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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온갖 의뢰와 잡일 따위를 도맡아 하는 조직의 통칭, 길드. 바로 여기에도 하나의 길드가 있다. 그 이름은, 어스. 매일같이 적자에 시달리는 길드의 상황으로 인해, 간부들은 골머리를 썩히고 있지만, 길드 마스터의 상태가?! 길드 어스에 어서 오세요!

[퓨전,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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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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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갓카[anileonhart]
조회 736    추천 0   덧글 0    / 2020.02.26 11:16:40
17화.이사회

 회의실의 원탁은 한 자리만을 남기고 꽉 들어찼다.
 준과 답위, 그리고 길드를 이끌어가는 이사들이 한 자리에 앉아있고, 끝자락에는 레드문이 앉아있다.
 그 반대쪽 끝자락은 공석으로─, 길드 마스터의 자리였다.
 전원이 모인 것을 확인하고, 홀대리가 레드문에게 시선을 건넨다.
 홀대리와 시선을 주고받은 레드문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로젝터가 쏘아지고, 최근의 어스의 경제상황을 분석한 데이터가 보여진다.
 레드문은 그 중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이 시점을 기준으로 어스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으나, 반대로 길드의 신뢰도는 점차 하락하고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있던 로리먼트는 안절부절 못하며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죠. 길드 마스터의 부재로 인함입니다. 대외적인 활동에 길드 마스터 대신, 저나 답위가 나섰죠. 일 처리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뢰도는 점점 떨어져갑니다. 왜 어스의 '길드 마스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가 핵심 문제였죠."
 그때, 앉아있던 중년 이사 한 명이 탁자를 치며 노성을 냈다.
 "…길드 마스터는 이 상황에 대체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이런 상황에 이 회의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니요! 저희 부서는 이번 건으로 손해가 막심합니다! …아무튼 빠른 대책이 시급합니다. 레드문씨, 길드 마스터가 사라진 지 오늘로써 대체 며칠 째입니까? 무려 2년이 넘었습니다! 생존조차 확인되지 않는 길드 마스터를 언제까지 이대로 두고만 보실 생각입니까?"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레드문님도 그 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니까요."
 홀대리의 주의에, 중년 이사가 자리에 앉으며 말한다.
 "홀대리도 고생이 많아. 자, 그럼 어디 들어나 봅시다. 레드문씨?"
 준은 그저 잠자코 앉아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나 했더니 결국, 결론은 하나다. 이 녀석은 카로스를 몰아내려고 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을─왜 굳이 돌려 말하는지 준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 옆에 앉은 답위 또한,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레드문은 그저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잘못한 게 있다면 카로스 쪽이 맞다고─답위는 생각했다.
 다만 맞은편에 앉은 로리먼트는 마침내 참지 못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외쳤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이런 중대한 회의가 있는데 카카한테 연락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카로스와 같이 있던 자기 자신도 찔리는 구석이 있었지만, 틀림없이 카로스에게도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작 문자는 카로스를 제외한 모두에게 전해졌다. 대놓고 무시하다니, 이건 불공평한 처사다.
 "아리엔느씨, 자리에 앉아 주시길 바랍니다."
 "로리먼트라고 부르라고 말 했잖아!"
 발끈하여 외치면서도, 로리먼트는 자리에 앉았지만, 무언가 떠올랐는지 곧바로 다시 일어섰다.
 "아무튼 이건 사기야, 사기! 어떻게 길드 마스터인 카카만 쏙 빼놓고 회의를 진행시킬 수 있는 거야? 난 반대야! 이 회의에서 어떤 결의가 나오건 무효라고 무효!"
 도저히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 없었다.
 어떻게 카로스한테 이렇게 대할 수가 있는지, 로리먼트는 레드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로리먼트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을 나섰다.
 레드문은 그런 로리먼트를 그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래, 아직은 이를지도 모르겠네. 녀석을 길드 마스터에서 축출하려면 조금 더……."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레드문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나저나, 최근 길드에서 카로스 씨를 봤다는 목격자가 있는데 만약 진짜라면 로리먼트씨 말 대로 카로스씨 또한 알 권리는 있다고 봅니다."
