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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온갖 의뢰와 잡일 따위를 도맡아 하는 조직의 통칭, 길드. 바로 여기에도 하나의 길드가 있다. 그 이름은, 어스. 매일같이 적자에 시달리는 길드의 상황으로 인해, 간부들은 골머리를 썩히고 있지만, 길드 마스터의 상태가?! 길드 어스에 어서 오세요!

[퓨전,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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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거짓된 명예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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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갓카[anileonhart]
조회 1486    추천 0   덧글 0    / 2019.02.16 05:19:26

11화.거짓된 명예 결투

 시내의 대학병원.
 최신 의료기기들이 우선시되어 배치되고, 내로라하는 의사들이 상주하고 있는 종합병원이다.
 카로스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복장으로 이 병원을 찾았다.
 그 자신이 어딘가 불편한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곳에서 편히 잠들어 있는 앨리스의 병문안을 왔을 뿐─.
 앨리스라고 적힌 방문을 열어젖히고, 카로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앨리스는 오늘도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침실에 누워있었다.
 카로스는 말없이 꽃병의 물을 갈아주며, 앨리스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녀는 끝내 식물인간으로 진단받았다. 깨어날 가능성은 0.1% 이하라는 절망적인 수치였다.
 지금은 그저 온갖 의료기기를 몸에 단 채, 수명을 연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에 필요한 모든 병원비는 어스에서 지급하고 있으며,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카로스의 계좌에서 빠져나간다.
 "벌써 2년이나 지났구나……."
 앨리스의 오른 손등에는 카로스의 각인 문양과 같은 검은 날개 모양의 각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도 카로스의 각인과 완전히 동일한 형태이다.
 그야, 카로스의 흑검 네로는 본래 그의 것이 아닌 그녀의 것이었다. 자신은 그저 그 각인을 이식해 받았을 뿐─.
 원래 그녀 대신에 자신이 저 자리에 누워있어야만 했을 지도 모른다고, 카로스는 소리 없이 조소하며 의자에 앉았다.
 '예전에는… 저 얼굴로 웃어줬는데 말이야…….'
 나른함이 몰려와 카로스는 잠시 눈을 붙이고 의자에 기대었다.

