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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돌: 멈춰버린 시계추 by 9959

정의는 하나가 아니다. 옳은 정의란 없다. 서로의 정의를 위해 타인을 짓밟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이기적인 이들의 이야기.

[판타지,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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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9    추천 0   덧글 0    / 2019.01.24 22:43:41
  클라이프가 라바사트의 집에서 출발했을 때 페아르를 필두로 한 알타이르와 게오르그도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마을을 이 잡듯 뒤지고 있었다. 

  페아르는 신경질적으로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게오르그는 진정하라는 듯 페아르의 어깨를 붙잡았다. 페아르는 게오르그를 쳐다보더니 두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게오르그는 심심할 때마다 지형을 그리다보니 어느새 지도가 되어버린 낙서를 쳐다보았다. 게오르그가 어른들이 만든 것보다도 더욱 정교한 지도를 쳐다보기 시작한지 삼십 분이 자났을 때 페아르는 더 참지 못하고 게오르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대체 언제까지 지도만 쳐 보고 있을 거야?”

  게오르그는 기다려보라는 듯 멱살을 쥐고 있는 페아르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페아르는 이를 악문 채 친구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게오르그는 턱을 괸 채 다시 지도를 쳐다보았다. 

  뒤늦게 게오르그가 지도의 한 지점을 찍었을 때 마침 알타이르가 되돌아왔다. 알타이르가 돌아오는 걸 확인한 게오르그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로 가자.”

  “이유는?”

  알타이르가 머리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되물었다. 그러자 게오르그는 마을 뒤편에 있는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정말 장난 안 치고 많이 고민해봤어. 또 우리가 마을을 돌아봤지만 없었잖아. 어른들은 지금 여기를 찾고 있고.”

  “네가 찍은 곳은 어른들이 찾는 곳이랑 정반대야. 결론만 말해.”

  “급하네, 사람이. 여하튼, 테아는 꽃을 좋아해. 거기다 곧 아줌마 생일이지. 만약 작년 여름에 꽃밭을 기억하고 있다면, 테아는 분명 거기로 갔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그걸 생각해서 이쪽으로 가는 거지.”

  알타이르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투로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페아르가 번개처럼 자리를 이탈하는 덕분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따라 달려야했다. 알타이르는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게오르그의 옆에서 같이 달리며 말했다.

  “고작 그거 생각해낸다고 삼십 분이나 걸린 건 아니겠지?”

  “미쳤냐. 내가 말했잖아. 많이 고민해봤다고.”

  “고민해봐야 너라면 일 분이면 결정할 수 있었을 텐데. 나머지는 뭐했냐?”

  “뭐하긴, 저 산 지형을 다 되새겼지. 기억하느라 힘들었다.”

  “……아무래도 넌 인간이 아닌 것 같다.”

  “칭찬이지?”

  “그래. 그건 그렇고 어른들이 뒷산을 돌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감.”

  “감?”

  의아해하며 묻는 알타이르에게 게오르그는 씩 웃어주었다. 알타이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게오르그를 따라 웃음을 흘렸다. 이런 쪽에 있어서 게오르그는 누구보다 믿음직하다. 알타이르는 게오르그이 팔뚝을 툭 치며 말했다.

  “뭘 하면 돼? 지금 대장은 너야.”

  “뭐하긴? 뒤집어야지.”

  알타이르는 고개를 끄덕인 뒤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갑자기 나무를 올라갔다. 그 속도가 원숭이 같은 나무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동물에 견줄만했다. 그가 나무로 올라간 직후 게오르그는 머리 위가 무척 시끄럽다는 걸 깨달았다. 그 소리의 주인은 알타이르였고, 한동안 시끄럽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땅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소리 없이 나무를 짐승처럼 뛰어다니는 알타이르의 모습에 게오르그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그는 나무 위에서 달리면서 땅에서 달리는 자신보다 빠른 친구의 모습에 한마디 했다.

  “저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한참을 달리던 게오르그는 산 중턱에서 체력이 다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닥치는 대로 작은 나무를 잘라내며 갈라테아의 이름을 부르짖는 페아르를 발견했다. 페아르는 늘 가지고 다니던 나무막대기로 작은 나무를 베고 있다. 게오르그는 숨을 골랐다.

