굴렸다. 페아르와 갈라테아를 번갈아 쳐다보던 알타이르는 그녀가 뜯어먹고 있는 빵에 시선을 고정했다. 알타이르와 갈라테아의 붉은 눈이 마주쳤다. 갈라테아는 싱긋 웃더니 알타이르에게 빵을 한 조각 뜯어주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곧 빵을 입에 집어넣었다. 페아르는 곁에 앉는 알타이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졸지에 혼자가 된 흑갈색 머리의 소년은 넋 나간 듯 허허 웃더니 합석했다. 

  “먹어라, 멍청한 게오르그.”

  게오르그는 흑갈색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페아르가 던져 준 빵을 입으로 받아냈다.

  “이럴 수가…….”

  감탄사를 내뱉은 게오르그는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입 안에서 녹아드는 달달한 크림과 딸기 잼의 맛. 그리고 이 두 가지의 맛이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부드러운 빵의 감촉에 게오르그는 적잖게 당황했다. 그리고 감동했다.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눈앞의 백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갈라테아가 만든 음식으로는 영원히 느낄 수 없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혼이 반쯤 나가 있는 게오르그를 묵묵히 쳐다보던 알타이르가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엄청 맛있지, 게오르그?”

  알타이르의 말은 게오르그 뿐만 아니라 페아르의 공감도 얻어냈다. 세 소년은 생일 날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갈라테아의 빵을 나눠먹었다. 마실 것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인 눈이 막힌 목을 뚫어주었다. 

  소년들은 그렇게 생일을 맞았고, 소녀는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빵은 금방 동이 났다. 제법 배가 부르게 먹었는지 알타이르와 게오르그는 차가운 눈밭에 드러누웠다. 페아르는 그런 친구들을 보며 짐승과 다를 게 뭐냐고 윽박질렀다. 그러자 게오르그가 말했다.

  “운동은 밥 먹고 삼십 분 후가 가장 좋대.”

  “그렇다고 밥 먹고 바로 눕는 게 좋은 건 아닐 텐데.”

  페아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갈라테아는 그런 소년들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갈라테아에게 페아르는 손을 내밀었다. 갈라테아는 페아르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그녀는 페아르의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측은해졌다. 

  그의 손은 어린애답지 않게 굳은살이 잔뜩 박혀 있었고, 무척 건조하며 거칠었다.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페아르의 고동색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페아르의 눈동자는 전체적으로 어둡다. 그러나 음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짙은 고동색 눈동자는 포근하고 따뜻한, 오래 된 나무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갈라테아가 말했다.

  “페아르.”

  “어? 왜?”

  “요즘도 막대기 가지고 놀아?”

  페아르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답했다.

  “야. 막대기라니, 칼이야. 칼.”

  갈라테아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알타이르가 찌푸린 얼굴로 화살 같이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미친 놈. 목검도 아니고 나무 막대기를 막대기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칼? 정신 넋 빠진 소리 하기는……. 그리고 여자애들한테는 막대기나 칼이나 똑같은 물건이거든?”

  페아르는 헛기침을 했다. 게오르그는 놀란 눈으로 알타이르를 바라보았다. 게오르그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막대기랑 칼이랑 비교하는 게 말이야, 방구야?”

  “그럴 수도 있지 등신아. 아저씨들 말하는 거 들었는데, 여자랑 남자는 다른 종족이라고 하더라.”

  “진짜? 여자는 사람이 아닌 거야?”

  “사람이 아니긴……, 너는 모가지 위에 호박통을 달고 다니냐?”

  게오르그는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얼굴로 알타이르를 바라보았다. 알타이르는 게오르그가 계속 쳐다보자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적의를 표출했다.

  “눈 그만 부라려라. 더 심하게 퍼붓기 전에. 알겠니?”

  게오르그는 의기소침해졌다. 

