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작 완결작

검색결과

연역 너는 캐릭, 나...
연화홍란 [연화서] 전생...
사가 호살인(狐摋人)
데릭콩 우리의 판타지...
데릭콩 연애 시뮬레이...
오라방 신매향 도시괴담
아이크 빛과 어둠의 검사
AlwaysLaugh 설령, 당신이 ...
사가 호살인(狐摋人...
redbead 환생 뒤 전(前...
yooil 살인귀와 귀족...
킴콴퀴 8월 13일의 악...
이것은 나의 ...
전기구구J 행복했어?
넘텐 한국 여고생인...
wani [단편] Black ...
lyan15 검은 천사
Hornia 플레이어들의 ...
토범태영 100층 공략! ...
shiroto 라그나게돈
흰색쥐 1+1=2
reykiel 자고싶은 마왕님
wani [완결]종말에...
앗농 용사 후보생 ...
제목없음 공교롭게도 이...
FlyingPanda 그 인연은 영...
라쿠카라챠 츤데레 여친과...
사츠케 오타쿠 도련님...
사츠케 어비스 인더 ...
wani sseccus
wani 나의 장례식
九尾狐狼 A Cruel Fairy...
reykiel 그럼에도 시간...
九尾狐狼 세상은 나를 ...
Mayo 워르딘 대장정
호떡 밖으로 나가면...
시운 먼 미래의 너...
카사토리00 메이드 여동생...
만기두 난 나니까
갓카 내 모니터 속...
zero000 파동의 악마 ...
yooil 영원히 벗어날...
zerosai 세계의 구원자...
갓카 Nostalgia
이빈나 제발 불러내기...
레시라스 공감 능력 제...
오아메쿠 그 외계소녀의...
Enivia 하나뿐인 여동생
카시코이 세로토닌 1부-...
FlyingPanda 용사님! 제발 좀!
xi7 비(非)속성의 ...
엽토군 블로그
책갈피 타임리버스
할게없소 간을 빼먹어주...
Ksmith 대장장이인 나...
킴콴퀴 디버깅 머신건...
부르프 우르델의 떠돌이
박사능 무능력자 이계...
레시라스 눈물을 먹는 악마
홍차우유 사회인과 이세...
명조디아 먼치킨 학교에...
시운 엇갈린 세계의...
Leafy 암흑면
요리코 너무 뻔한 소...
전파소설가 [식극의 소마]...
카미즈 라그나로크 극
카미도 혼란스러운 거리
컨알 하얀 악마
실버나라 나만 판타지 ...
rlight 지나가던 선비
보닝 신같은 포지션...
air05 하루아침에 마...
잉여포돌이 Re:
살많은빼빼로 자유의 날개
노아카미 Heal Up
살많은빼빼로 억압의 사슬
요리코 이세계 소환! ...
적색소음 나는 결국, 아...
봄날상어 우리들의 일상...
사가 성불사
노가리 미래에서 미래...
똑같은매일 강철 심장의 고동
승다르크 카르페 디엠
멘카로건 Let Us [Rise ...
살많은빼빼로 Life with dead
랑이초록 지구스토리: ...
joseu 생판 몰랐던 ...
쥐며느리 머그속 그녀의...
살많은빼빼로 학생의 반란
초록만두 창밖으로 뛰어...
joseu 생미부
박사능 흉터 새기는 남자
주렁이 이세계 직업에...
월야야 노 네임-제미니-
호치 사랑하는 나의...
레드트리 반인반요
갓카 단편 모음
오얏 고코미의 모험
책갈피 오늘의 꽃을 ...
코노미카 우리 동아리에...
무능력자 이계 생존기 by 박사능

아버지는 대학교수, 어머니는 백화점의 매장 매니저, 누나는 한국질병연구소의 임상실험자. 하지만 그것도 다 원래 세상에서의 이야기.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가 특별취급 받는 이 세상에서 예인은 빈민으로 시작한다.