  ‘내 주변에는 인간이 없는 건가? 한 놈은 짐승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 가고, 저 미친놈은 막대기로 나무를 자르고 있네. 뭐하는 놈들인지 내 친구인데 모르겠다.’

  숨을 충분히 고른 게오르그는 페아르가 쥔 막대기에 맞지 않게 조심하며 페아르를 불렀다.

  “페아르!”

  들리지 않는지 페아르는 나무를 자르며 갈라테아의 이름만을 불렀다. 게오르그는 페아르를 부르는 걸 관두었다. 대신 어딘가에서 나무 위를 헤집고 있을 알타이르를 불렀다. 다행히도 먼 곳에 있지 않았는지 알타이르는 게오르그가 부르자마자 나무 위에서 열매가 떨어지듯 뚝 떨어졌다. 

  “놀래라! 네가 사람이냐, 짐승이냐?”

  “개소리 할 시간이나 있냐. 왜? 찾았어?”

  게오르그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알타이르는 페아르의 상황을 물어보려다가 멀리서 들리는 페아르의 목소리에 입을 닫았다. 알타이르는 가벼운 수신호로 나무 위에서 계속 찾는다는 걸 게오르그에게 알렸다. 알타이르는 바로 나무 위로 사라졌다.

  게오르그는 통제가 불가능한 페아르를 내버려두고 여름에 왔었던 기억을 이용해 재구성한 차가운 겨울의 어두운 숲속을 돌아다녔다. 

  산속을 헤매던 게오르그는 어느새 페아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알타이르도 목소리가 사라진 걸 알고는 나무 위에서 조용히 페아르의 모습을 찾았다. 오래지 않아 알타이르와 게오르그는 페아르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알타이르는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는 게오르그와 함께 페아르에게 다가갔다. 페아르는 마치 굳은 것처럼 멈춰서 있었다. 알타이르와 게오르그는 서로를 한번 쳐다보았다. 게오르그가 손짓했다. 알티이르는 선수를 빼앗겼다는 걸 깨닫고 혀를 찼다. 알타이르가 페아르의 이름을 불렀다.

  “페아…….”

  페아르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알타이르는 입을 다물었다. 게오르그도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하며 페아르의 곁으로 다가갔다. 알타이르와 게오르그는 기다렸다. 이윽고 페아르의 입술을 가리던 손가락이 내려갔다. 게오르그는 순간적으로 페아르의 몸이 공이 튀는 것처럼 튕겨져 나갔다고 여겼다. 날았다고 밖에 표현하기 어려운 몸동작에 게오르그는 멍한 얼굴로 페아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알타이르는 무서운 반사신경으로 페아르의 뒤를 쫓으며 외쳤다.

  “길!”

  게오르그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알타이르가 뒤를 가리켰다는 걸 기억해냈다. 게오르그는 그런 건 자기 아니면 못 알아듣는다고 투덜거리며 가지고 있던 작은 나무토막을 이용해 가장 가까이 있던 나무에 표식을 남겼다. 

  아무리 지형을 잘 재구성했다고 해도 게오르그의 머릿속에 재구성 된 지형은 여름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겨울인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그렇기에 한두 번 본 것만으로 모두 기억해버리는 게오르그라 할지라도 표식을 남기지 않으면 길을 헤맬 가능성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는 바로 갈라테아를 찾아 산속을 헤매고 있을 어른들을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게오르그는 알타이르가 말하는 바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눈에 띄는 표식을 남기기 시작했다. 

  “왜 그래?”

  알타이르는 페아르에게 바짝 따라붙으며 말했다. 페아르는 말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알타이르는 페아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가 앞을 바라보자 페아르는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저기서 소리가 들린다.”

  페아르의 말에 알타이르는 귀를 기울여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기에 그는 페아르를 ‘무슨 개소리냐’는 얼굴을 하고 마주보았다. 페아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알타이르를 나무라지 않았다. 사실 나무랄 수 없었다. 페아르도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이 소리인지, 아니면 환청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단순히 감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니 알타이르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따라오는 것에 아무런 불평도 불만도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웬만한 곰보다 두 배는 더 큰 곰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알타이르는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 같은 딱딱한 얼굴로 덩치 큰 곰의 아래를 가리켰다.