 "대체 어디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신 거죠? 카로스 씨가 길드에 돌아오셨다고요? 대체 카로스 씨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로리먼트가 나가자,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이래서야 더는 회의를 진행할 수 없겠다고─레드문은 피식 웃으며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 그 녀석은 지금……."
 마지막으로 본 카로스는 수련장에 틀어박혀 있었다. 웬일인지 쉴 새 없이 샌드백과 수련용 더미를 치며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레드문이 조용히 읊조리는 말이 묻히자, 레드문은 탁자를 치며 말했다.
 "이번 회의의 목적은 사전에 공지했다시피 다들 아시겠죠. 길드 마스터를 축출하고 새로운 길드 마스터를 뽑는 안 입니다. 자세한 결의는 다음 회의, 창립 기념일 이후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
 "─나 또한, 카로스를 축출하는데 반대한다."
 레드문의 말을 끊으며 어디선가 그런 소리가 들려와, 레드문은 문가를 돌아보았다.
 "…세르니아?"
 회의실 문가에 서있는 정장 차림의 10대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소녀─'세르니아·블러디레인'은 후훗, 하고 웃으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곱게 기른 금발머리가 한순간 찰랑거리고, 붉은 눈동자가 선명히 그 안광을 뿜어낸다.
 "네가 왜 이 자리에 있지? 세르니아, 널 초대한 기억은 없는데?"
 레드문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인물은 어스 내부에 거의 없었다.
 "나에게 이사회에 참석할 권한을 준 건 다름 아닌 네놈이 아니었느냐?"
 그녀는, 세르니아는 어스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어스에 출입이 가능한 건, 그녀의 길드가 어스의 산하에 속해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을 준 것은, 다름 아닌 레드문이다. 그것이 이렇게 악용되어 버리고 말았다.
 '레드문, 네 녀석의 뜻대로 둘 생각은 없다─.'
 빠득, 이를 가는 순간 툭 튀어나온 송곳니가 반짝인다.
 세르니아의 길드는 레드문의 책략에 의해 무너졌고, 어스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굴욕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녀의 등장에 놀란 것은 레드문 만이 아니었다.
 이사들의 대부분이 놀라며 이 자리에 있는 세르니아를 질타했지만, 세르니아의 뒤를 이어 나타난 남성의 말에 조용해졌다.
 "그쯤이면 됐다, 첼시. 역시 어스 놈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게 없구나. 하나같이 무능하고, 저급한 놈들뿐이지."
 "그 말을 하러 여기까지 손수 찾아와 준 거냐? 세르니아."
 레드문과 팽팽하게 시선을 맞부딪히며, 대립한다.
 "아니, 경고하러 왔느니라. 나도, 내 길드도 곧 어스에서 독립할 것이다. 우리 길드가 당한 만큼─여기 있는 네 녀석들에게 철저하게 되돌려 주도록 하겠다."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네 녀석의 길드가 독립하는 건 불가능 해. 일방적으로 계약파기를 하는 순간, 넌 우리가 아닌 라르고 전체를 상대해야만 하니까, 그걸 감당할 수 있는거냐? 너도, 네 녀석의 길드원들도, 하나같이 약해 빠지지 않았나? 애초에 네 녀석도 그 힘을 어스에 구속당한 상태일 텐데, 헛소리도 정도껏 짓껄이는게 좋아."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것이 레드문의 견해였다. 그녀가 아무리 날뛰어도, 어스와의 계약을 파기하는 순간 라르고에서 길드 수배령이 발령될 것이다.
 그것 말고도, 그녀의 모습이 저렇게 어린애인 모습 또한─어스와의 계약으로 그녀의 힘 상당수를 봉인했기 때문이다. 지금 저 상태의 세르니아는 그 힘에 제약이 걸려있다.
 결국, 그녀의 말은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었다.
 "글쎄,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이 네 계산 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냐? 네 녀석은 아직 백 년은 이르다."
 세르니아의 말에 레드문은 코웃음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레드문의 앞을 첼시가 막아선다.
 "네 녀석도 힘들겠어. 집 지키는 개 노릇이라니, 비참하기도 해라."
 "언젠가 네 녀석의 그 잘난 입을 찢어놓을 수 있겠지."
 "왜? 지금 이 자리에서 해보지 그러냐? 한심한 녀석."
 답위는 이미 각인 주문을 외울 틈만을 보고 있다.
 그가 레드문에게 손을 대어 어스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는 순간, 첼시를 베고 그의 주인 세르니아를 베어버릴 준비를 모두 마치고 있었다.
 또한, 이 자리에는 준도 있다.
 어스의 무력을 담당하는 준이니 만큼, 예상외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곧바로 저 둘을 제압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첼시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아니야. 때를 기다리도록 하지."
 "웃기는 놈일세. 이거, 주제를 알고 까불어야지."
 레드문의 비웃음에 첼시가 주먹을 쥐었으나, 세르니아의 손짓 한 번에 말없이 물러섰다.
 "그래, 잘들 해봐. 너희들이 아무리 기어올라봤자, 어스의 밑바닥에서 구르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모두가 조용해진 회의실에서, 오직 레드문만이 큰소리로 웃었다.