[퓨전,판타지]
총 편수 2 / 총 관심작 수 0 / 총 추천수 0 / 총 용량 28.381Kbytes
13 7년 묵은 박사능  lv 13 60.5714285714% / 9948 글 642 | 댓글 669  
관련글
  #1 Bad Blood
0명 참여 별점
 
  13 박사능[nerusion031]
조회 531    추천 0   덧글 0    / 2019.11.27 22:13:00

예인이 눈을 뜬 것은 비가 모두 그치고, 짙은 밤이 되어서였다.

두 다리 뻗기만 하면 가득 차는 판잣집. 밤의 찬 공기가 슬그머니 판자 틈 사이로 새어들어와 가뜩이나 젖어있던 예인의 몸을 더욱 차갑게 식혀왔다.

그렇게나 후드려 맞은 터라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데다, 눈가에 생긴 상처에서 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지만 붓기가 상당해서 한쪽 눈의 시야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서 움직여야 한다. 벌써 일주일 가깝게 제대로 먹은 것이 없다. 이대로 다시 잠을 잤다가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아픈 몸을 억지로 움직여서 판잣집 밖으로 나오자 낮에 보던 하늘과는 다르게 맑게 개어서 쏟아질 것 같이 별이 가득한 하늘이 보였다. 저 별 중에 자신이 살던 태양계가 있을까, 잠깐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본 예인은 깊은 한숨과 함께 번화가를 바라봤다. 아직은 늦은 밤이 아닌 듯, 번화가 쪽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가볼까.”

발목이 시큰거렸지만 원래의 세계에 있었을 때도 자주 발목을 삐곤 했던 예인에겐 익숙한 아픔이었다. 추레한 몰골에 절뚝거리기까지 하면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예인을 향한 시선이 더욱 더 썩어 들어갈 것이 분명하기에, 예인은 의식적으로 아픔을 무시하려 했지만 조금씩 절뚝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염좌의 아픔은 다칠 당시보다 몇 시간 정도 지난 뒤에가 더 아프다. 그저 절뚝거리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기면 그 통증은 배가 된다. 그 덕에 예인은 평소라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에 번화가가 아닌 번화가와 빈민가 사이의 거주구역에서 몇 번이나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앉아 있어야만 했다.

거주구역 사이사이 자리 잡은 어두운 골목길. 눈에 띄어봤자 좋은 대접을 못받을 것을 알기에 예인은 그 어둠을 친구삼아 앉아 있었다. 내일이 주말인지, 아니면 휴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두운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오가고 있었다.

골목길의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훔쳐보던 예인은 침울해지려는 기분을 억지로 억눌렀다. 생각 같아서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었지만, 담배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끼지 않으면 안 된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를 이용해 담배 피우는 시늉이라도 하자.

후우.”

연기 따위는 나지 않는 상상흡연지만, 그래도 기분이 최악까지 떨어지는 것을 막아 주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약간의 자괴감만 예인의 속을 긁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그냥 염좌는 아닌 것 같은데.”

다 헤진 바짓단 사이로 발목을 슬슬 문지르자 퉁퉁 부어오른 윤곽이 느껴졌다. 염좌는 염좌지만 아무래도 근육이 심하게 다친 모양이다. 그래도 부러지지 않는 것이 어디냐고 약간의 자조 섞인 실소와 함께 예인은 상상흡연을 위해 주운 나뭇가지를 튕겨 버렸다. 통증도 어느정도 가라앉았겠다. 다시 번화가를 향해갈 시간이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쨍그랑 하고, 예인의 바로 위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무언가가 툭하고 떨어졌다.

털퍽. 하고 둔한 소리와 함께 떨어진 그것은 제법 묵직해 보이는 가죽주머니였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 건가.

예인은 천천히 가죽주머니를 집어 들고 입구를 막고 있는 끈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이게 다 뭐야.”

어두운 골목길을 어스름하게 비추는 빛. 그 옅은 빛만으로도 일곱빛깔로 반짝이는 보석들이 그득하게 들어있었다.