  “페아르! 저기, 저 구멍이다.”

  페아르는 알타이르의 지시방향을 쳐다봤다. 그의 말대로 덩치 큰 곰의 아래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었다. 어린아이 하나가 빠지기에 충분한 크기의 구멍이었다. 페아르는 아무 생각도 갖지 않은 채 일단 뛰어들었다. 

  페아르와 알타이르는 눈빛을 교환했다. 아니, 페아르의 일방적인 신호였다. 그렇지만 알타이르는 그가 말하려는 바를 알아듣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페아르는 내달렸다. 그리고 곰의 커다란 앞발이 갈라테아가 빠져 있는 구멍을 더 넓히기 전에 곰의 주의를 끄는데 성공했다.

  “덩치만 크고 멍청한 곰 새끼야! 나랑 놀자!”

  페아르는 곰의 등허리에 올라타서는 마구잡이로 곰을 때리기 시작했다. 곰은 가소롭다는 듯 한번 몸을 튕긴 것만으로 페아르를 등에서 날려버렸다. 페아르는 곰의 등에서 떨어져 나와 눈밭을 어지럽게 굴렀다. 곰의 시선이 페아르를 향했다. 동시에 페아르는 알타이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알타이르의 모습이 사라졌다. 

  친구가 감쪽같이 사라지자 페아르는 씩 웃었다. 그는 곰을 향해 나무껍질을 벗겨 던지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날 보라고! 멍청한 놈아! 너 같은 놈은 내가 잘게 썰어서 고기로 만들어 주마!”

  곰을 도발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곰은 페아르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 다른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대치상태가 계속되고 있을 때 알타이르의 모습이 구덩이 앞에 불쑥 나타났다. 

  알타이르는 구덩이 안쪽을 살폈다. 고개를 내려 바라보자마자 기절한 갈라테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곰의 주둥이도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곳이었기에 알타이르의 짧은 팔이 닿는 일은 없었다. 알타이르는 혀를 차곤 구덩이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좁은 구멍 안에 들어간 알타이르는 갈라테아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생각을 고쳤다. 괜히 이름을 불러 그녀를 깨워 소란스럽게 만드느니 기절한 채 데려가는 게 훨씬 간단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알타이르는 지체하지 않고 갈라테아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구덩이를 빠져나가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알타이르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갈라테아를 내려놓고 몸을 웅크렸다. 

  “제기랄…….”

  곰이 알타이르와 갈라테아를 향해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알타이르는 머리통이 뜯겨나가지 않기 위해서는 몸을 웅크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날카로운 이빨이 머리털을 스치고 지나가자 등골이 서늘했다. 늘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는 알타이르였지만 방금 순간만큼은 본능이 죽음을 의식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알타이르는 곰의 이빨을 노려보았다. 이대로 발로 걷어차면 이빨 하나는 부러뜨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곰을 건드리는 건 페아르를 방해하는 것뿐이 안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추슬렀다. 알타이르는 때를 기다렸다.

  페아르는 곰이 알타이르가 파고든 구덩이에 주둥이를 들이밀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이대로는 알타이르가 위험할 거란 생각에 눈밭에 손을 집어넣었다. 곰의 시선을 확실하게 끌기 위해서는 무게가 있는 던질 것이 필요했다. 

  눈 속에서 돌멩이 하나가 만져졌다. 페아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돌멩이를 꺼냈다. 

  크기는 주먹만 했다. 그는 던지면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페아르는 돌멩이를 꽉 움켜쥐고 있는 힘껏 곰을 향해 던졌다. 돌멩이는 날아가 곰의 엉덩이에 맞았다. 커다란 곰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곰이 구덩이에서 얼굴을 꺼냈다. 그리고 페아르는 곰과 얼굴을 마주했다.