 * * *

 회의실을 나간 로리먼트는 다급하게 카로스를 찾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카로스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카로스는 길드 어디를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카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자니, 가까이 다가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로리먼트? 여기서 뭐하는 거야?"
 "엔비……!"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로리먼트를 부축해주는 엔비에게 로리먼트가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급하게 뛰어온 탓에 거친 숨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일단 숨좀 쉬고…… 말해봐."
 "…혹시 카카 못 봤어?"
 "아까 23층의 수련장에 서있던데? 운동하는 모습이 멋있었어……."
 "고마워!"
 얼굴을 붉히는 엔비를 뒤로하고, 로리먼트는 다급하게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 * *

 길드 대전 이후, 카로스는 줄곧 수련장에 틀어박혀 있었다.
 23층의 수련장에서 끊임없이 샌드백을 치고, 훈련용 더미를 치고, 예전에 익혔던 동작들을 연습한다.
 전투에서 느꼈던 전율, 그 손맛을 도저히 잊을 수─떨쳐낼 수 없었다.
 마치─전투를 원하는 것처럼, 어느 샌가 카로스는 정신 줄을 놓은 채 멍하니 샌드백을 미친 듯이 쳐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수련에 매진하면 매진할수록 가슴 속은 무척이나 공허해져만 갔다.
 이런 샌드백 따위를 쳐도 실제로 전투에 임할 때의 두근거림, 전신을 휘어잡는 스릴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카로스는 수련을 멈출 수 없었다.
 솔직히 생각하자면, 전투를 원하고 있었다.
 마크와 주먹을 주고받을 때의 스릴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온 몸이 그걸 미치도록 원하고 있었다. 다시 전투에 빠져들기를 애원하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어느 샌가 붉은 안광이 깃들어 있다는 걸─미친 듯이 수련에 매진중인 카로스는 모르고 있었다.
 "카카?"
 문득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카로스는 샌드백으로 향하던 주먹을 멈추었다.
 그 손은, 완전히 피투성이였다. 손에 감고 있던 붕대는 어느 샌가 산산이 찢겨나갔고, 시뻘건 멍자국이 가득했다.
 피─
 더 많은 피를 원한다─
 카로스는 그저 그런 자신의 주먹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카카? 뭐하는 거야?"
 불러도 대답이 없자, 로리먼트는 부동자세로 서있는 카로스에게 다가갔다.
 지금까지와 보던 카로스와는 상당히 다른, 차가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한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로리먼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세상에, 이게 뭐야!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샌드백을 쳐댄거야?! 당장 치료해야겠어. 손 이리 줘봐."
 가까이서 카로스의 양손을 확인한 로리먼트가 소리치고 나서야, 카로스는 제정신을 차린 듯 로리먼트를 돌아보았다.
 "으응? 로리먼트? 언제 왔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손이 이게 뭐야……!"
 그제야 카로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 손이 왜 이러지…?"
 "바보야,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하면 어떻게 해!"
 로리먼트는 무릎을 꿇고 구급상자에서 갖가지 의료품을 꺼내 카로스의 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 로리먼트의 앞에서 카로스는, 아직도 꿈을 해매는 것처럼 비몽사몽하게 서있었다.
 "내 손이 왜 이러지……?"
 카로스는 전혀, 자신이 그랬단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어?"
 로리먼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천천히 카로스의 손에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인 후, 의료용 붕대를 감아주었다.
 "난…… 난 전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샌드백을 친 기억이 없는데……?"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자신이 23층의 수련장에 왔다는 것이다.
 전투의 감각을 잊지 못해서인지, 몸이 저절로 그 곳으로 향했고, 그 이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린 이후에는 온몸이 이 모양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카로스는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꿈을 꾸는 도중에 갑작스레 깨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야? 네 손인데도?"
 로리먼트의 질문에 카로스는 고개를 도리질하며 답했다.
 "응…, 전혀 기억나지 않아. 분명 내 발로 23층까지 왔던 건 기억이 나는데……."
 어디선가, 뚝─하고 기억이 끊어져 있었다.
 마치 필름이 끊긴 것처럼, 그 지점에서만 끊어져 있었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떠올려내려고 해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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