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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한 그녀와 거짓으로 위축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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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갓카[anileonhart]
조회 896    추천 0   덧글 0    / 2019.04.03 08:08:18

 순수한 그녀와 거짓으로 위축된 세상


 그 날 올려다 본 하늘은, 덧없이 맑고 순수했다.
 거짓으로 점철된 나와는 맞지 않는, 정 반대의 또 다른 세상이었다.
 내리쬐는 햇살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져 땅바닥만 보고 걷자니, 발치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하기야, 때는 그러했다. 슬슬 만개했던 벚꽃이 떨어질 시기인가, 그 증거로 순수한 분홍색의 꽃잎이 금방이라도 밟힐 듯 내 발에 걸쳐 있었다.
 아무래도 그걸 짓밟을 자신은 없었기에, 나는 조심스레 벚꽃을 받아 들었다.
 이 예쁜 색감을 가진 조그마한 식물이 그렇게나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걸까?
 나도 모르는 새 피식, 조소가 흘러 나왔다. 고작해야 흔하디흔한 꽃일 뿐인데, 인기를 끄는 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꽃이 있다.
 벚꽃은 그저 겉모습이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 못한 꽃은, 저마다의 향기를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 사회와도 비슷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꽃잎을 집어든 채 일어서려던 찰나, 내 쪽을 지그시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요?"
 고개를 돌려보니, 나도 모르게 시선을 사로잡히고 말았다. 한 명의 소녀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바람결에 나풀거리는 연분홍색의 플레어스커트, 그 위를 덮는 새하얀 티셔츠에 붉은 가디건을 걸친 소녀였다.
 결정적으로 가련하고, 어딘가 아련한 눈빛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쪽을 지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걸까? 저렇게 예쁜 소녀가 나를 찾을 이유는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을 터인데, 이 시선의 의미는 무얼 증명하고 있는 걸까.
 "무슨 볼일이라도……."
 나는 재차 물었다. 그러나, 불쾌하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상대가 여자라서 그런 걸까? 참, 웃기지도 않는 놈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조소했다.
 "벚꽃은 순결함을 상징한다고 해요. 정말 그럴까요?"
 내 말을 끊고 갑작스레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머리가 이상한 소녀인 걸까?
 소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간다.
 "여기도 저기도, 벚꽃 투성이네요."
 바람이 한 번 불때마다, 벚꽃이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이미 앙상한 가지만이 남은 나무도 있다.
 "벚꽃을 전부 잃은 나무는,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네요."
 그 이유는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더럽혀지고 버려진 벚꽃은, 그저 도로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는 쓰레기나 다름없었으니까.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청소부 외에는 없을 것이다.
 자기 할 일도 바쁜데, 그런 곳에 신경을 쏟을 여유는 없을게 분명하니까, 어떻게 보면 암묵적인 세상의 규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벚꽃은, 나무에서 떨어져 하늘에 흩날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야, 떨어진 벚꽃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으니까 무시당하는 게 당연하겠지."
 내 말에 소녀는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만감이 교차했지만,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침착함을 되찾은 소녀의 시선은, 바닥에 떨어진 벚꽃을 향해 있었다.
 "…그러네요."
 찬바람이 불어온다. 소녀의 스커트가 가볍게 팔랑거렸지만 거기에 시선을 집중할 정도로 나는 변태가 아니었다.
 "잠깐, 같이 걸어 주실래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녀가 말한다. 벚꽃이 흩날리는 이 거리에서 별로 할 일도 없었기에 나는 소녀에게 어울려주기로 결심했다.
 "상관은 없어."
 그렇게, 나는 소녀를 따라갔다. 차마 옆에서 걸을 자신은 없었기에, 뒤에서 조금씩 발걸음을 뒤쫓아 갈 뿐이다. 옆에서 함께 걸었다가는 여기저기서 오가는 연인들처럼 보일 테니까.
 내 사심은 차치하고, 무엇보다 소녀가 불쾌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서고 있었다.
 소녀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공원의 호숫가였다.
 당연하게도 호수에도 한가득, 벚꽃이 떨어져 있다. 수놓은 것처럼 아름다웠지만, 저 벚꽃도 결국 버려진 꽃에 불과했다.
 "저 벚꽃은 나무가 버린 걸까요, 바람이 가져가 버린 걸까요?"