 * * *

 ─불길 속에서 카로스는 눈을 떴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불타고 있다. 나무도, 건물도, 사람도…….
 수많은 총탄과 마술들이 카로스를 통과해간다.
 아아, 그렇다. 여긴 전장, 과거 어스와 에인헤야르가 결전을 치렀던 그 언덕이었다.
 카로스는 고개를 들어 언덕 위를 바라보았다.
 언덕 위에는 한 명의 남성이 서서 검을 겨누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 그리고 한순간 섬광이 번뜩이며 겹쳐졌던 실루엣 하나가 힘없이 쓰러진다.
 카로스가 마침내 적의 수장 메르를 베어 쓰러뜨린 것이다.
 이것으로, 기나긴 길드 전쟁은 끝을 맺었다.
 그리고 카로스는 언덕 아래로 내려간다.
 피칠갑을 한 채로, 상처투성이인 채로, 어디론가 달려 나간다.
 거침없이 달려 나가던 카로스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명의 소녀를 발견하고서야 멈추었다.
 그 순간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로스.」
 또 다른 자신에게 거는 말소리가 아니었다. 카로스 자기 자신에게 걸어오는 말처럼 들려, 뒤로 돌아섰다.
 그곳에, 앨리스가 서 있었다.
 길게 내려오는 찰랑거리는 흑발의 머릿결도, 백옥같이 맑은 푸른 눈동자도 여전하다.
 앨리스는 그 곳에 가지런히 서서, 카로스를 향해 손짓했다.
 「내가 이렇게 된 게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카로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척이나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지만, 차마 그 눈동자와 눈을 맞출 수는 없었다.
 생각치도 못한 차갑고도 잔혹한 말이 카로스의 가슴을 꿰뚫은 건 그 순간이었다.
 「그래, 네 잘못이 맞아. 네가 나약하니까, 날 이렇게 희생시킨 거잖니.」
 맑은 목소리가, 서서히 갈라진다.
 「날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나대신 사니까 어떤 기분이야? 편안해? 자~ 말해봐. 카로스───!」
 그 새하얀 손이, 카로스의 목을 졸라온다.
 카로스는 아무 저항 없이 그저 숨을 켁켁거리며 매달려 있을 뿐이다.
 이렇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카로스는 생각했다.
 '나 대신에 살았어야 됐던 건, 너 였어. 그러니까 앨리스, 넌 날 죽일 자격이 있어.'
 눈앞이 뿌옇다.
 뇌로 가는 혈류가 차단되어 점차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카로스는 앨리스를 똑똑히 바라보았다.
 카로스의 목을 조르며, 앨리스는 웃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카카!」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오며, 누군가 카로스의 몸을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카로스가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앨리스의 병실이었다.
 "괜찮은 거야? 왜 그렇게 떨고 있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로리먼트였다.
 자신을 찾아 이곳 병실까지 찾아온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으며 카로스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꿈이었던 건가?"
 그리고 나른한 몸을 이끌고 일어서려던 순간, 쿵─하고 심장에 가해지는 무거운 충격이 느껴졌다.
 "커헉, 컥!"
 가슴이 답답하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로스는 차마 고통을 견디지 못해 가슴팍을 붙잡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카카! 괜찮아! 정신 차려! 왜 그래! 저기요! 여기 사람이 쓰러졌……."
 로리먼트가 사람을 부르려던 순간, 카로스의 왼손이 로리먼트를 붙잡았다.
 "카카?"
 "…이제 괜찮아……."
 거칠게 호흡하며, 카로스는 천천히 일어섰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쓰러질 뻔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이번에는 그 충격이 좀 더 컸을 뿐이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어디 봐봐!"
 로리먼트는 그렇게 말하며 카로스의 상의를 살짝 걷어 올렸다.
 카로스의 몸을 잠식하고 있는 검은 무언가가 꿈틀거리다가 잦아드는 게 보인다.
 "세상에……."
 한순간 카로스의 심장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던 그것은, 이내 서서히 가라앉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 지경까지 와서야, 이 정체불명의 상흔이 카로스의 PTSD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는 볼 수 없었다.
 "…시엔한테 가 보는 게 좋겠어. 시엔이라면 고칠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말고……."
 카로스는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는 다시 한 번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앨리스는 여전히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꿈에서 봤던 모습하고 도저히 같은 인물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이렇게 고운 얼굴이, 꿈만 꿨다하면 일그러지며 카로스를 분노로 집어 삼키려든다.
 "돌아가자, 로리먼트. 날 찾으러 온 거지?"
 "…으응…, 그게……."
 여기서 말하는 게 좋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할지 도저히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다.
 "무슨 할 말 있어?"
 "아니, 아무것도…… 그것보다 머리 잘랐네?"
 아까 전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카로스의 머리가 이전보다 짧아져 있었다.
 오늘 자른 걸까, 카로스는 앞을 다 가리다시피 했던 앞머리를 쳐내고 익숙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모습이 더 멋있어."
 로리먼트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그맣게 소곤거렸다.
 '카카한테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리고 그 전에 내가 반드시 막을 거야. 카카를 추방하다니…… 말도 안 돼!'
 그리고,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