예인은 보석에 관해서는 그다지 빠삭하지 않다. 그가 알고 있는 보석관련 지식이라면 볼펜으로 그은 일직선 위에 진품 다이아몬드를 올려놓았을 때와 가짜 다이아몬드를 올리는 것으로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 세계에서 보석이 귀한 것은 알고 있다. 분명히 이거 하나만 몰래 갖다 판다고 해도 분명 수 년 분의 먹거리가 생길 것이다.

아니, 어쩌면 평생 놀고먹을 수도 있을 거야.’

꿀꺽하고 마른침이 예인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이렇게 보석이 많은데 하나 쯤 가져가도 되지 않을까? 언젠가 피시방에서 빈 옆자리에 놓인 누구 것인지 모를 지갑을 발견했을 때처럼 갈등의 불길이 일었다.

많은 보석. 이 중에서 하나 정도쯤 없어진다고 해도 이 보석의 주인은 신경쓰지도 않을 것이다. 단지 내가 보석을 하나 잘못 세었던 걸까? 하고 넘길지도 모른다. 그 때 피시방에서 안에 있는 돈만 빼고 지갑은 어딘가에 버렸던 것처럼 하면 그저 그렇게 끝날 것이다. 주인은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의 행방을 모른 채 넘길 것이고, 예인 역시 주인이 찾으러 올 것이라는 불안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예인은 슬그머니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딱 보기에 적당한 크기의 보석을 하나 꺼내 들었다. 사파이어처럼 푸른색을 머금은 보석. 보석 감정 따윈 배운 적도 없고 흥미도 없는 그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말 그대로의 보석이었다. 이거 하나라면. 적어도 생판 모르는 이런 세계에 떨어진 것에 대한 보상정도는 될 것이다.

잠시 예인은 보석의 푸른빛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보석을 주머니에 넣고 끈을 묶었다.

욕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고민 역시 계속 되었다. 하지만 그 고민의 끝에 예인은 하나의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과연 이 세상에서 내가 보석을 가져다 판다고 하면, 그것은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

검은 머리를 지닌 것 밖에 없는 예인이 보석을 가져가 보석상에 판다? 가장 먼저 그들이 보석을 제대로 감정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추레한 몰골로 보석을 판다면 의심의 눈빛이 가장 먼저 생겨날 것이다. 만에 하나 의심 받을 일 없이 제대로 보석을 감정 받아 적당한 가격의 금액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문제다. 툭하면 달려드는 이름 모를 패거리들, 그를 바라보는 혐오의 시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리다. 일주일을 굶고 병들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예인은 그들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미련을 버리지 못한 눈빛으로 주머니를 바라보던 예인은 이내 포기하고 주머니를 떨어졌던 그 자리에 다시 던졌다.

능력이 없으면 가져서는 안 된다. 지킬 수 없는 부는 결국 올가미다. 피시방 때에는 소년법으로 보호라도 받을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예인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이제 슬슬 시내가 한산해 질 때다. 운이 좋으면 어딘가 식당 뒤편에서 남은 음식이라도 주워 먹을 수 있겠지.

비참함에 눈물이 새어나왔다.

그다지 가난한 집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대학 교수, 어머니는 백화점의 선글라스 매장 매니저, 누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질병관리센터에서 임상실험 담당자로 일했고 예인 자신도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 작은 회사에서 월급 260만 원을 받는 집안이었으니까. 가끔씩 마이너스가 나기도 했지만 적어도 먹을 걱정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랬던 자신이 이렇게 비참해질 줄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는 비참함이 있더라도 살아야 했다. 살아야만 다음을 노릴 수 있으니까.

이것은 비참함이 아니라 다음을 노리기 위한 생존의 발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예인의 걸음이 한 층 당당해졌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번화가의 뒷골목. 출발 할 때만 해도 밝았지만 도착하니 어둑어둑한 것이 벌써 여기저기 문을 닫기 시작하는 가게가 생기고 있었다.

