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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온갖 의뢰와 잡일 따위를 도맡아 하는 조직의 통칭, 길드. 바로 여기에도 하나의 길드가 있다. 그 이름은, 어스. 매일같이 적자에 시달리는 길드의 상황으로 인해, 간부들은 골머리를 썩히고 있지만, 길드 마스터의 상태가?! 길드 어스에 어서 오세요!

[퓨전,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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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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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갓카[anileonhart]
조회 755    추천 0   덧글 0    / 2020.03.04 12:54:05
18화.암시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니까, 내 손이 왜 이런지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도……."
 마치─무언가에 이끌리는 것만 같았다.
 "…일단 응급처치는 다 했어. 상처가 덧나면 안 되니까 수련은 그만하고……, 정말 어떻게 된 일이야?"
 "나도 잘 모르겠어……."
 카로스는 멍하니 수련장의 전경을 돌아보았다.
 샌드백은 터져서 모래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고, 훈련용 더미 또한 처참하게 망가진 채 삐걱거리고 있었다.
 수련장의 목검은 대부분이 부러져 있었고, 그 잔해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마치 쓰레기장을 보는 듯 했다.
 "저것도 전부… 내가 했다고……?"
 "아무래도 이건 보통일이 아닌 거 같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로리먼트는 카로스의 상태를 유추해낼 만한 단서가 떠오르지 않았다.
 "카카, 언제부터 수련장에 와 있었는 지는 기억나?"
 "대략 어제 새벽부터 였던 것 같아.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4시쯤 되었을까……. 분명 게임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카로스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저 멀리서 준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여 손을 들어 인사했다.
 "준, 수련하러 온 거야?"
 준은 카로스의 인사를 받은 체 만체 하며,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왔다.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그 어조에서 왠지 모를 불안한 분위기가 느껴져─로리먼트는 자신도 모르게 준을 경계하듯, 미스틸테인을 앞으로 슬쩍 내밀었다.
 준은 그런 로리먼트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폐허가 되다시피 한 수련장을 돌아보고는, 카로스에게 물었다.
 "저건 네가 한 거냐?"
 카로스는 잠시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마 그런 모양이야……."
 수련장의 기물 대부분이 쓸 수 없을 지경이 될 정도로─망가져 있었다.
 준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콧방귀를 뀌며 카로스를 정면으로 노려다 보았다.
 "카카, 이렇게 된 이상 네가 좀 어울려줘야겠다."
 카로스 또한 그 의미를 어렴풋이 예상했지만, 확인차 되물었다.
 "대련이겠지……. 저번과 같은 조건으로 하는 거야?"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준은 냉소한 어조로 답했다.
 "아니, 진검 대련이다. 네 무기를 꺼내라, 카로스."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카로스가 아닌 로리먼트였다.
 "…잠깐! 카카는 지금 다쳤어! 이 손이 안 보이는 거야?"
 준 또한 발끈하는 로리먼트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수련장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할 말이 있는 건가? 그리고 내가 저번에 말했었지─이 대결은 뒤로 미루겠다고 말이야. 지금, 다시 나와 승부해줘야겠다. 카로스."
 철저하게 무너뜨려주마─하고, 준은 이를 갈며 메이스를 꺼내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 모두가 나간 회의실에서 세르니아가 말했었다.
 네가 찾는 것이라면 수련장에 있을 거라고─잘해보라고 덧붙이며, 세르니아는 유유히 회의실을 걸어 나갔다.
 준은 신경 끄라고 일갈했지만, 그 말의 의미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애초에, 수련장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아서야 수련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그 책임은 카로스에게 있다.
 그러니 이것은 절대로─세르니아에게 빚지거나 한 것이 아니다─그렇게 생각하며, 준은 카로스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카카! 뭐라고 말 좀 해 봐! 너는 지금……!"
 "좋아."
 카로스는, 준의 진검 대련 요청을 승낙했다.
 "뭐라고……?"
 로리먼트는 그런 카로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인가, 왜 또 싸우려고 드는 건가, 카로스는─.
 카로스는 조용히 네로를 꺼내들고 준의 앞에 마주섰다.
 둘의 사이에 범상치 않은 살기가 감돌고 있다는 걸, 로리먼트는 단번에 알아보았으면서도 제지할 수 없었다.
 그저 겁에 질린 소녀처럼, 로리먼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카로스와 준의 진검 대련에 특별한 심판은 존재하지 않았다. 로리먼트가 바라보고 있었지만, 지금의 로리먼트에게 둘을 제지할만한 힘은 없다.
 분위기에, 그 위압감에 압도당하여, 로리먼트는 미스틸테인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 완전히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궤도로 무기를 맞부딪히며 시작을 알렸을 뿐이다.
 카앙─!
