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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온갖 의뢰와 잡일 따위를 도맡아 하는 조직의 통칭, 길드. 바로 여기에도 하나의 길드가 있다. 그 이름은, 어스. 매일같이 적자에 시달리는 길드의 상황으로 인해, 간부들은 골머리를 썩히고 있지만, 길드 마스터의 상태가?! 길드 어스에 어서 오세요!

[퓨전,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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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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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갓카[anileonhart]
조회 645    추천 0   덧글 0    / 2020.03.24 05:08:22
20화.운명

 * * *

 설마, 카로스 녀석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조금 더 폐인처럼 있어줄 줄 알았는데──.
 녀석은 내가 이루어낸 것들을, 내가 노력해온 것들을 한 순간에 빼앗아버렸다.
 지금의 어스는 내가 만든 것이다. 카로스 따위가 있을 장소 따윈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있을 곳은 여기다. 여태껏 잠잠하다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낙하산' 녀석 따위에게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다.
 아아,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던가, 얼마나 많은 자금을 투입했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것이 지금, 갑작스레 나타난 카로스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자신이 탄탄하게 세워둔 기반을, 카로스는 여지없이 뒤흔들고 있다.
 카로스 따위가 없어도 길드는 무리 없이 돌아갔다. 권한 밖에 있어 힘에 겨웠던 일들도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레드문의 재량으로 어떻게든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소규모였던 길드 어스를 이렇게까지 성장시킨 건 카로스인가, 자신인가. 답은 당연히 후자이다. 카로스는 길드가 이렇게 부흥하는데 이만큼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간 길드를 운영하는 모든 부담은 자신의 몫이었으며, 모든 책임도 자신의 몫이었다. 사실상 길드 마스터는 자신이다.
 매일같이 길드를 위해 밤낮없이 달려오는 순간에도, 카로스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지금에 이르러서야, 갑작스레 그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그 녀석 따위에게 길드를─이 손으로 키워낸, 일궈낸 길드를 넘겨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
 카로스의 영향은 미미하지만, 없지만도 않다. 행여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두었다가는 예전처럼 카로스를 지지하던 세력이 생겨나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
 반드시 그 전에 카로스를 쫓아내고 이 길드를 지켜내고 말 것이다.
 와인 잔을 기울이며, 레드문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 * *

 "그 몰골은 뭐냐? 또 대련이라도 한 거냐?"
 힘없이 벽에 기대어 서있는 카로스를 보며, 지나가던 답위가 말한다.
 "그러게 너무 무리하지 말라니까, 카카."
 카로스는 상당히 지친 모습으로 가슴을 붙잡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방금 전의 대련으로 상흔이 자극받았다.
 마치 무언가에 공명하듯이, 준과 메이스를 맞부딪힐 때마다 점차 심장에 가해지는 압박이 강해졌다.
 카로스는 가슴팍에 손을 짚은 채 한동안 숨을 몰아쉬다 얼마 후 잠잠해졌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괜찮아."
 답위가 지나간 걸 확인하고, 로리먼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카카, 할 얘기가 있는데……."

 ─로리먼트로부터 회의장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들은 카로스는 당혹스러워 하며 되물었다.
 "레드문이 나를……?"
 "응……. 그런 것 같아……."
 설마하니 그런 식으로까지 나올 줄은 카로스 또한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자신을 추방하고 새로운 길드 마스터를 뽑을 계획을 세우고 있을 줄은─전혀 요만큼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허를 찔린 것만 같은 느낌에, 그리고 레드문에게 배신당했다는 기분에─카로스는 주먹을 쥔 채 부르르 손을 떨었다.
 좌우간,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레드문을 경계하는 수밖에 없었다.
 레드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은 답위 또한─요주 인물 중에 하나다.
 카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며 자조했다.
 어느새 길드에는 자신을 적대하는 인물들만 한 가득이었다.
 방금 전, 목숨을 건 진검 대련을 요청했던 준과 노골적으로 자신을 적대하는 카로, 그리고 뒤에서 암약하고 있던 레드문과 그를 도울 답위까지─지금 길드에 믿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 지, 카로스는 생각했다.
 그나마 답위는, 자신을 적대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레드문─제일로 경계해야할 대상은 그였다.
 할 수만 있다면,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모두가 함께 세우고 여기까지 함께해온 길드이다.
 어째서 지금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 멀리서 카로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 손에 음료수를 든 채, 카로스를 발견한 듯 삐딱한 자세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꼬라지는 또 뭐냐?"
 아직 벽에 기대어 있는 카로스를 대신하여, 로리먼트가 발끈하며 응수했다.
 "카로! 그렇게 말할 것까진 없잖아……! 왜 항상 카카한테 그렇게 매정하게 대하는 거야!"
 카로는 빠득─이를 갈며 로리먼트의 시선을 피해 카로스를 노려다 보았다.
 정말로 증오한다.
 하필이면 이런 놈이 길드 마스터라는 게 더 문제였다.