그동안 여기저기 헤매고, 몰매를 맞고, 내쫓기는 생활을 하면서도 알아낸 이 동네에서 가장 큰 고급 식당. 예인이 향하는 곳은 그곳이었다. 버려진 음식이라도 고급 음식을 먹겠다는 아집이 아니다. 이곳은 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세계의 부자들도 허영심이 없지는 않겠지만 유독 먹을 것에는 남김이 없다. 하지만 이곳이 어딘가. 이 동네에서도 유별난 고급 식당이다. 예인의 계산이 맞다면 오늘은 매 주 있는 큰 파티가 열리는 날이다. 파티가 열린 만큼 남은 것들도 제법 있을 터다.

검은 머리칼을 들키지 않기 위해 솔리드 뭐시기처럼 그림자 속에 숨어가며 향한 식당의 뒤편에는 이미 예인의 친구들이 모여서 파티를 열고 있었다. 어디에나 있는 도둑고양이들. 그들이 이미 버려진 봉투를 뜯고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스테이크조각이나 생선조각들을 꺼내 먹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고양이들은 좋다. 동물들은 좋다. 예인과 이 세상 사람들이 말이 통하지 않으면 적이나 장난감이 되는 것과는 다르게 동물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애정과 진심어린 마음을 보여주면 언제나 아군이 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력으로 작용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홀로 동떨어진 예인에게는 큰 위안거리다.

좀만 비켜봐. 나도 좀 먹자.”

도둑고양이 무리의 대장이 흘깃 예인을 보고는 익숙한 듯 다시 버려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가 있건 없건 상관없다는 뜻. 처음에 이곳을 알아내고 저 사이에 끼어들려 했을 때 얼마나 많이 할퀴어졌는지. 그 흉터가 아직까지 예인의 팔꿈치와 턱에 남아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대우가 좋아졌다.

고양이들 한정이지만.

고양이들과 함께 봉투를 뒤적이자 몇 가지 먹을 만한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낮에 비가 내렸음에도 날씨가 선선해 심하게 상하지 않은 샐러드가 들은 봉투부터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한 입만 먹고 버려버린 스테이크조각 여러 개, 이름은 모르겠지만 씹어보니 닭 가슴살처럼 퍽퍽한 식감의 고기 몇 점과 오늘따라 운이 따라줬는지 멀쩡한 통조림도 하나 굴러 나왔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오늘은 만찬이로구나.

어디에나 있고 익숙한 고양이들과는 다르게 검은 머리의 예인은 극도로 눈에 띄기에 그는 그 음식들을 가지고 멀지 않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어느 것 하나 쾌쾌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없었지만 그런 것 따위 예인에게 있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기를 먼저 먹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굶은 상태에서 대뜸 고기를 먼저 먹으면 위가 버티지 못하고 다 게워버린다는 것을 지난 한 달간의 거지생활로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때 얼마나 아까운 거였는데, 토해낸 것도 도로 다시 주워 먹었었지.’

예인은 샐러드를 꼭꼭 씹으면서 그때의 일을 회상했다. 그때 이후로 먹을 것은 가리지 않되 늘 샐러드 같은 식물성 음식을 먼저 꼭꼭 씹어 먹고 먹게 되었다. 유치원 때 선생님이 들 말했었던 백 번 씹고 삼키기 운동을 이제외서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아 웃음이 새어나왔다.

샐러드의 뒤를 이어 새고기 같은 고기와 스테이크마저 다 먹은 뒤, 예인은 다시 그림자에서 나와 고양이들 틈으로 들어갔다. 지금 먹으면 또 언제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 과식을 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 생각했지만 또 다음 일주일 동안 무엇을 얼마나 먹을 수 있을지 모르기에 그는 최대한 많은 양을 먹고 비축해 둘 생각이었다.

먹고, 다시 가서 음식을 찾아오는 과정을 두 번 정도 반복하니 더 이상 고기 한 점 못 들어갈 정도로 배가 찼다. 이렇게 먹어 본 적도 꽤나 오랜만이다. 저번 주에는 얼마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못해도 삼일 정도는 배가 고프지 않을 것 같았다.