 수수께끼와도 같은 말에, 나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녀는 내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쪽이던 때가 되면 알아서 떨어지겠지. 그게 자연의 이치니까."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 그 뒤는 혹독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에 맞춰서 나무는 잎으로 숨겼던 꽃을 피운다. 그렇게 피웠던 꽃은 짧은 생애를 아름답게 뽐내며 열매를 맺거나, 소리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이한다.
 "…역시, 그렇겠죠……?"
 소녀는 깊게 한숨을 쉬며 양손으로 턱을 괴었다. 이 다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락없는 커플로 보일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무의식중에 그걸 의식하고 있었지만, 정작 소녀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떨어진 벚꽃을 줍는 이도, 대부분은 사심으로 가득 차 있겠죠?"
 무슨 의미인 걸까, 곰곰이 생각해도 뚜렷하게 떠오르는 건 딱히 없었다.
 소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얼마간 정적이 흐른다.
 그 정적이 의미하는 바를,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소녀를 위로해주는 것, 고작 그것뿐이었다.
 "모두가 그렇진 않을 거야. 더 좋은 사람도 있을 거고, 그러니까 너무 의식하지 말고 지내."
 내 말에 소녀는 화들짝 놀라며 턱을 괴던 양팔을 떼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는 걸까, 소녀의 눈동자는 나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후후……."
 그저 막연히, 조그만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행여나 내가 잘못 짚은 걸까, 그런 의심이 들려던 순간 소녀의 대답이 돌아왔다.
 "…하나같이 똑같은 줄 알았어요. 지금까지는, 쭉 그래왔으니까……."
 소녀의 목소리에서, 그녀가 겪었을 과거가 그대로 묻어나왔다. 직접 보지 않아도, 나는 소녀가 느꼈을 괴로움을, 그 슬픔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시네요……."
 소녀의 시선은 다시 저 먼 호수의 끝자락으로 향했다.
 "실연을 겪으면, 누구나 감성적으로 변하겠죠. 이런 말을 하기에도 뭐한 게, 저 또한 지나가던 수많은 여자들 중 한 명에 불과하니까요. 후후후……."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충 걸친 후드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를 오가는 사람들 틈에 섞이기에는 다소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으나, 결국 지나가는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점은 똑같았다.
 그런 점에서, 소녀와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봤자 결국 지나칠 뿐인 존재였지만──.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나도 그녀도, 과정은 다르지만 실연을 겪은 존재라는 점이다.
 벌써 1년이 지난 걸까,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 벚꽃이 지는 날이었다.
 우습지만 어느 샌가 나 또한 아련한 추억에 잠겨,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6개월 전, 가을이 지나던 때였다.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듯,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한순간, 주변의 모든 것들이 정지했다.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떨던 사람들도, 분수를 바라보던 커플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남자도, 그 자리에서 모두 멈추어 있었다.
 즐거웠던 생활과 미래에 대한 기대에 너무 심취해 있었던 걸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돌아서 가 버리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저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다 꿈이었던 걸까, 차라리 꿈이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꿈이라면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텐데…….
 너라는 늪에 빠져 시간이 갈수록 깊숙이 가라앉던 나에게 현실이라는 밧줄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었다.
 그 늪의 달콤함 때문에, 뒤늦게 정신을 차려보니 잊혀졌던 현실은 어느 샌가 올가미가 되어 내 숨통을 조금씩 죄여오고 있었다.
 역시 이게 현실인 걸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동화 속 공주는 너무 과분했던 걸까.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손을 잡고 싶었다. 한 번 더 붙잡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능한 모습이 내 본모습이었다. 항상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바라보기만 했었다.
 먼저 할 걸음 다가가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다.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따스한 봄바람처럼 다가온 그녀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다.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에 멍하니 앉아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잊고 있던 약속이라도 생각난 듯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본능에 이끌리듯 집을 나와 공원길을 걸었다.
 하릴없이, 갈 곳 없이, 얼마나 걸어왔을까.
 이제는 낙엽이 흩날리는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던 이 거리를, 나는 막연하게 걷고 있었다.
 벚꽃이 흩날리던 때 만난 그녀는, 다시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자고 약속했었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그녀의 입술로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벚꽃이 다시 흩날리는 이때에 내 옆에 그녀는 없다. 그녀가 있을 옆자리를 바라보더라도, 그저 소리 없는 바람만이 불어갈 뿐이다.