 * * *

 병원을 뒤로하고 길거리로 나오자, 앞에 모여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그렇게 말하며 카로스는 인파를 헤집고 들어갔다.
 로리먼트는 그런 카로스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카카?"
 웅성거리는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자, 안쪽에는 경찰복을 입고 있는 한 명의 여성과 거기에 항의하는 후줄근한 차림의 남성이 있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이 양반아, 난 길드 아스트리에 속해 있는 몸이라고, 이 인장이 안 보이는 거야?"
 "길거리에서는 무기를 집어넣어주십시오! 이건 조약에 위배되는 상황입니다!"
 보아하니 아마 남성의 소란으로 일이 생긴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남성이 들고 있는 무기는 다름 아닌 권총이었다.
 그런 권총을 숨기거나 홀스터에 넣지도 않고, 손에 들고 다니다가 경찰한테 제지당한 모양이었다.
 "이런 권총을 어떻게 각인해? 들고다닐 수밖에 없다니깐? 게다가 우린 길드 대전 중이라고, 언제 총알이 날아들지 모르니까 어쩔 수 없잖아?"
 "하다못해 주머니에 넣어주세요! 민간인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습니까! 제아무리 길드 대전 중이라고는 해도 이런 길거리에서 큰일을 벌이진 않을 테니, 주머니에라도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아가씨, 말이 안 통하네. 이 길드 인장이 보이지 않는 거야? 이 지역은 우리가 관리하는 땅이라고, 우리 땅에서 뭘 하던 무슨 상관인데?"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각인 마술을 익히는 건 필수 소양이 아닙니까? 제아무리 길드에 속했더라도 이렇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공공장소에서 총을 들고 다니는 건 조약에 위배되는 행위란 말입니다! 하물며 오늘 대전이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소란을 피우겠다면 하프 랜드 조약에 의거, 체포하겠습니다."
 여자 경찰관이 수갑을 꺼내들자, 사내가 움찔하며 물러섰다.
 "어이구, 무서워라. 이 몸을 체포하시겠다고? 당장 치우지 않으면 배에 바람구멍을 내주겠어. 우리 길드의 힘을 쓰면 경찰 한명쯤 사고로 위장시키는 건 일도 아니거든? 아앙?"
 자신을 길드 '아스트리'에 속해있다고 밝힌 남성은 권총을 흔들거리며 여경관의 앞까지 갔다. 더 이상은 지켜볼 수가 없다고 판단한 카로스는 그 앞을 막아섰다.
 "댁은 또 누구요?"
 길드 마스터의 직위를 내세우는 건 영 내키지 않았지만, 이곳은 길드 어스의 영향권 내 이기도 하다. 다른 길드의 행패를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스의 길드 마스터 카로스입니다. 이 이상으로 소란을 피우는 건 자제해줬으면 합니다만……."
 후줄근한 복장의 남성은 그 말을 듣고는 카로스의 옷에 달린 길드 인장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진짜로 그 잘나가는 '어스'의 길드 마스터시라고?"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노골적인 도발의 어조로 말한다.
 "카카……."
 로리먼트는 왠지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카로스는 그런 로리먼트에게 괜찮다고 손짓하고는 남성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당신도 알고 있겠죠. 모든 길드는 조약을 따르게 됩니다. 공무원의 말을 듣지 않고 이 이상으로 소란을 피우는 건 체포당하기에 충분한 행위입니다……."
 "어랍쇼……. 너도 정의의 사자 놀이를 하는 거야? 그러다 총알 구멍 난다고? 제 아무리 그 잘나가는 어스의 길드 마스터라고 해도 지금은 예전만큼 강하지 않잖아? 여긴 이제 명백한 우리 땅이야.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꺼져. 확 그냥 그 잘난 얼굴에 총알구멍을 내주기 전에─."
 그 말에 카로스 또한 부아가 치밀었지만 간신히 가라앉혔다. 카로스는 냉정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조약에 위배되는 행동을 계속할 셈이라면, 길드에 속한 자로써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카카!"
 로리먼트가 다급하게 카로스를 불렀다. 아무래도 여긴 낄 자리가 아닌 거 같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괜히 성가신 일에 휘말려서 좋을 건 없다.
 그러나 로리먼트는 웅성이는 인파에 밀려 카로스에게 닿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해볼 셈인가? 지금 이 자리에서 '명예 결투'를 신청하지. 상대가 길드 마스터라면 말이야, 이거 아주 좋은 상대인데……."
 이기면 길드 마스터로부터 승리했다는 사실에 어스의 이름에 제대로 먹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내는 코웃음 치며 카로스를 비웃었다.
 "좋아."
 "카카! 안 돼! 도발에 넘어가지 말란 말이야!"
 여기서 싸운다고 하더라도 별로 이득볼 상황은 명백히 아니었기에, 로리먼트는 카로스를 만류했지만 카로스는 조용히 각인 마술을 준비했다.
 카로스의 입장에서는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불의를 못 참는 성격까지는 아니었지만, 이 곳 또한 어스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 있다. 상대방도 카로스가 어스 소속이라는 걸 안 이후, 틀림없이 그 부분을 인지하고 찔러보려는 속셈일 것이다.
 이래 뵈도 길드 마스터인 몸이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카로스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방탄복까지는 아니지만, 순발력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들고 있는 건 총이다. 아직 조준까지는 되지 않았다. 명예 결투에서 총기를 사용하는 것 또한 위배되는 상황이므로, 이미 결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일지 모른다.
 하지만 싸울 수밖에 없다. 그 권총으로 카로스를 조준하기 전에, 사내가 총을 들어 올리는 순간─.
 "죽어라!"
 ─벤다!
 이윽고 귓가를 스치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권총이 잘려나갔다.
 잠깐의 정적 이후 권총의 총열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남성은 그 이후에야 상황을 이해한 듯, 손잡이만을 붙잡고 있는 자신의 왼손을 보았다.
 "…이… 이게 말이 돼…?"
 "총은 아무한테나 겨누는 게 아니야. 특히 공무원을 상대로는─."
 그제야 로리먼트가 인파를 헤집고 뛰쳐나왔다.
 "카카! 괜찮아! 왜 이런 일에 휘말리고 그러는 거야! 위험하잖아!"
 "그렇지만, 보고 있을 수만도 없잖아……."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 구했던 사람은 길드원이었지만─, 이 여경관이 곤란한 상황에 빠진 모습을 그때와 겹쳐보았기에 카로스는 앞으로 달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결투를 더 할 생각이라면 받아주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겨…… 결투는 끝이야! 네 놈……, 우리 길드를 건드린 대가를 똑똑히 치르게 해 주겠어! 우리 땅에서 그런 행패를 부리다니, 우리 길드 마스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네 녀석은 끝났어!"
 슬금슬금, 남성은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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