 목검과 방망이로 대련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무기가 맞부딪히며 내는 불꽃─자루 너머로 전해져오는 무게감, 그 모두가 진심이다.
 메이스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카로스는 죽는다.
 준 또한, 카로스의 검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죽게 된다.
 통상적인 진검 대련은 상대방을 전투 불능에 빠뜨리고 멈추는 것이 전례지만, 지금의 둘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서로에게 무자비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만족스러운 듯 바라보던 금발의 소녀─'세르니아·블러디레인'은 팔짱을 낀 채 카로스와 준의 대련을 보며 실소했다.
 "우습구나. 이렇게나 쉬운 걸 가지고 저 녀석은 저렇게나 끙끙댔다는 말이더냐?"
 그 옆에는 와이셔츠 차림의 남성이 서있다.
 남성의 이름은 첼시, 세르니아의 부관으로 언제나 세르니아의 명을 받드는 존재였다.
 "허나, 레드문에게 선전포고를 한 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어째서 그런 경고를 하신 것인지… 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너는 레드문, 그 인간을 몰라서 그러는 게다."
 세르니아의 시선은─카로스와 준에게 향하고 있었다.
 "카로스에게 암시를 건 건, 준과 대련하게 만들기 위해서인가요? 이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다. 너무 순순히 풀려서 겁이 날 정도로구나. 후후─."
 세르니아가 카로스에게 건 암시는 카로스의 상처를─PTSD를 자극하여, 보다 비약적인 효과를 얻어냈다.
 설마하니, 그 수련장을 혼자 다 부숴놓을 줄은 세르니아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약간, 계획에서 벗어난 것도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카로스는 암시에 걸린 채 준과 싸웠을 터이다.
 하지만 그 암시는, 로리먼트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그렇다고는 해도─지금 상황에 크게 해를 끼칠 건 없어 보였다.
 "저 둘이 치고 박고 싸우는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더는 봐줄 수가 없지만, 끝까지 봐야만 하느니라. 자, 첼시, 카로스를 보거라."
 첼시는 카로스를 보며 과거에 맞붙었던 때를 떠올렸다.
 벌써 2년 전인가, 첼시는 세르니아의 길드로 쳐들어온 카로스 일당을 맞이해 혈전을 벌였고, 결국 굴욕적인 패배를 맞이했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죽는 것보다 치욕적인 굴욕을─세르니아가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그것은 정말이지─잊을 수 없는 어스와의 악연이었다.

 * * *

 망설일 틈 따위는 없었다.
 카로스가 바닥을 박차며 준에게 검을 휘두르자 네로에서 매서운 풍압이 갈라져 날아간다.
 이건 결투장에서 늘상 하던 대련과는 다르다.
 진검 대련─진심으로 임하는 '실전'이다.
 그런 잡생각이 뇌리에 스쳐가던 순간, 준의 인영은 어느새 카로스의 코앞까지 와서 메이스를 찍어 내리려 하고 있었다.
 "어느 틈에!"
 메이스가 머리에 맞닿기 직전, 카로스가 상체를 뒤틀어 가까스로 피해낸다. 그와 동시에, 놓치지 않겠다는 듯 준이 메이스를 수평으로 휘둘렀지만, 네로에 막혔다.
 "이런!"
 카로스는 순간적으로 검으로 메이스를 내리치며 준의 가슴을 발로 밀어 찼다. 거기서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역습을 가한다.
 지금 상황에 수세에 몰린다면 위험할 수 있다. 그렇기에 카로스는 자신이 쏟아낼 수 있는 모든 힘을 검에 쏟아 부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호각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이스와 맞부딪힐 때마다 카로스는 조금씩, 그 풍압과 무게감에 밀려나고 있었다.
 그만큼 준의 메이스는 묵직하고,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다.
 준의 메이스를 정면으로 막으려 한다면 틀림없이 검신에 무리가 갈 것이다. 그렇기에 카로스는 메이스의 궤도 그대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대로는 위험했다.
 카로스는 자신도 모르는 새 서서히 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공격보다는 준의 메이스를 막아내기에 급급해졌다는 걸, 카로스는 뒤늦게 깨달았다.
 진검 대련에서는 약간의 상처도 치명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카로스는 준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자각했다. 하지만 그래서야 결판은 나지 않는다.
 진검 대련에서 준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베어낼 각오까지 해야만 했다.
 준은 틀림없이 그 기세로 임하고 있었다.
 어중간하게 방어 자세를 취하는 카로스의 검을 쳐내고 몸에 익혔던 체술로 카로스를 밀쳐내며, 메이스로 견제하며 물러선다.
 잠깐 거리를 두고 물러선 이유는, 카로스의 검기에 놀랐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설픈 동작뿐이었는데─카로스는 어느새 잃어버렸던 전투 감각을 되찾은 것인가─.