 그녀와 걸었던 거리를, 이제는 혼자 걷고 있었다.
 함께 주문하고 식사했던 가게도, 이제는 혼자 앉아 있었다.
 벚꽃이 떨어지는 나무의 아래에서, 그녀는 내게 안겨 오며 말했다.
 지금은 들려오지 않는 목소리로, '사랑해.' 라고─.
 이건 악몽에 불과하다고 수십, 수백 번을 되뇌어 왔었다.
 악몽 속을 헤집으며 눈을 뜨면, 이 꿈에서 깨어나면 언제나 그랬듯이 옆에는 그녀의 모습이 있을 테고, 나는 잘 잤냐고 물으며 머릿결을 쓰다듬어줄 것이다.
 전부 악몽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여 보아도, 영원히 끝없는 악몽 속을 헤집는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를 아무리 세뇌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의 환멸감에, 부서져버린 현실 속에, 나는 홀로 외롭게 있을 것이다.
 걷는 것도 지쳐서 의자에 앉아 있을 무렵, 너를 닮은 여자를 보았다.
 네가 다시 이 거리에 나타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미 내 몸은 미친 듯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달려간 그 순간, 그녀의 곁으로 다가서는 남자가 있다.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밝게 웃으며 팔짱을 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저 멀리 멀어져만 간다.
 멍청하게도, 나는 소리 없이 그녀와 만났던 장소만을 맴돌고 있었다.
 다시 그녀가 나타나서 말을 걸어줄 것이라는 환상에 잠긴 채로──.
 "저기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깊어지던 추억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어느 샌가, 오른쪽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옷깃으로 문질러 닦아내며,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소녀를 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미련하게 혼자 추억에 매달려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현실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혼자서 과거에 잠겨 있어도 시간은 흘러간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뒤쳐지는 건 나 혼자 뿐이었다. 그것이 그녀와 헤어지고 몇 개월이 지나고서야 도달한 결론이었다.
 술로 인해 몸이 망가질 뻔한 일도 있었다.
 술을 마시면, 그나마 잊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술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해진다.
 손을 뻗어보아도, 그녀의 윤곽은 소리 없이 녹아들며 사라질 뿐이었다. 금주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일이었다.
 "…아무것도 아닐 리가 없잖아요? 남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네요. 후후후……."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수긍할 수도 없었다.
 못들은 척 호숫가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소녀가 이야기를 꺼내왔다.
 "괜찮으시면, 제 이야기도 들어주시겠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녀 덕분에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시간을 내주지 못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수긍했던 것이다.
 "저 또한 벚꽃은 익숙해요. 항상 여기를 걸어왔었으니까, 여기에서 함께 호수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호수를 바라보는 소녀의 옆모습에서, 나는 헤어졌던 그녀의 모습을 겹쳐보고 있었다.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고 나서야, 소녀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어떠한 추억을 쌓더라도, 헤어지면 거기서 끝날 뿐인 과거에 불과할 뿐이겠죠. 새로운 사랑을 찾으라는 조언도 있지만, 그렇게 쉬울 리가 없었어요. 저 또한, 과거에 얽매여 살아오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여기까지만 보면 나와 완전히 동일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허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아무런 빛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벚꽃이 지는 것처럼, 사랑도 지기 마련이겠죠? 아저씨의 말대로 어떤 꽃도 시간이 지나면 떨어져 버리는 것처럼, 세상의 이치대로 흘러가는 거겠지요. 간혹, 열매를 맺는 꽃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험난해서 대부분은 중도에 끊어져 버리니까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은 대부분이 진실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모든 기억들은 그저 아련한 과거의 추억이 되어 버렸을 뿐이다.
 "너무 감상에 젖어버린 모양이네요? 후후……."
 장난을 치는 듯 한 소녀의 말투에, 나는 비로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다들 벚꽃을 보러오지만, 대부분은 떨어지는 벚꽃의 분위기가 좋아서 오는 거겠죠?"
 쿡쿡거리며 웃는 소녀의 앞에서, 나는 소녀를 따라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 말에는 동의해."
 다소 잠겨있는 목소리에, 소녀 또한 의기소침한 태도를 취한다.
 "뭐에요~? 이럴 때는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그저, 작은 코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야 이 소녀의 언동이나 행동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점차 밝아지고 있었으니까. 아니면 전부,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벚꽃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상처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
 아련하게 말하는 소녀에게 나는 정면으로 말했다.