 * * *

 카로 또한, 초기에는 카로스를 이렇게까지 증오하지는 않았다.
 오래 전, 카츠포스·로젠─카로는 엔비와 함께 길드 어스에 가입했다.
 "딱히 길드 따위에 들어가지 않아도 더 좋은 곳은 많을 텐데 말이야. 엔비, 꼭 이 길드에 들어가야겠어?"
 팔짱을 낀 채, 카로가 말한다.
 그 옆에서 가지런히 걷고 있던 엔비는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한 신비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엔비가 이런 표정을 짓는 건, 지금까지 이르러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응, 난 어스에 들어갈 거야."
 엔비와는 어릴 적부터 만나왔던 소꿉친구였다. 항상 같이 다녔으며, 이번에도 카로는─.
 "그럼 나도 가입할게."
 "정말? 같이 가자!"
 해맑게 웃는 엔비의 얼굴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이 미소만큼은, 엔비가 언제나 웃을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었다.
 그저, 그 뿐이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엔비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마음은 줄곧, 엔비에게 닿지 못했다.
 길드에 들어가면 무언가 바뀔까, 길드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엔비가 내 쪽을 돌아봐 줄까, 그런 기대를 가지며 카로는 엔비를 따라 길드 '어스'를 찾았다.
 하지만 그건 실책이었다.
 적어도 어스에 들어와서는 안 됐다고, 카로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어느 샌가 엔비의 미소는, 자신을 향해 웃어주던 그 미소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엔비의 시선은, 그 무엇보다 따스하던 미소는 자신이 아닌 카로스에게 향하고 있었다.
 더 이상, 엔비는 자신을 돌아보며 웃어주지 않았다.
 그녀의 미소와 관심을 독점하는 것은 카로스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엔비는 오직 카로스 만을 바라본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을 한 채─.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 아니, 괴롭다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상이 계속되었다.
 길드 어스에 출근하는 매일 매일, 카로스를 향해 미소 짓는 엔비를─카로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엔비가 돌아봐주었으면 했다.
 하다못해 예전 만큼만이라도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주었으면 했다.
 그것이, 집착과 스토킹으로 변해갈 줄은─카로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와서는 카로는 엔비를 매일, 뒤에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엔비와 말을 섞을 일은 더욱 더 줄어들었고, 엔비는 이따금 자신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거기까진 참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건, 엔비는 나한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로스에게는 상냥하게 말한다는 것이었다.
 이 가슴 속의 답답함을─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카로는 카로스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마음, 죽어버린 마음속을 오직 분노로 채워 넣었다.
 카로스만 없었더라면─만약 길드 어스에 '카로스'만 없었더라면─달라졌을까?
 그렇기에 카로는, 레드문을 지지한다.
 이참에 카로스를 몰아낸다면, 엔비는 자신을 돌아봐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카로스한테 완전히 반해버린 엔비는, 틀림없이 그 사실에 괴로워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
 엔비가 괴로워하는, 슬퍼하는 표정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다못해 엔비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카로스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끓어올라서─카로는 이질적인 두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카로스만 만나지 않았더라면─엔비는 줄곧 나를 보며 웃어줬을텐데─.
 아예 진검 대련을 요청하여 카로스를 죽.여.버.리.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것쯤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후에 엔비가 보일 반응이 너무나 불안해서, 도저히 행동에 옮길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아아, 정말이지, 빌어먹을 녀석─.
 카로는 카로스를 용서할 수 없었다.