 실제로 준과 메이스를 맞부딪히는 과정에서 카로스는 점점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준 또한 당사자로써 카로스가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강해졌다는 말은, 잘못되었을지 모른다. 카로스는 그저 예전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자신이 원하던 대련은, 이런 것이다.
 만전의 상태의 카로스를 꺾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오래 전부터 자신을 패배시켰던 건, 그런 카로스였다.
 준은 어느 샌가 카로스에게 증오를 느끼고 있었다.
 왜 다시 어스에 나타난 것인가─.
 이 녀석이 어스에 없는 동안 이 증오를, 이 감각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마음껏 수련장에서 수련하며, 그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녀석은 다시 어스에 나타났고, 그런 내 일상을 부숴놓았다.
 길드에 돌아온 카로스를 처음 본 순간, 준은 맹렬한 증오심과 자신을 향한 자괴감을 느꼈다.
 분명히 이렇지 않았을 터인데, 자신은 카로스가 길드에 오지 않고 폐인처럼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만족감을 느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다.
 준은 위를 바라보며 내달렸고, 카로스는 언제나 손을 뻗어왔다. 하지만 그 손이 준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지금 와서는 희미해진 기억 속에, 어느 쪽에서 먼저 손을 놓아버렸는 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준에게 있어서 카로스는 무엇이었는가─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가?
 아니다.
 준은 언제부턴가 카로스를 더 이상 친구로도, 라이벌로도 볼 수 없었다. 둘 간의 실력의 격차는 나날이 벌어져서, 더는 올려다 볼 수 없는 곳까지 도달해버린 카로스는─준에게 있어서는 뛰어 넘어야할 벽과 비슷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걸 깨달은 순간, 길드에서의 하루하루는 예전처럼 즐겁지 않게 됐다.
 그런 카로스가 망가졌다.
 준의 목표는 사라져버렸다.
 준의 노력도, 카로스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도, 전부 무의미하게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너무나 공허하기만 했던 마음에, 왠지 모를 만족감이 몰려왔다.
 카로스가 무기력하게 게임만 하는 모습을 보며, 어째선지 안심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카로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카로스를, 카로스를 향한 증오와 분노를─그 모든 걸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이 녀석이 다시 길드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저 녀석과 대등해질 수는 없었다. 단순한 경쟁심 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스에서 지내던 기나긴 시간동안, 왜 그토록 카로스를 의식했는지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희미해졌고, 그저 카로스를 쓰러뜨리는 것만이 가슴속에 남았다.
 준은 기합성을 터뜨리며 메이스를 내리찍었다.
 대련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그저 카로스를 쓰러뜨리고 싶을 뿐이다─.
 카로스는 흑검 네로로 메이스를 받아 쳐내며 뒤로 물러섰다.
 이대로 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기만 했다간, 결국 패배하기 마련이다.
 진검 대련에서 머뭇거릴 필요는 분명 없지만─혹시나 하는 생각에 검이 무뎌진다.
 당연히, 그런 카로스의 공격은 전부 준에게 막히고 유효타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검으로 준을 베어버렸다간, 그건 그것대로 큰 문제가 된다.
 가능하면 제압하는 쪽으로─카로스는 준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우선 노릴 것은 메이스이다.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고 나면, 자연스레 승리는 카로스의 몫이 된다.
 메이스와 맞부딪힐수록, 그 격렬함이 전신에 전해져온다. 준은 정말로 카로스를 때려눕힐 기세로 임하고 있다는 걸, 다시금 체감하게 해준다.
 '메이스만 떨어뜨리면 돼……!'
 그렇지만, 메이스를 노리고 검을 휘두르는 순간 준은 간파했다는 듯이 반대쪽 손으로 메이스를 붙잡아 카로스의 사거리에서 보란 듯이 빠져나간다.
 "…네 공격은 눈에 보인다. 카로스…."
 굉음과 함께 카로스의 코앞에 메이스가 내리 찍혔다. 본래는 카로스를 노린 공격이었지만, 패리(Parry)당하고 말았다.
 카로스는 아슬아슬하게 검으로 메이스를 쳐내 바닥으로 흘려보냈지만, 그 파괴력을 줄이지는 못했다.
 준의 메이스는 카로스의 앞에 작은 크레이터를 만들고 정중앙에 보기 좋게 찍혀있었다.
 '지금이다─!'
 카로스는 곧바로 검을 내질렀지만, 준은 당황한 낌새도 없이 왼손으로 카로스의 손을 붙잡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바닥에 박혔던 메이스를 뽑아낸다.
 이건 위험하다─본능적으로 느낀 카로스가 발로 준을 밀어냈지만, 준의 메이스가 이미 카로스의 복부로 쇄도하고 있었다.
 카로스는 황급히 양손으로 네로를 붙잡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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