 "하지만, 벚꽃은 결국 지기 마련이잖아?"
 "사람의 정이 떨어지는 것도 비슷하잖아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이 소녀에게 완전히 패배해 버리고 만 것이다. 소녀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쿡쿡거리며 웃는다.
 "적어도 벚꽃은 상처받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소녀는 턱을 괸 채, 멀리서 지나가는 커플을 바라본다.
 "…그래도 그런 일을 겪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잖아?"
 이것만큼은 자부할 수 있었다. 과거에 얽매여 있었어도, 결국 헤어 나오기 마련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기억은 퇴색되고, 종국에는 잊혀지고 마니까. 그 빈자리는 분명 크지만, 이내 새로운 추억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만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환멸감은 어쩔 수 없었다.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기억도, 모두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모든 걸 잃었다는 그 기분도, 밑도 끝도 없는 수렁을 해매는 기분도, 점차 익숙해지고 벗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사람은 성장해나가고, 어른이 되어 간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만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었으니까. 그것마저 잃어버린다면, 나는 예전처럼 영원히 과거에 갇혀 살고 있었을 것이다.
 "성장이라……."
 벚꽃의 소녀는 그 말의 의미를 탐닉하는 듯 한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후회하며 살아가는 일상일까……."
 아직 과거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나는 뒤늦게 체감했다.
 아직 변하지 못한 게 있었다. 그때부터 쭉 이어져온 것은 '후회'라는 이름의 족쇄였다.
 그때 더 잘해줄 걸,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걸, 나는 다시금 가슴 속에 되새겼다.
 행복한 건 한순간이고, 그 뒤에는 후회만이 남는다.
 그녀라는 늪에 빠져 살았던 때는, 달콤한 밀월에 삼켜진 채 그걸 깨닫지 못했다.
 "그렇다면, 결국 삶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아요? 무얼 해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니까, 도대체 무엇이 남는 걸까요."
 어쩐지, 철학적인 말을 하고 있다. 나는 그쪽에는 문외한이어서,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대답이라면, 그러했다.
 "…역설적이게도, 추억들이겠지."
 결국, 그것들을 무한히 반복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탄식을 하며, 오열하며, 분노하며, 때로는 행복하게 미소를 짓고, 웃으며 살아간다. 그 모든 걸 받아들이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건가요? 후후……."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끝내는 그러한 결말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만담에 가까운 것이었을까. 아니면 소녀의 심심풀이에 말려들고 만 것일까.
 "언제까지고 여기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곳으로 가볼까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던져오는 그 말에 매혹되어 있었는 지도 모른다. 나는 말없이 소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뒤에서 걷지 말고 제대로 옆으로 와 주세요. 어쩐지 불안해지니까요."
 확실히, 소녀의 뒤를 밟는 듯 한 기분이 들기는 했었다. 다소 어색하기는 했지만, 나는 소녀의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나.
 과거의 기억이 스쳐가서, 감상에 잠긴 채 걷고 있자니 바람이 크게 불어오고, 빛이 바랜 벚꽃들이 길가에 한가득 흩날린다.
 그 모습을, 소녀는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그 모습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할 정도의 감상을 자아냈다.
 어느 샌가, 나도 소녀도 넋을 놓고 벚꽃이 다 가라앉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훗……. 여기 온 보람이 있네요."
 "그런 모양이네."
 앞으로 먼저 몇 걸음을 간 소녀가, 내 쪽을 돌아보며 말한다.
 "결국 벚꽃은 전부 져버리고 말았지만요."
 내 앞으로 다시 떨어진 벚꽃 잎을 집어 들며, 나는 대답한다.
 "하지만, 내년에는 또 새로운 벚꽃이 피어나겠지."
 소녀는, 처음에 봤던 가련한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조금 어두운 느낌의 얼굴이 있었으나,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생글 웃고 있다.
 그렇게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소녀는 돌아간다.
 어딘가 쓸쓸해 보여서 말을 건내볼까 했지만, 나에게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 지 의문이 들어 중간에 포기했다.
 그러던 와중, 저 멀리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벚꽃소녀의 목소리였다.
 "그럼 내년에도 와주실 건가요?"
 미소를 지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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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수한 그녀와 거짓으로 위축된 세상 0 갓카 19.04.03 89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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