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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온갖 의뢰와 잡일 따위를 도맡아 하는 조직의 통칭, 길드. 바로 여기에도 하나의 길드가 있다. 그 이름은, 어스. 매일같이 적자에 시달리는 길드의 상황으로 인해, 간부들은 골머리를 썩히고 있지만, 길드 마스터의 상태가?! 길드 어스에 어서 오세요!

[퓨전,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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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대장장이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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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갓카[anileonhart]
조회 742    추천 0   덧글 0    / 2020.02.21 09:47:42
16화.대장장이 할아버지

 "그렇군, 카로스…인가?"
 그 옆자리에서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사내─페리스가 말한다.
 "네 녀석, 저 녀석을 알고 있는 거냐?!"
 옆에서 카로스의 이름이 나오자, 유샌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물었다.
 어째서 그 이름이 나오는 것인가─설마 어스 소속인 길드원인가?
 그렇다면 이 녀석은 적이다─.
 "
…알고 있지. 저 녀석의 이름을 어떻게 잊겠어? 우리 길드를 이 꼴로 만든 녀석인데──."
 아니다, 어쩌면 동류일지도 모른다.
 유샌은 페리스의 앞에 나직이 섰다. 페리스의 표정은 후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너도 저 녀석과 악연이 있는 거냐?"
 그 말에 페리스가 코웃음을 치며 손을 내 저었다.
 "…악연? 악연 수준이 아니야. 저 녀석의 길드 '어스'와 우리 길드는 공존할 수 없어. 둘 중 한 곳이 멸망해야만 한다. 난 우리 길드를 이 꼴로 만든 저 녀석을─언젠가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
 그것은 떠올리자면, 너무나 잔혹했던 기억이었다.
 어스와 에인헤야르의 전쟁은 서로의 모든 걸 쏟아 부으며 말 그대로 혈전을 벌였고, 양측 다 멸망을 각오하고 끝까지 싸움에 임했었다.
 손해를 입은 것은 에인헤야르도, 어스도 마찬가지, 마지막으로 싸운 그 언덕의 전투에서─길드의 수장 메르는 마침내 카로스의 손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이후로, 에인헤야르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서로 연락조차 닿지 않아 그대로 와해, 남은 건 페리스와 일부 간부들뿐이었다.
 그마저도, 수가 부족하여, 복수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허나, 어떻게 눈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겠는가.
 우리 길드를 무너뜨린 어스가 나날이 번창해나가는 모습을, 어떻게 맨 눈으로 볼 수 있겠는가.
 매일같이 이를 갈며, 흩어진 에인헤야르의 잔존 길드원들을 모으며─페리스는 끝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왔다.
 그 고통에서 벗어날 해결책은 단 하나, 카로스를 암살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괴로운 시간을 보내지는 않으리라고─페리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신원을 알 수 없던 누군가에게서 카로스를 암살하라는 의뢰가 내려왔다.
 직접 접선한 그녀는─, 생각치도 못했던 인물이었다.
 유샌은 페리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길드도 어스한테 당한 거냐?"
 페리스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오래 전에 길드 전쟁으로 멸망한 길드다. 우린, 저 녀석의 길드와 전력을 다해 싸웠다─. 그리고, 패배했지. 그 치욕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유샌은 살짝 기겁하는 표정으로 물러섰다.
 고작해야 자신이 아끼는 권총이 망가진 수준인 자신과는 달리 이 사내는 진심으로 어스를 향해 이를 갈고 있었다.
 길드 전쟁이라, 우리 길드에서 하는 길드 전쟁과는 규모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멸망이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어스와 싸웠단 말인가.
 길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상당한 원한이 있지 않는 이상 보통 그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지는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저 녀석을 노리고 있다면, 우린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어때, 길드가 없다면 우리 길드에 들어오는 건 어때?"
 페리스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 서있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말을 잘못했군. 우리 길드는 멸망하지 않았어. 간부인 내가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어스의 관한 정보들이 속속들이 넘어오고 있지. 조만간 때가 되면… 우린 재기하여 어스를 무너뜨릴 것이다."
 페리스의 말에는 거짓하나 섞이지 않았다. 그 말 전부가 진심이라는 것이, 사내가 내뿜는 기백에서 느껴졌다.
 어스를 무너뜨린다는 말 또한, 진심으로 목표로 삼은 것이 분명하다.
 유샌은 기겁하며 물러섰다.
 이 사내는 복수귀인가─,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
 그 자리에 굳어버린 유샌을 두고, 페리스는 군중을 헤치며 광장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갔다.
 "…그 전에 카로스, 네 녀석은 내 손으로 죽여주마……. 그 다음 어스를 산산이 부숴주지……."