 * * *

 "왜 카카를 보기만 하면 그렇게 대하는 거야!"
 엔비뿐만 아니라, 로리먼트 또한 카로스의 편을 들어준다.
 카로는 자신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소리 없이 자조하며 돌아섰다.
 카로스는 그런 카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카로는 왜 저러는 걸까……."
 도저히, 카로스는 알 수 없었다.
 왜들 그렇게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이렇게나 자신을 싫어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레드문은 정말로 자신을 추방할 계획을 세우고 이미 차근차근 그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잠깐만, 지금 문자가 왔어. 다음 회의는 창립 기념일 이후래."
 "분명히 그때, 내 축출안을 내놓겠지."
 만약 자신이 축출당한다면, 다음 길드 마스터가 되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최고로 유력한 후보는 지금까지 길드를 운영해온 레드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온갖 길드의 업무를 도맡아하며 레드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답위였다.
 답위까지 경계한다면, 카로스에게 남은 아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난 반대야."
 오직, 로리먼트뿐만이 카로스의 유일한 아군이었다.
 그 외에 어스에는, 자신을 쫓아내려는 이들로 가득하다.
 문득 카로스는 의문이 들어 로리먼트를 올려다보았다.
 "…저기, 로리먼트……. 내가 탈퇴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로리먼트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야, 다들 이렇게나 날 싫어하는데…… 길드에 괜히 나온 건 아닐까 하고……."
 "그 말은 나 때문이라는 거야?"
 약간 삐진 듯이 로리먼트는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됐네요. 아무튼, 시무룩하게 있지 말고 정신 차려. 레드문은 진심인 모양이니까……."
 이런걸 원한게 아닌데─하고 로리먼트도 덩달아 한숨을 쉬었다.
 "카카,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응?"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어스에서 쫓겨날 거야?"
 카로스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대답했다.
 "아니, 그럴 생각은 없어."
 "나도 그렇게 둘 생각은 없지만…… 길드의 대부분이 레드문의 편이니까……."
 최악의 경우, 암살자가 찾아올 것까지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레드문이 정말이라면, 그리고 레드문의 능력이라면 사건 하나 덮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다.
 로리먼트의 말대로 시무룩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눈 깜짝할 새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레드문과 싸우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 길드를 지킬 거야."
 카로스의 꽉 쥔 주먹 위에, 로리먼트가 슬며시 손을 얹는다.
 "나도, 그렇게 두지는 않을 거야."
 "이런데서 둘이 뭘 하고 있는 게냐?"
 갑자기 그런 말이 들려와, 카로스와 로리먼트는 동시에 돌아보았다.
 그곳에 서있는 건, 금발머리에 붉은 눈을 한 정장 차림의 작은 소녀, 세르니아였다.
 카로스는 무의식중에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녀는 일단은 어스에 속해 있지만 어스를 적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르니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카로스도 로리먼트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나도 내 길드도 네 편을 들어줄 게다. 네가 추방당할 일은 없느니라."
 "…왜 내 편을 들겠다는거지? 대체 꿍꿍이가 뭐야?"
 경계하는 카로스에게, 세르니아는 달래듯이 말했다.
 "자신의 길드에서 추방당하는 길드 마스터가, 가여워서랄까? 라면 믿어주지 않겠지. 나 또한 레드문을 증오한다."
 "아니, 난 레드문을 증오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맞설 뿐이지."
 세르니아는 분명하게 자신과 선을 그으려 하는 카로스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가 진심으로 짓는 미소가 아니라 가면이란 것쯤은, 카로스도 로리먼트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레드문보다 경계해야할 것은 세르니아일 지도 모른다.
 "나도 레드문의 계획대로 두게 할 생각은 없다. 힘을 합치지 않겠나?"
 그렇게 말하며, 세르니아는 새하얀 손을 뻗어왔다.
 "…넌 우리 길드를 증오하고 있지 않아? 미안하지만, 네 동맹 제의는 확신할 수 없어."
 "어머, 그럼 어쩔 수 없겠구나. 후후─."
 로리먼트가 미스틸테인을 꺼내 세르니아를 경계하고, 카로스 또한 네로를 소환할 준비를 마친다.
 그러나 세르니아는 그저 재미있구나─라고 말하며 두어 걸음 물러섰다.
 "지금은 너와 싸울 생각이 없다. 우선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게다가 네 목을 원하는 이들은 밖에 수도 없이 많지 않느냐? 네 목숨은 내가 직접 끊어놓지 않더라도 다른 이가 끊어줄 것이다."
 "뭐라고……?"
 "그럼 이만─가 보도록 하마. 후후……."
 세르니아가 유유자적한 발걸음으로 떠나는 모습을, 카로스와 로리먼트는 잔뜩 긴장한 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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