  주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난폭한 곰의 눈동자. 페아르는 굳어버린 육체를 움직이려 안간힘을 썼다. 곰이 점차 페아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를 기회삼아 갈라테아를 등에 업은 알타이르가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알타이르가 주먹을 쥔 손을 머리 위로 들며 큰 원을 그렸다. 그들이 모여 놀 때 사용하곤 했던 수신호였다. 

  ‘도망.’

  페아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알타이르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업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날렵한 몸놀림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알타이르는 곧바로 게오르그가 남긴 표식을 찾아냈고, 그것을 따라 도망치며 페아르가 쫓아올 수 있게 나뭇가지를 더 부숴 큰 흔적을 남겼다.

  알타이르가 사라졌다. 페아르는 어정쩡하게 곰과 대치하고 있으면 몸 성히 돌아가긴 글렀다는 생각에 심호흡했다. 페아르는 알타이르가 도망친 곳을 바라보았다. 문득 알타이르를 뒤따라 도망치려던 페아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는 정반대 방향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곰은 앞뒤 잴 것 없이 페아르의 꽁무니를 쫓았다. 

  아무리 페아르의 체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곰보다 좋을 수는 없다. 페아르는 금방 곰에게 뒤를 내주었고, 곰은 무감각하게 느껴질 정도로 덤덤하게 앞발을 휘둘렀다. 

  “컥!”

  곰의 발톱은 페아르의 등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페아르는 그대로 몇 미터를 날아갔다. 곰은 고개를 들었다. 일격에 죽이지 못했다. 다 큰 인간도 한 방이면 족한 그의 앞발질이 고작 어린애 하나 죽이지 못했다. 곰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으르렁거리며 아직 숨이 붙어 있는 페아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페아르는 흐릿한 시선으로 곰이 다가오는 걸 쳐다보고 있었다. 일어 설 힘이 없다. 앞발이 훑고 지나간 등은 감각이 없다. 페아르는 숨을 몰아쉬며 눈밭에서 꿈틀거렸다.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페아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곰이 코앞까지 다가왔으리라 생각될 즈음 눈을 떴다. 하지만 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쪽이다!”

  청아한 남자 아이의 목소리. 알타이르의 목소리가 페아르의 귓전을 맴돈다. 페아르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곰을 유인해가는 알타이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알타이르는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던져대며 페아르에게 다가가던 곰을 떼어놓았다. 그런 뒤 곰의 목표가 바뀐 걸 확인한 뒤 냅다 나무 위로 올라갔다. 

  알타이르는 붉은 눈밭을 주시했다. 눈밭의 중심에 페아르가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병신 새끼.’ 페아르의 험담을 늘어놓던 알타이르는 올라가 있던 나무가 휘청거리자 놀란 얼굴을 하며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그리고 그때 곰이 휘두른 앞발에 맞아 그가 올라가 있던 나무의 허리가 부러졌다. 알타이르는 욕이 튀어나오는 걸 참으며 곰의 머리 위로 뛰어내렸다. 

  곰의 머리를 밟고 등판을 굴러 눈밭에 착지한 알타이르는 곰의 공격을 피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도 갈라테아를 놓고 온 장소와 쓰러진 페아르와는 완전 다른 방향으로 달린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하지만 알타이르는 페아르가 일어설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곰이 그가 아니라 페아르를 향해 달려갈 때 질겁하며 소리쳤다.

  “정신 나간 새끼야! 그냥 처 누워있어!”

  하지만 페아르는 알타이르의 말을 듣지 않았다. 거친 숨을 내쉬며 일어선 페아르는 풀린 눈으로 달려오는 곰을 응시했다. 페아르는 이를 악물며 온몸에 힘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알타이르는 페아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소년은 곰과 대적할 것이다. 여기서 저 곰을 죽이지 않는 한 알타이르도, 페아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알타이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실천할 수 없었다. 알타이르의 눈에 페아르가 나뭇가지로 칼을 뽑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찰나, 알타이르는 페아르에게 알 수 없는 강인함이 머무는 걸 느꼈다. 

  나뭇가지가 궤적을 그리며 나아갔다. 그리고 곰의 머리를 때렸다. 