 * * *

 비록, 카로스의 누명은 풀리지 않았지만─아스트리와의 길드 대전은 비교적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일전에 있었던 명예 결투를 제외하면, 카로스에게는 첫 실전이나 다름없었다.
 "흐아아… 어째 조금 피곤하다….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저녁이나 먹으러 갈래?"
 셋이서 나란히 길드로 돌아오던 와중, 문득 로리먼트가 미스틸테인을 꼭 쥔 채 그런 말을 꺼냈다.
 "상관은 없다만…… 준, 너는?"
 "난 됐다."
 준은 다소 차가운 어조로 그렇게 내뱉고는 갈림길 너머로 사라져갔다. 어째서인지 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져버리는 준을 보며, 로리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로리먼트의 앞에서 쿵쿵거리며 길이 울려온다.
 카로스도, 로리먼트도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저 앞에서 거대한 실루엣 하나가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대체… 뭐지……?"
 "…카…카?"
 겁먹은 듯, 로리먼트가 슬쩍 카로스의 옷깃을 붙잡았다.
 바닥이 울리는 소리가 커짐에 따라 멀리서 봐도 크던 실루엣이 가까워지며 점차 커져간다.
 그리고, 가로등의 불빛에 비추어 선 그 거대한 실루엣의 정체는─.
 "카로스랑 로리먼트구나.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니?"
 나긋나긋하고, 무척이나 익숙한, 정겨운 목소리였다─.
 "대장장이 할아버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 카로스의 옆에 서있던 로리먼트는 대장장이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작은 소녀를 뒤늦게 발견했다.
 "안녕? 이름이 뭐야?"
 소녀의 앞에 눈높이를 맞추며 앉은 채, 로리먼트는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이는 7살 정도일까, 챙이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쓴 채─낯을 가리듯 소녀는 대장장이 할아버지의 뒤로 숨어 고개를 빼꼼 내밀며 수줍게 말했다.
 "…소정이……."
 약간 혀짤배기소리가 섞인 그 목소리에, 로리먼트의 눈이 빛난다. 마치 눈빛으로─귀여워!─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보였다.
 "소정이구나? 할아버지랑 손잡고 어디 가는 길이야?"
 "저녁 먹으러… 가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로리먼트가 무서웠는지 대장장이 할아버지의 뒤로 쏙 숨었다. 로리먼트는 그런 소정이의 모습도 귀여워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장장이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소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투박한 손길에 소정이가 약간 움찔거렸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대장장이 할아버지에게 잔뜩 귀여움을 받는다.
 "…낯을 많이 가리는구나. 우리 손녀란다."
 확실히, 자세히 살펴보니 닮은 바가 없지 않아 있었다.
 한동안 소정이의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던 로리먼트는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아하하…, 대장장이 할아버지도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하시는 건 어때요?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다리를 붙잡고 매달려 있던 소정이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위를 올려다본다.
 불안해하는 소정이에게, 로리먼트가 한걸음 다가서며 다정하게 말한다.
 "소정이도 같이 갈까……?"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소정이의 눈치를 살피자, 소정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까처럼 겁먹은 기색은 아니었다.
 "소정이도 좋다고 하는구나. 하하하─."
 그렇게 네 사람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언뜻 보기에는, 가족처럼 보이는 네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 * *