시원하게 맥주 한 잔 마시고 싶다.”

배가 부르니 배부른 소리가 나온다.

원래 세상에서도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지만 이렇게 고기를 먹을 때는 늘 맥주 한 두잔을 걸치곤 했었지만, 여기서는 생각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부른 배를 쓰다듬으면서 예인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이제 두 까치.’

라이터에 찼던 물은 다 빠졌는지 불은 쉽게 붙었다.

눈앞에는 화려한 식당. 자신은 그 식당 뒷골목 그림자 속. 버려진 음식이라도 배부르게 먹고 담배 한 개비의 여유를 느끼니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 발목의 욱신거림은 여전했고 온 몸이 아픈 것도 여전했다.

.”

눈앞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 싸늘한 날에 아지랑이일 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현기증인 모양이다.

세상에 현기증이라니. 그 흔한 기립성저혈압도 없던 난데.”

아무래도 몸이 약해지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이마에 손을 대보니 싸늘한 손바닥에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열도 조금 있는 모양이다.

감기.”

큰일이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발 빠르게 뛰어다녀도 모자랄 판에 감기라니. 가뜩이나 허약해진 몸뚱이라서 폐렴으로 번지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다.

세상 망할.”

배도 채웠겠다. 담배도 필터까지 아낌없이 쭉쭉 빨아들였겠다. 한시라도 빨리 보금자리로 돌아가서 조금이라도 쉬어야 한다.

예인은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까지 오느라 상당히 시간을 잡아먹었다. 분명히 돌아갈 때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릴 터. 하지만 그대로 들어가 이불 한 장 없는 바닥에서 잔다면 감기는 낫질 않고 더 심해질 것이다.

가면서 종이박스라도 주워 가야지.”

원래대로라면 보금자리를 얻었을 때부터 했어야 했다. 하지만 먹는 것이 급해 차일피일 미루고 또 미루다가 이제야 보온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늦었지만, 아직까지는 괜찮다.

예인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식당에 올 때처럼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천천히.

무언가를 먹으니 기운이 생겼다. 식당으로 향할 때보다 조금 더 빠르게 번화가를 지나칠 수 있었다. 하지만 발목이 여전히 욱신거리는 통에 예인은 이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 여긴 거기네.”

불과 몇 십 분 전에 보석이 한가득 차있던 주머니를 본 곳이다. 예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보석을 보았던 곳으로 향했다.

하아. 뭐 그렇겠지.”

보석 주머니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주인이 찾아갔거나 예인 같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부랑자가 챙겨갔겠지. 만일 누군가가 챙겨간 거라면 정말 부러운 상황이다. 그처럼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가 아닐 테니까 분명히 제대로 된 감정을 받고 의미 없이 두드려 맞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에라 모르겠다.”

이미 지난 일이다. 예인은 골목길 벽에 몸을 기대 앉히고 깊은 한 숨을 쉬었다. 하지만 한 숨 속에 담배연기가 없으니 한 숨을 쉰 것 같지가 않았다.

진짜 마지막으로 눈 딱 감고 두 개비 중 하나를 꺼내 피울까 곰곰이 고민하던 예인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담배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나쁘진 않다. 기호식품이니까. 하지만 이 담배마저 없어진다면 정말 힘들 때 그를 위로해 줄 것이 하나도 없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담배 좀 줄이는 거였는데. 그랬다면 같은 담배로도 더 길게 위로 받을 수 있었을 텐데.

~.”

마리아나 해구마냥 깊고 어두운 한 숨이 새어나왔다.

별은 많네.”

한 숨의 반동으로 시선을 애써 하늘 위로 올리자 골목길 좁은 하늘에 수놓아진 별 가루들이 보였다.