  마치 뭐든지 베어버릴 수 있을 것처럼 나아가던 나뭇가지는, 곰의 얼굴에 닿자마자 거짓말처럼 멈춰버렸다.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던 알타이르의 눈동자에 곰의 앞발에 맞아 뱃가죽이 뚫린 채 날아가는 페아르의 모습이 보였다. 알타이르는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페아르의 주위에 머문 강인함은, 뭐든지 벨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쥔 건 고작 나뭇가지였지만 휘두르는 그 순간만큼은 진짜 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뭇가지가 곰의 얼굴에 닿기 직전, 곰의 몸에도 페아르와 비슷한 아니, 훨씬 더 위압적인 강인함이 머물렀다. 그것은 페아르의 나뭇가지를 보통 나뭇가지보다 더 약하게 만들었고 결과, 페아르의 생사는 확인할 수 없었다. 곰의 시선이 알타이르를 향했다. 알타이르는 주저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곰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알타이르를 향해 다가오던 곰은 고개를 들었다. 그런 뒤 알타이르의 뒤편을 노려보았다. 곰의 몸을 덮은 털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곰은 자신을 움츠리게 하는 위압(威壓)에 경계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 남자들은 눈밭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다가왔다.

  “제대로 된 패기야.”

  가장 먼저 알타이르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가 말했다. 그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도 밝게 빛나는 은색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뒤를 이어 덩치 큰 금발의 사내가 말을 받았다.

  “멀리서도 느껴지더라. 가히 타고났다고 말해야겠지, 딘.”

  딘은 게럴드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는 은색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리곤 아주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클라이프를 향해 말했다.

  “이봐, 클리프. 어떻게 생각해? 제법 괜찮지 않아?”

  “잡담할 시간 있으면 빨리 가서 애나 보살펴.”

  퉁명스럽게 말하는 클라이프를 향해 딘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손사래 쳤다. 

  “에반이 처음 보여준 것보다 훨씬 뛰어난 패기야. ‘세 기’가 다 함께 커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패기가 저렇게 날이 섰다면 뱃가죽 뚫린 정도론 안 죽어. 투기도 그만큼 짙을 테니까. 아, 물론…….”

  딘은 말을 끊었다. 그러며 털을 곤두세우고 있는 곰을 바라보았다. “저것만큼은 아니지.” 그는 멋쩍게 웃었다. 클라이프는 한숨을 내쉬고 싶은 걸 참았다. 클라이프가 허리춤의 칼자루를 잡으며 말했다.

  “잔말 말고 가서 페아르나 수습해. 아직 어린애야. 갑작스러운 각성에 충격이 클 테니까. 거기다가……, 여기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겠어.”

  딘과 게럴드는 고개를 들었다. 클라이프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거대한 기백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딘은 식은땀을 흘렸다. 

  “……와, 미친. 저건 거의 페이서스 기사장 급인데?”

  “단순한 크기만 보면 그렇지. 저번에 한 번 본 적 있는데 초월기도 쓰더라.”

  게럴드의 말에 딘과 클라이프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딘이 말했다.

  “싸워봤냐?”

  게럴드는 코웃음쳤다.

  “그랬으면 내가 살아 있겠냐. 저 괴물이 자기 영토 침범한 인간들 죽이는 걸 봤지.”

  딘은 전율하게 만드는 기백을 가진 산의 주인에게 경외심을 품었다. 그는 강자에 대한 예우를 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가 주먹을 가슴까지 끌어올렸다. 남은 손으로 주먹을 붙잡은 그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딘은 클라이프와 곰을 곧장 가로질렀다. 그는 곰의 사나운 눈동자를 슬며시 흘겨보고는 씩 웃었다. 곰은 움직이지 않았다. 

  클라이프는 칼을 뽑으려 팔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는 칼을 뽑지 않았다. 덩치 큰 금발의 사내가 말렸기 때문이다. 클라이프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게럴드가 말했다. 

  “넣어두쇼. 내가 정리할 테니까.”

  “게럴드. 나 아직 현역으로 뛸 수 있어.”

  “누가 뭐랍니까.”

  게럴드의 쓴소리에 클라이프는 혀를 찼다. 그리고 곰을 향해 다가가는 게럴드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게럴드의 주먹은 곰의 머리뼈를 부수며 뇌수를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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