 "주문은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깔끔한 복장을 차려입은 웨이트리스가 한손으로 능숙하게 물을 따른다.
 "으음……, 전 까르보나라로 주세요!"
 카로스는 아직 메뉴판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이런 가게에는 익숙한 듯 로리먼트가 단 3초도 안되서 주문한다.
 "카카, 너는?"
 "잠시만."
 이런 자리에는 익숙하지 않은 듯 카로스가 한참 동안 메뉴판을 펼친 채 굳어있다. 몇 분 동안 부동자세로 앉아있는 카로스를 뾰로통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로리먼트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꿔 미소를 지으며 대장장이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어느 걸로 주문하실 거예요?"
 "고기."
 간결하면서도 단호한 어조에 카로스가 흠칫 놀란다. 하긴, 저 정도의 근육을 유지하려면 상당한 영양소가 필요할 것이다.
 "그럼 이거 어떠세요?"
 로리먼트가 가리킨 건 안심 스테이크였다.
 "안심 스테이크가 크기는 작지만 부드럽거든요."
 "너무 작은 것 같구나. 조금 더 큰 고기는 없는 거냐?"
 "그러면 이 티본스테이크는 어떠세요?"
 "티본스테이크? 그건 어떤 요리지?"
 "아 티본스테이크가 여기 가운데 T자 모양의 뼈 보이시죠?"
 로리먼트가 메뉴판 중앙의 사진을 짚으며 조목조목 설명을 시작한다.
 "그 사이를 중심으로 나누어진 고기인데, 안심보다는 덜하지만 부드럽고 양도 꽤 많은 편이에요"
 팔짱을 낀 채 설명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던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그게 좋다며 티본스테이크를 주문하고, 옆에서 눈을 빛내던 소정이도 같은 걸 주문했다.
 모두가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는 상황, 단 한 명이 아직도 메뉴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시선은, 가만히 두지 못한 채 메뉴판 이곳저곳을 헤집듯이 살피고 있었다.
 "카카, 설마 아직도 못 골랐어?"
 웨이트리스도 이런 손님은 익숙지 않은 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그 옆에 앉아있던 카로스가 한참동안 주문 내역서를 훑어보고서야 결정을 내린다.
 "으음…… 나도 그냥 까르보나라로 해줘."
 웨이트리스가 그제야 눈을 반짝 빛내며 한층 업된 목소리로 주문 내역을 확인했다.
 "티본스테이크 둘, 까르보나라 둘, 맞으시죠?"
 카로스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웨이트리스가 종종걸음으로 다른 테이블로 향하고,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고맙구나. 이렇게 좋은 음식점에도 데려와 주고 말이다."
 잠시 후─.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아직 스테이크에는 익숙하지 않은 듯 소정이가 쩔쩔매며 스테이크를 썰고, 그 옆의 대장장이 할아버지는 큼지막하게 썰어내고 있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소정이가 대장장이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자,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너그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리 주련."
 힘이 없어 좀처럼 썰지 못하는 소정이와는 달리, 대장장이 할아버지는 나름 능숙한 자세로 스테이크를 잘게 자른다. 그 모습에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은 로리먼트가 눈빛으로 카로스에게 말했다.
 「저기, 카카. 저거 지금 보니까…….」
 카로스 또한 같은 걸 느낀 듯, 곧바로 응답한다.
 「응, 맞아. 저거……, 흡사 검을 제련하는 듯한…….」
 적당히 힘을 조절하고, 타이밍에 맞춰 썰어내는 모습이 대장간에서 일하시던 모습과 겹쳐보였다. 걸걸하게 웃는 할아버지의 웃음소리는 덤이었다.
 "레드문과 준 녀석은 최근에 예민해 보이더구나. 많이 피곤한가본데 카로스야, 로리먼트야, 너희는 괜찮느냐?"
 멍하니 대장장이 할아버지의 스테이크 썰기를 보고 있던 카로스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적당히 웃어넘겼고, 로리먼트는 그런 카로스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카카가 오고나서 처리할 일이 늘었으니까요. 카카는 괜히 일만 벌이는 모양이고, 또 카카는 정작 중요한 일은 쏙 빼놓고 안 하고 있고……, 결론은 카카 때문에 일이 늘어난 것만 같아요."
 옆에 앉아있던 카로스는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자신을 쿡쿡 찔러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하하하……."
 째릿─.
 "크흠흠……."
 긁어내는 듯한 로리먼트의 시선이 느껴져, 카로스는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멈추었다.
 "…이…… 일단 식사부터 하고……!"
 황급히 화제를 돌리고, 카로스는 성급하게 포크를 붙잡았다. 포크를 든 오른손에는 아직도 밴드가 붙어있었다.
 밴드를 본 로리먼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카로스를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소정이에게 다시 눈길을 돌렸다.
 하필이면 대장장이 할아버지 옆에 앉아 너무나 작아 보이는 소정이는, 서투른 동작으로 스테이크를 집어 입가에 가져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던 로리먼트의 스마트폰이 고요히 진동한다.
 들키지 않게 슬쩍 열어 확인해보자, 레드문에게서 한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내일, 회의가 있다. 중요한 회의니까 꼭 참석하도록 해.」
 메시지를 창을 밀어 닫으며, 로리먼트는 다시 포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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