그대여 나의 어린애~ 그대는 휘파람 휘이히~ 불며 떠나가 버렸네~ 그대여 나의 장미여~”

그 하늘을 보며 예인은 조용히 오래된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에게 애늙은이라면서 놀림 받게 만든 노래. 하지만 노래는 이내 들린 덜컹 하는 소리에 뚝 끊겼다.

와 씨 깜짝이야.”

저 앞에서 반짝이는 두 개의 눈동자가 보이고, 이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예인의 검은 머리처럼 유난히 빛나는 검은 털을 가진 고양이였다.

야 씨, 사람 깜짝 놀라게 하지 좀 말아라.”

자신도 저렇게 그림자에서 스르륵 나타나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걸까? 약간의 호기심이 들었지만 예인은 굳이 시험해보지 않기로 했다. 가뜩이나 검은 머리라고 검은 눈동자라고 사람들에게 배척받는 중인데 그런 쓸데없는 짓으로 더욱 적대감을 들게 하면 안 된다.

이리와 나비야. 우쭈쭈.”

동지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며 예인은 손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하지만 고양이란 생물이 어떤 생물인가. 도도한 듯 멍청하고 늘 청개구리 근성으로 바쁘거나 무언가 할 일에 열중할 때만 쪼르르 와서는 방해하는 그런 생물 아닌가. 나비(가칭)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털을 고르기만 했다.

에라이 망할 놈아. 좀 오라면 와라. 쓰다듬어 준다니까?”

슬금슬금 엉덩이로 거리를 좁히면 그만큼 다시 멀어지고, 다시 다가가고 다시 멀어지고를 두세 번 반복했다. 아예 달아나지 않는 것은 좋지만 그럴거면 차라리 다가와서 부비적거리면 어디가 덧나나. 너나 나나 서로 검둥이라서 동지라고 생각했건만.

, 싫으면 말고.”

예인은 혓바닥을 차고 까딱이던 손을 거뒀다.

왠지 옆에 동지가 있지만 다시 혼자가 된 느낌이다.

하아.”

다시 한 번 깊고 어두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내 다시 벽을 짚고 절뚝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쉴 만큼 쉬었겠다. 한시라도 빨리 박스나 찾아서 보금자리로 돌아가야지.

이곳에서 빈민가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하지만 보금자리로 들어가기 전에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줄 것을 찾아야 했기에, 예인은 곧바로 건물들 틈틈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닌 덕에 어두워도 어디로 향하는지는 훤하다.

대박이다!”

생각 같아서는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으슬으슬 떨리고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며 여기저기 돌아다닌 결과. 몇 분 되지 않아 예인은 자신을 따뜻하게 해 줄 것을 찾았다. 박스라도 주우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두툼한 이불. 그것도 좋은 향기가 남아 있는 이불이었다. 누군가가 빨래를 해서 널었지만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것 같았다.

보석 같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환전과 증명이 필요한 것이라면 가질 수야 없지만, 이런 이불이라면 이야기는 또 다르다.

누구네 이불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예인은 아무 방향을 향해 꾸벅 인사하고 이불을 몸에 둘렀다. 이불 속은 약간 젖어 있었지만 이것만이라도 감지덕지다.

이불을 몸에 두르니 조금씩 따뜻해졌다. , 이제 보금자리로 가자.

예인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발목은 여전히 아팠다.



태그
13 7년 묵은 박사능  lv 13 60.5714285714% / 9948 글 642 | 댓글 669  

게시물 주소 http://seednovel.com/pb/92924
트랙백 주소 http://seednovel.com/pb/tb/92924
20784 bytes / 180.36.57.34
목록

자유연재 검색된 1 / 1 Page, Total 2 Documents
번호 제목 이름 시간 조회 추천
2 #1 Bad Blood 13 박사능 19.11.27 532 0
1 #1 Bad Blood 13 박사능 19.11.27 509 0
전체목록 < 1 >


Page loading time:0.03s, Powered by pimangBoard v3
회원가입 | 정보찾기

연재

자유연재

공모전연재

베스트 작품

작품 홍보


▶ Today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