  페아르는 험악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던지는 알타이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알타이르의 입에서는 갖은 폭언과 폭설에 이어 욕설이 터졌고, 갈라테아의 정신연령을 고려한 페아르는 그녀의 귀를 막아버렸다. 갈라테아는 무슨 일이냐는 듯 어벙한 얼굴로 페아르를 올려다보았다. 

  알타이르의 험악한 입이 조용해지자 페아르는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때며 말했다.

  “애 앞에서 할 말이니? 응? 요놈아.”

  “애는 너도 애고 나도 애고 쟤도 애거든? 그리고 너 같으면 각목도 뻑뻑 깨부수는 네 놈 다리에 맞고 안 부러진 내 다리가 얼마나 아플지는 생각 안 하냐, 이 정신머리 없는 놈아?”

  알타이르는 페아르를 노려보았고 페아르는 미안하다는 표시로 두 손을 들어올렸다. 알타이르는 뭔가를 더 말하려 했지만 게오르그가 집어던진 눈덩이에 맞는 덕분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알타이르는 살의에 가득 찬 눈으로 게오르그를 쏘아보았고, 게오르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 도망쳤다.

  광란의 추격전 끝에 결국 게오르그는 알타이르의 손에 붙잡혔다. 게오르그가 구슬픈 비명을 내질렀다.

  단 둘이 남겨진 페아르와 갈라테아는 멍하니 섰다. 그들은 울창했지만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기세가 한풀 꺾인 숲을 바라보았다. 갈라테아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자 페아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거 칼인지 뭔지 가지고 논다고 손이 엉망이잖아. 이제 하지 마. 왜 하는 거야, 대체?”

  “왜 하냐고? 음……. 일단 재밌고, 그리고 전에도 말해줬잖아. 내 꿈은 유명한 기사가 되는 거야. 그러려면 검술이 아주 뛰어나야 해. 하루라도 쉬면 난 유명해지기는커녕 기사도 되지 못할 거야. 그래서 하는 거지.”

  “그거 꼭 해야 돼?”

  “그럼. 꿈이잖아. 헤헤.”

  페아르는 언젠가는 찾아올 꿈의 끝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반대로 갈라테아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녀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도중에 게오르그가 알타이르의 손에 붙잡혀 질질 끌려오는 덕분에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알타이르에게 목덜미를 붙잡혀 끌려온 게오르그는 허허 웃고 있었다. 페아르는 게오르그가 마을 할아버지 같다고 느꼈다. 그런 페아르의 마음을 갈라테아가 표현해주었다.

  “게오르그, 너 영감님 같아.”

  충격을 받았는지 게오르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갈라테아를 쳐다봤다. 그러자 페아르가 말을 이었다.

  “네가 영감들이랑 다른 게 뭔데? ……눈 좀 그만 부라려. 알. 그놈 눈 좀 어떻게 해봐.”

  “뽑을까?”

  “……진짜 너무들 하네.”

  페아르는 피식 웃었다. 덩달아 게오르그도 따라 웃었다. 알타이르는 입매만 살짝 올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갈라테아도 웃음을 터트렸다.

  “아, 맞다. 엄마 생일이 언제라고?”

  알타이르를 괴롭히다가 역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게오르그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보았다. 그러면서 알타이르가 멈추기를 살짝 기대했지만 알타이르는 당한 만큼 갚지 않으면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당했던 것처럼 게오르그를 눈 속에 거꾸로 파묻었다. 

  “좋냐? 좋아? 너 같으면 거꾸로 처박히는 게 좋겠냐!”

  그러고는 성난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페아르는 한심하다는 듯 두 친구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러게. 언제라고 했더라?”

  갈라테아는 깜박하고 있었다는 걸 여지없이 보여주는 얼굴을 한 채 방방 뛰기 시작했다. 

  “으악! 큰일났다! 어떡하지?”

  페아르는 날뛰는 갈라테아를 붙잡으려다 턱을 한 대 얻어맞았다.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 페아르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꼈다. ‘무슨 여자애 주먹이 알타이르보다…….’ 

  알타이르는 페아르가 보여준 선례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테아를 진정시켰다. 

  “일단 진정해. 갈라테아.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생각할 시간은 아직 많아. 준비할 시간도 충분해. 그러니까 그만 날뛰어줄래? 이러다 날 죽이던지 페아르를 죽이던지 할 것 같은데…….” 

  “앗, 미안해…….”

  갈라테아는 마구잡이로 알타이르와 페아르를 폭행하던 손을 멈추었다. 

  주저앉은 뒤로도 발길질에 몇 대 걷어차인 페아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게오르그는 알타이르가 눈 속에 거꾸로 파묻은 이후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기에 갈라테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알타이르뿐이었다. 알타이르는 진정 된 갈라테아를 조용히 앉혀놓고 말을 이었다. 

  “자. 우리 냉정해지자. 생일은…… 언제라고?”

  “음…….”

  갈라테아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알타이르는 그런 그녀가 정말 귀엽다고 느꼈다. 숫자를 세던 갈라테아가 손바닥을 활짝 피며 말했다. 

  “남았어!”

  “그래. 닷새. 아직 많이 남았어. 뭘 가져다 드릴 건지 지금부터 생각해봐도 늦지 않아. 그럼 생각해보자. 어떤 걸 선물할 건지.”
  갈라테아는 알타이르가 편했다. 알타이르는 언제나 이성적이었고, 냉철했다. 가끔 게오르그와 페아르에게만은 무척 감정적으로 대응했지만 보통은 그랬다. 갈라테아는 알타이르를 마주보고 앉았다. 그녀는 알타이르의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갈라테아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어.”

  알타이르는 헛기침했다. 

  “테아!”

  그는 갈라테아에게 뭔가를 말해주려 했지만 멀리서 엘사가 갈라테아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알타이르는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페아르를 발로 차 넘어뜨리고 눈 속에 파묻혀 있던 게오르그를 한손으로 끄집어냈다.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붙잡고 알타이르는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갈라테아 또한 어머니의 목소리에 기겁을 했다. 그녀는 페아르의 눈동자 색 같은 큰 나무의 아랫목에 기어들어갔다.

  “테아!”

  엘사는 애잔함과 불안함이 가득 느껴지는 목소리로 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점차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조급해하면 안 돼. 괜찮아. 찾을 수 있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괜찮아…….’

  “테아! 어디 있어? 화내기 전에 어서 나와!”

  엘사는 눈밭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가며 딸의 자취를 찾았다. 그녀는 클라이프처럼 ‘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는 걸 한심하게 느꼈다. 

  한참 발자국을 뒤쫓던 엘사는 홀로 다른 곳을 향하는 발자국을 발견했다. 발의 크기와 보폭을 보건데 분명 갈라테아의 것이었다. 그녀는 딸의 발자국이라 확신하자마자 그 길로 곧장 달려갔다. 발자국이 끊긴 거목 앞에 멈춰 선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테아.”

  엘사는 약간 화가 난 어조로 딸의 이름을 불렀다. 갈라테아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귀를 막았다. 엘사는 나무 주위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엘사는 다시 딸의 이름을 불렀다.

  “갈라테아.”

  “네…….”

  더는 숨어있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갈라테아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거목 사이에서 나왔다. 한 손을 허리에 얹고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엘사를 보자 갈라테아는 직감했다. ‘끝났다. 엄마한테 죽겠구나.’ 갈라테아는 엘사가 다가오자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우려하던 엘사의 화난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엘사는 갈라테아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갈라테아는 자신도 모르게 울먹였다. 결국 참지 못한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엘사는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으며 딸의 작고 여린 몸을 더 꽉 끌어안았다.

  클라이프는 반쯤 풀린 눈으로 엘사와 갈라테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별다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등을 돌렸다. 클라이프는 머리 위에 떠 있는 태양을 보며 생각했다.

  ‘빛과 태양의 신, 테리얼이시여. 무례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 행복. 오래 갈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클라이프는 색이 바랜 장검의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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